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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지대

by 손화신




등잔 밑은 어둡다. 등잔 밑은 빛의 사각지대이기 때문이다. 천장에 매달린 조명도 마찬가지다. 조명 아래는 눈부시게 밝지만 천장 쪽은 캄캄하다. 천장 쪽 사각지대로 눈길이 가는 일은 거의 없다.


어느 곳이고 사각지대는 존재한다. 신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 '복지 사각지대'란 단어다. 복지의 불빛이 비치지 않는 캄캄한 공간은 그냥 캄캄한 채로 놓아둬야 하는 건가? 춥고 어두운 등잔 밑에 사는 사람에게 빛은 더 절실하다.


셋 이상이 모여 대화를 나눌 때도 여지없이 사각지대가 생긴다. 말의 주도권을 잡은 사람이 있으면, 반대로 말의 주도권을 빼앗긴 사람도 있다. 토론을 할 때 사회자의 첫째 임무는 사각지대에 놓인 토론자를 챙기는 것이다. 혼자 말하려고 드는 사람의 발언권을 빼앗아 사각지대의 토론자에게 나눠주는 일. 좋은 사회자라면 이 일을 제일 중요하게 여길 것이다.


유재석이 좋은 MC인 이유는 그가 사각지대에 빛을 비추는 공평함을 지녔기 때문이다. 유재석은 입담의 고수들이 모인 예능프로그램에서 '낄 틈'을 못 찾아 조용히 앉은 게스트를 세심하게 챙긴다. 입담 좋은 게스트가 어떤 얘기로 웃음을 터뜨리면 그걸 얼른 물어다가 병풍처럼 앉은 게스트에게 엮어준다. 그럼 그 게스트는 사각지대의 어둡고 추운 그늘에서 간신히 벗어나는 것이다. 유재석의 예능은 방송이 끝날 때 시청자의 입에서 "오늘 저 게스트가 출연한 줄도 몰랐어!"란 말이 안 나오게끔 한다.


좋은 정치인, 좋은 선생님, 좋은 MC, 좋은 작가... 그들은 낮은 시선을 지녔기에 그늘에 놓인 자들을 바라볼 줄 안다. 빛이 없어 어두운 곳, 굳이 애쓰지 않는 이상 눈길이 가지 않는 사각지대에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들은 우리 사는 세상이 온기를 잃지 않도록 묵묵히 지키고 선 파수꾼들이다.


우리 사회가 '밝아진다'란 말은 이미 밝은 곳이 더 밝아진다는 게 아니라, 어두운 곳에 빛이 비치어 더 넓은 공간이 밝아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하는 건 등잔 밑의 어둠에 자꾸 마음이 쓰이는 그런 마음 약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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