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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Sep 07. 2015

무대공포증을 극복한 남자




무대공포증을 극복한 남자 (1)





무대공포증을 일생의 넘어야 할 산으로 여기며 살아온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중고등학교 시절, 일어나 책을 읽을 때면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내가 지금 주목받고 있구나’라고 느껴지는 순간부터 온몸이 굳었다. 자존심이 강해 부모님에게도 고민을 털어놓지 않았다. 학교를 마치면 아무도 자신을 보지 못하는 곳을 찾아 산에 올랐고 그곳에서 큰 소리로 책을 읽었다. 산 속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술술 잘 읽혔다. 하지만 산에서 내려오기만 하면 날개옷을 벗은 선녀처럼 모든 능력이 눈 녹듯 사라졌다. 이 불쌍한 소년은 혼자 힘든 싸움을 이어갔지만 끝내 무대공포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21살, 청년은 발표 훈련을 할 수 있는 기관에 찾아간다. 큰 용기를 낸 걸음이었다. 하지만 무대공포증은 없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넘어야 할 산을 넘지 못하고 그만 두고 만다. 그 후 10여 년을 그렇게 살아간다. 32살이 되던 해. ‘아, 정말 내가 이 산을 정복하지 않고는 인생을 살아갈 수가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사건이 발생한다. 공무원 시험 면접날이었다. 얼굴은 토마토처럼 시뻘게져서 목소리는 염소 울음을 울어댔다. 여기에 더해 ‘대답은 무조건 크게 해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 고래고래 소리 지르듯 대답을 한 것이다. 한마디로 얼굴 빨간 염소가 미친 듯이 울어대는 모습이랄까. 채점표에 머리를 박고 있던 면접관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봤다. 자신을 바라보던 그들의 눈빛, 그 눈빛이 불쌍한 이 남자를 자책의 늪으로 몰아넣었다.  


공무원 시험은 그렇게 떨어졌다. 자책이 본격적으로 그를 괴롭혔다. 이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는 그 길로 정신과 병원에 찾아갔다. 필요할 땐 약물처방을 받았고 심리상담도 꾸준히 했다. 하지만 부담스러운 비용에 비해 효과는 미미했다. 다른 돌파구를 찾아야만 했다.  정신없이 인터넷을 뒤지다가 스피치 동호회라는 것이 있단 걸 알게 되고 그곳의 문을 두드린다. 그렇게 7년을 꾸준히 일주일에 3~4회 정도 동호회에 참석해 연습을 해 나간다. 차곡차곡 무대에 서는 횟수를 늘려가자 길이 보였다. 무대공포증이 조금씩 극복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7년의 노력이 도루묵처럼 느껴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일명 ‘사내방송 개망신 사건’이다. 어느 날 상부에서 급하게 그에게 공지사항을 전달하라는 임무를 내렸다. 원고를 미리 쓸 시간적 여유는 불행히도 주어지지 않았다. 무방비 상태로 방송실에 가 자리에 앉았다. 그 다음, 건물 안 모든 스피커로 목소리를 송출해주는 ‘All 스피커’ 버튼을 눌렀다. 자, 이제 말만 하면 된다. 그는 말을 했다. 하긴 했다. 하지만 그 말이 머릿속에 있던 말이었다면 좋았으련만! 그가 원래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런 말이었다. “관리팀에서 안내 말씀드립니다. 잠시 후 강당에서 소방교육의 일환으로 경보벨이 울릴 것입니다. 실제 화재 상황이 아니오니 정상적으로 업무를 이어가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이미 성능 좋은 마이크는 전혀 다른 ‘알 수 없는 말’을 건물 구석구석까지 전달한 후였다. 버벅버벅, 무슨 말인지도 모를 말을 내뱉고 All스피커 버튼을 내렸을 때 그는 이미 패닉상태였다. 7년 동안 연습 해온 노력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다리에서 힘이 쫙 빠져나갔다. 


동료들은 속도 모르고 가차 없이 그를 놀려댔다. 화장실에서 소변보다가 뒤집어졌다는 동료부터, 매일 반복되는 무료한 일상에 웃음을 줘서 진심으로 고맙다는 동료까지. 또 하나의 말하기 트라우마가 생긴 사건이었다. 이 남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이 없어 보이지만 이 남자의 앞에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불행 중 다행히도 역경 앞에서 긍정적 선택을 하는 부류였다. 사내방송 개망신 사건 이후 그는 대화모임에 더 자주 나갔다. 평소보다 더욱 집념을 갖고 매달렸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났다. 바야흐로 연말이 다가왔고 회사 송년회가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가 다니는 회사는 매년 강당에서 시끌벅적하게 송년회를 치렀다. 그런데 이게 웬걸? 누군가가 올해 송년회 사회자 추천 명단에 그의 이름을 올려놓은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술 더 떠서 이게 무슨 일람? 결국 그가 사회자로 최종 낙점된 것이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두려움이 앞섰다. 당연했다. 불과 3개월 전, 전직원에게 웃음폭탄을 선사한 그였다. ‘나는 절대 못 할 것이다.’ 이 말이 머릿속에서 수없이 요동쳤다.


‘내일 회사에 가면 포기 의사를 밝히자.’ 그런 결심을 하고 보통 때처럼 대화모임에 참석했다. 그런데 한 참가자의 말이 그의 마음을 180도 바꿔놓았다. 그 참가자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100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할 기회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을 자주 해요. 실수해도 좋고 못해도 좋으니까 그런 기회가 오면 꼭 무대에 서서 나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어요.” 이 말을 듣자 그는 아차 싶었다. 이 시련은 어쩌면 나에게 온 기회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확신이 불현듯 밀려왔다. 


사회를 보기로 마음을 바꿨다. 만나는 동료마다 “박 선생 기대가 커요!”라며 파이팅을 외쳐댔다. 응원인지, 선불로 지급하는 놀림인지 알 수 없는 오묘한 관심들이었다. 그러는 사이 송년회는 점점 가까워왔다. 그는 일주일에 3~4번 나가던 대화모임을 매일매일 나갔고 실제처럼 반복해서 사람들 앞에서 사회보는 연습을 했다. 송년회에서 할 유머를 대화모임에서 미리 던져보고 반응이 괜찮은 것만 추려서 준비하는 식으로 만반의 태세를 갖춰나갔다. 그가 특히 신경 쓴 것은 ‘이미지 트레이닝’이었다. 무대 위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환호를 받으며 떨지 않고 진행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상상했다.


드디어 그날이 밝아왔다. 150명의 직원이 강당에 도착해 착석했다. 떨렸다. 많이 떨렸다. 떨리긴 떨렸는데 이상하게  마음속 깊이서부터 알 수 없는 에너지가 나왔다. 그러더니 기적이 일어났다. 머릿속에 그리던 그대로, 상상했던 그 모습 그대로 사회를 본 것이다. 준비한 유머폭탄을 적재적소에 투하했고 ‘붉은 노을’에 맞춰 춤까지 추면서 분위기를 달궜다. 원래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다. 본인이 생각해도 놀랄 만큼 괜찮은 진행이었다. “박 선생이 저렇게 진행을 잘 했어?” 직원들은 놀라워하며 뜨겁게 호응해줬다. 150명의 환호소리에 그는 25년 동안 눈앞을 가로막고 있던 커다란 산이 스르르 땅 밑으로 꺼지는 기분을 느꼈다. 


송년회 끝순서는 시상식이었다. 마지막 MVP 발표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이사장의 입이 크게 열렸고 그 입에서 그의 이름 석 자가 흘러나왔다. 그는 너무 놀라서 얼음이 됐다. 시상자의 설명에 따르면, 매년 관례처럼 청소부 아주머니에게 MVP를 줬지만 올해는 특별히 그에게 주기로 결정했단다.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하고 의심을 줬던 사람이 그것을 뛰어넘어 해내는 모습이 감동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이 남자는 이날 송년회가 끝나고 MVP 트로피를 품에 안고 혼자 동네 순댓국집으로 향했다. 함께 축하주 한 잔 하자는 동료들의 권유를 모두 뿌리쳤다. 성취감과 행복을 천천히 깊이 만끽하고 싶어서였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소주 한 잔을 따라주며 지난 25년 동안 치렀던 고군분투와 불과 몇 시간 전의 꿈같던 무대, 그리고 MVP에 호명되던 순간을 되새김질했다. “큰 산 하나를 넘었다.”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이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찔끔, 눈물도 흘렀다. 기쁨의 눈물이었다. 이제 못할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다. 인생 모든 일에 용기가 생겼다. 그는 인터뷰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저의 인생 2막이 시작된 날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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