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봄, 영화 <무뢰한>의 오승욱 감독을 인터뷰했다. 감독님의 이야기는 전도연으로 시작해서 전도연으로 끝났다. 그만큼 그녀와의 작업이 무척 인상 깊었던 것인데, 그의 전도연 예찬에 나도 주저 없이 동조할 수 있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카페를 나서려는 내게 누군가 쪽지를 건넸다.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영화사 직원이었다. 인터뷰 중 감독님이, 촬영장에서 전도연의 의견에 따라 대사를 바꿨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는데 바로 그 대사였다. 손수 시나리오를 찾아 대사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적어준 것이다. 집으로 오는 지하철에서 그 쪽지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대사의 미묘한 차이가 영화 전체를 좌우할 수 있음을 실감했다.
영화에서 전도연은 술집 마담 김혜경을 연기했다. 전도연이 직접 바꾼 김혜경의 대사를 보면, 그녀가 완전히 김혜경이 되어 김혜경의 내면까지 이해했단 걸 알 수 있었다. 사실 김혜경은 술집여자지만 천박한 정신의 소유자는 아니다. "그 새끼는 어딜 그렇게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냐"는 말을 쓰는 종류의 인물이 아닌 것이다. 시나리오를 쓴 감독보다, 전도연이 김혜경을 더 내밀하게 이해했던 셈이다. 이것이 전도연의 연기가 그렇고 그런 연기와 차원이 다른 이유다.
'대사'를 바꾸는 건 '말'을 바꾸는 일이다. 이게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의 내면까지 가닿은 배우만이 말의 미묘한 뉘앙스를 구별해낸다.
대사는 인물의 내면을 고스란히 드러내게 돼 있다. 두 시간 안에 인물의 심리까지 보여줘야 하는 영화는 허투루 대사를 낭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도연이 완전히 김혜경이 되어서 김혜경 다운 말(대사)을 했듯이, 나도 완전히 나답게 된다면 나다운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