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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구체적인 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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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p.24-25, 맑은소리)
소금 같은 메밀밭이 마음 안에 하얗게 퍼지는 대목이다. 소설이 우리 마음에 이런 풍경을 꾸려놓을 수 있는 건 구체적인 묘사 덕분이다. 산허리쯤 걸린 길, 밤중, 고요함, 달빛,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 하얀 메밀꽃들. 밤중에 본 메밀밭의 풍경을 이토록 섬세한 감성으로, 구체적이면서도 시적으로 표현해내는 건 놀라운 일이다. 좋은 소설의 힘은 역시나 감성과 표현의 구체성에 있단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말도 글처럼 구체적일 때 힘을 갖는다. 구체적인 말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을 이끌어낸다. 길에서 사고를 당하면 이렇게 해야 한다고 들었다. 지나가는 사람 모두를 향해 도와달라고 말하는 대신 '파란색 옷 입은 여성분, 119에 신고 좀 해주세요'라고 콕 집어 부탁해야 한다고. 집에서도 구체적인 말의 필요성은 존재한다. 게임에 빠진 아들에게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는 엄마. 이왕이면 엄마는 구체적으로 잔소리를 해야 소기의 성과를 거둘 것이다. 몇 시까지 게임을 끝내야 한다고 시간을 못 박지 않는다면 아들이 공부하는 모습은 턱도 없다. 학교에서의 의사소통도 마찬가지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구체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언제나 노력한다. 청소시간마저 그렇다. 철수는 쓸고, 영희는 닦고, 광태는 칠판지우개를 털라고 구체적으로 지정해 시키지 않으면 선생님 혼자 청소를 해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회사도 다를 바 없다. 상사의 구체적인 업무 지시는 부하직원으로 하여금 맡은 업무에 더욱 책임감을 느끼게 한다. 이 경우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좋게 말해 책임감이지, 이건 짜증 제대로인 상황이다. 상사를 통해 구체적인 말의 힘을 확인하는 건 유감이다.
구체적인 말의 힘이 가장 좋게 발휘되는 건 바로 '칭찬'이다. 가끔 이런 기분 들 때가 있다. 방금 내가 들은 게 분명 칭찬이긴 칭찬인데 이상하게 찝찝한 기분. 이 찝찝함의 원인은 '영혼 없는 칭찬'에 있다. 영혼이 부재중인 칭찬은 대부분 짤막하고 추상적인 모습이다. 당신이 만약 화가인데, 친구에게 힘들게 완성한 작품을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면, 꼭 칭찬은 아니더라도 친구의 진심 어린 관심을 기대할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눈을 반짝이며 친구의 입술을 초조하게 바라본다. 그런데 친구가 '응, 잘 그렸네'하고 그걸로 끝이라면? 이런 순간에 밀려오는 건 오직 본전 생각이다. '아, 괜히 보여줬다!'
그림이 좋았다면 어떤 부분이 좋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줘야 한다. "색채 표현이 굉장히 독특한데? 강렬하면서도 몽환적인 느낌이야. 독창적인 그림이군." 이 정도는 해줘야 칭찬이다. 이 정도는 해줘야 친구가 본전 생각을 안 한다. 이 정도도 아니하고 자신의 칭찬이 값어치를 얻길 바라서는 안 된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칭찬하라는 말은 길게 칭찬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간결하게 말하더라도 표현에 구체성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진심도 전달되니까. 또한 칭찬이란 스스로에게는 덜 바라고, 남에게는 많이 베풀수록 좋다. 여기에 더해, 칭찬을 베풀 때는 화끈해야 한다. 어차피 돈 한 푼 안 들이고 상대에게 선물을 주는 일이 칭찬하는 일이니까. 그러니 기왕 공짜인 거 최고의 선물을 주는 게 받는 사람에게도, 주는 사람에게도 기분 좋은 일이다.
끝으로, 구체적인 말의 힘은 내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얼마 전 마음의 메커니즘을 발견하는 나름의 계기가 있었는데, 자기암시의 말을 구체화시켜본 게 그것이다. '나는 나를 믿는다'란 말 대신에 '나는 나의 의지를 믿는다'라고 구체화시켜 되뇌어봤더니 신기하게도 전보다 스스로의 행동을 컨트롤하는 게 쉬워졌다. 가령 다이어트 중에 빵을 먹고 싶을 때, '나는 나를 믿는다' 대신 '나는 나의 의지를 믿는다'라고 되뇌었더니 훨씬 빵을 참기가 쉬웠다. 파란색 옷을 입은 여자를 지목하여 신고를 부탁하는 것과 같은 이치일까? 내 안에 있는 '의지'를 콕 집어 지목하는 순간, 나의 무의식은 구체성을 띠고 '의지'를 통해서 구체적 행동을 유발시키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의 꿈도 구체적으로 되뇌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걸까? 이것도 한번 실험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