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동대문DDP에서 '디올정신'이란 전시를 봤다. 명품 브랜드의 홍보성 전시겠거니 하고 기대하지 않았는데 막상 보고나니 정신적으로 얻는 바가 많았다.
크리스찬 디올의 원래 꿈은 건축가였다고 한다. 하지만 흘러흘러 의상 디자이너가 됐다. 그래서인지 그의 의상들은 구조적인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디올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드레스가 여성 실루엣의 비율을 찬양하기 위해 세워진 일시적인 건축물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주변인 라프 시몬스는 이렇게 말했다. "디올은 뛰어난 의상 건축가였다."
의상을 건축하다? 디올이 자신의 꿈을 실현시킨 이러한 독자적인 방식은,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들에게 귀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디올은 '건축가'라는 원형의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의상 디자이너'라는 변형된 모습으로 건축가의 꿈을 이뤘다. 많은 사람들이 꿈을 현실로 만들려하지만, 디올은 현실을 꿈으로 만든 셈이다.
꿈에 대한 마음이 진실하다면 어떤 형태로든 그 꿈은 현실에서 녹아난다. 디올은 정말로 건축을 사랑했고, 그래서 좋은 건축이란 무엇인지 많은 시간을 고민했을 것이다. 그런 애정과 고민들이 디올로 하여금 옷을 만들 때조차 자연스럽게 건축학적인 시각으로 생각하고 디자인하게끔 만들었다. 이것이 디올의 옷에 예술작품이 갖는 특유의 독자성을 부여해주었다.
많은 이들이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거나 타협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무엇이 되겠다'고 직업적인 꿈을 꾸는 대신 '무엇을 하겠다'고 본질적인 꿈을 꾼다면 꿈과 현실 사이의 방황은 끝날 것이다. 가령 '작가가 되겠다'는 꿈 대신 '좋은 글을 쓰고 싶다'고 꿈꾼다면 그 사람은 신문기자가 되어서라도 좋은 글을 쓸 것이다. 또한 좋은 글에 대한 오랜 고민들은 독창적인 필체의 기사로 결실을 맺을 것이다.
우리는 꿈이냐 현실이냐를 놓고 갈팡질팡하는 대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그것에 진실하게 다가가기만 하면 된다. 그럴 때 우리의 현실은 원래의 꿈보다 더 멋진 꿈을 실현시켜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