+ chapter3. energy
내게 있어 세상은 상식에 대한 도전이다.
- 르네 마그리트
#2. 낯설게 하기
: + chapter3. energy
"그들은 친숙한 사물엔 주목하지 않는다."
러시아의 문학가 빅토르 시클롭스키가 한 말이다. 시클롭스키를 중심으로 한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낯설게 하기'(Defamilarization)라는 문학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이들에 따르면 문학의 목적은 관습에 무디어지는 것을 경계하고 대상을 친숙하지 않게 만드는 것, 그러한 낯설게 하기를 통해 지각의 과정을 더욱 어렵고 오래 걸리게 하는 것이다. 낯설게 하기는 '이상하게 만들기(make strange)'의 일종으로 문학뿐 아니라 예술의 기법으로 두루 쓰이는 용어다. 독자는 '낯설게 하기'의 과정을 통해 너무 친숙한 나머지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삶의 진실들을 새롭게 대면하게 된다.
화가 르네 마그리트는 '낯설게 하기'를 그림으로써 표현했다. 르네 마그리트의 전시를 보고 난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전시장을 나오자 눈에 보이는 익숙했던 모든 것들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묘한 기분이었다. 고정관념이 깨지면서 뇌가 말랑말랑해진 것 같았다. 20대 초반에 본 마그리트의 전시는 나의 창의성과 상상력을 형성하는 데 있어 중요한 계기가 됐다. "내게 있어 세상은 상식에 대한 도전이다"라고 말한 마그리트처럼 세상을 좀 더 상식 바깥에서 체험해보려는 의지를 갖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이것은 파이프다'라고 말하는 대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파괴적인 무엇을 내 안에서 키워가기 시작했다.
스피치 역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낯선 느낌'을 주어 그들의 뇌를 유연하게 하고 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 되어야 하겠다. 어느 날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란 주제로 스피치를 한 적이 있는데 한 연사님이 꽃게탕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하며 꽃게탕의 시작과 끝을 상세히 이야기한 적이 있다. 가락 수산시장에 꽃게를 사러 출발하는 것부터 흥정을 하는 과정, 집에 돌아와서 꽃게를 손질하는 일과 조리법, 그리고 끝내 꽃게탕의 시원한 국물 맛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하나하나 이야기로 풀어나갔는데 왠지 모르게 내가 알던 꽃게탕이 꽃게탕이 아닌 것 마냥 느껴졌다. 꽃게탕을 다시 보게 됐다고 할까? 꽃게탕의 진수를 처음 발견한 기분이라고 할까? 왜 그런 기분 말이다. 어떤 사물을 집중해서 뚫어져라 보게 되면 그 사물이 낯설게 보이고, 어떤 단어를 반복해서 말하다 보면 그 단어가 이상한 단어처럼 느껴지는 그런 기분.
김훈의 산문 <라면을 끓이며>도 일상을 낯설게 보게 해준다는 측면에서 잘된 글이라 여겨졌다. "파는 라면 국물에 천연의 단맛과 청량감을 불어넣어주고, 그 맛을 면에 스미게 한다. 파가 우러난 국물은 달고도 쌉쌀하다. 파는 라면 맛의 공업적 질감을 순화시킨다. (중략) 파가 우러난 국물에 달걀이 스며들면 파의 서늘한 청량감이 달걀의 부드러움과 섞여서, 라면은 인간 가까이 다가와 덜 쓸쓸하게 먹을 만하고 견딜 만한 음식이 된다."(김훈, <라면을 끓이며> p.30, 문학동네) 우리가 흔하게 먹는 라면도 김훈이 그러했듯이 자세히 들여다보고 하나의 세계를 여행하듯 천천히 탐구해보면 그 안에 삶이 들어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낯설게 하기다.
모든 고정관념이 부서지고 상식이 파괴되는 지점. 좋은 것의 나쁜 면이 드러나고 나쁜 것의 좋은 면이 드러나는 지점. 이러한 지점들을 지날 때마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익숙한 세상과 하나씩 결별한다. 동시에 세상을 바라보는 신선하고 에너지 넘치는 통찰을 얻는다. 평소에 당연한 것을 의심하고, 상식을 비상식 바라보듯 삐딱하게 바라보고, 앞면만 바라봤던 사물을 뒤집어서 뒷면을 눈여겨 보는 것. 이러한 습관을 가진다면 청중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창의적인 스피치를 할 수 있다. 가령 게으름, 좌절, 바보 같음, 욕심, 슬픔, 소심함의 좋은 점에 대해 스피치를 하고, 성공, 기쁨, 사랑, 솔직함, 자신감, 똑똑함의 나쁜 점에 대해 스피치를 해보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세상을 낯설게 바라보는 훈련이 될 수 있다.
아주 작은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는 것으로 '낯설게 하기'를 연습할 수도 있다. 꽃게탕이나 라면처럼 아주 일상적이고 익숙하며 작디작은 사물을 하나 골라서 그것에 대해 A4용지로 한 장 이상을 써보거나 5분 이상 스피치를 해보는 거다. 그렇게 하면 꽃게탕의 재발견, 라면의 재발견이 이루어진다. 이것은 거대담론을 말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청중의 흥미를 끌며, 재미있는 말과 글로 연결될 수 있다. 나의 경험으로는 직접적인 주제로써 '행복'과 '성공'에 대해 듣는 것보다 '교통카드'나 '양말'처럼 일상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귀가 더 솔깃했다. 그리고 그러한 일상적이고 작은 소재로부터 받는 낯선 느낌과 그 낯섬 가운데서 깊이 공감되는 삶의 메시지가 딸려올라올 때의 짜릿함을 사랑한다.
그러므로 작은 소재로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고난도의 스피치라 할 수 있겠다. "그들은 친숙한 사물엔 주목하지 않는다"라는 시클롭스키의 말처럼 친숙한 사물을 그저 친숙한 시선으로 이야기해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을 수 없다. 말을 잘하는 사람, 글을 잘 쓰는 사람일수록 꼬마도 말할 수 있는 아주 작고 익숙한 것을 말하되 '낯설게 하기'의 작업을 통해 그 안에 큰 메시지, 인생의 웅숭깊은 진리를 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