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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Mar 10. 2016

"전 의사입니다"...
이토록 섹시한 이별이라니!


[리뷰]
지상파의 심기일전...
KBS 2TV <태양의 후예>에 통속은 없다




영화는 즐겨 봐도 드라마는 안 보는 사람 - 이들에겐 '통속'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다. 대체로 드라마는 영화보다 통속적이다. 알고 보니 배다른 형제였고, 알고 보니 재벌3세였으며, 알고 보니 죽을병에 걸렸단 이야기들. '알고 봐도' 결코 새로울 게 없다. 그나마 '10시 드라마'는 좀 낫지만, '10시 이전 드라마'는 막장의 향연인 경우가 많다. 이런 통속적 '이야기'보다 심각한 건 통속적 '시각'이다. 보통 남성은 주체적 인물로 여성은 수동적 인물로 그려지며, 부자는 악인으로 빈자는 선한 인물로 그려지는 식이다.


물론 통속적 시각에서 벗어난 드라마도 있다. 12년 전 방영된 MBC <다모>에서 조선의 여형사 채옥(하지원 분)은 심지 곧고 과묵하며 의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여성으로 그려졌다. 남성에게 의존하는 신데렐라형 여성캐릭터가 판치던 그 시절, 채옥의 등장은 진부함에 던지는 하나의 작살처럼 보였다. 칼에 베이는 중상을 입어도 호들갑 떨지 않으며, 정인 황보윤(이서진 분)을 구하러 적의 소굴에 망설임 없이 뛰어드는, 보호 받기보단 보호해주는 주체적 여성. '다모폐인'을 양산한 일등공신은 바로 채옥이었다.


여성을 그려내는 시각은 KBS2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 또한 돋보인다. 강모연(송혜교 분)은 진정 멋진 여성이다. 통속과는 거리가 멀다. 2회의 카페 이별신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다른 이유도 아닌 신념 때문에 좋아하는 남자를 차버리다니! 더군다나 그런 어마무시한 외모의 소유자인 유시진(송중기 분) 대위를 말이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죽이거나 본인이 죽을 수도 있는 그런 일을 한다는 거네요, 유시진씨는. 나쁜 사람들하고만 싸우나요? 나는 매일같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려고 수술실에서 12시간도 넘게 보내요. 그게 제가 하는 일이죠. 생명을 위해 싸우는 것. 그런데 유시진씨의 싸움은 죽음을 통해 생명을 지키려는 거네요. …(중략)… 전 의사입니다. 생명은 존엄하고 그 이상을 넘어선 가치나 이념은 없다고 생각해요. 미안하지만 제가 기대한 만남은 아닌 것 같네요."


이토록 섹시한 이별이라니!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녀의 이별이란 건, 신분 차이(부모의 반대는 필수) 아니면 성격 차이(결국은 풀릴 오해들)에서 비롯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태양의 후예>가 그린 이별은 의사와 군인, 두 직업인의 신념 차이에서 발생한 이별이었다. 게다가 신념을 이유로 이별을 통보한 게 남자 쪽이 아닌 여자 쪽이란 사실은 더 놀랍다. 작가의 시각은 이처럼 성숙하고 선진화 돼 있어서 '사랑밖엔 난 몰라'식의 통속적 여성 캐릭터를 거부하고 있는 듯하다.




강모연의 유머러스한 성격도 능동적 여성상에 부합한다. 많은 드라마에서 유머 담당은 남자다. 남자가 유머를 던지면 여자는 마음속으로 그의 재치를 흡족해하며 웃음으로 보답한다. 하지만 핑퐁처럼 주고받는 김은숙(메인 작가)식 대사에서, 유머감각은 강모연과 유시진에게 공평하게 주어져있다. 한마디도 지지 않는다. 아니, 강모연은 오히려 빛나는 재치로 유시진을 리드한다.


유시진이 강모연의 매력에 빠지는 계기 또한 주목할 만하다. 주치의의 미모가 중요하다며 너스레를 떨던 유시진은 사실 의사로서 강모연의 헌신적인 모습에 반한다. 응급환자를 실은 이동침대에 올라탄 채 수술실로 들어가는 강모연의 뒷모습을 유시진은 홀린 듯이 바라본다. '일하는 남자는 섹시하다'는 공식에 맞추는 여느 드라마와 달리 <태양의 후예>는 '일하는 여자의 섹시미'를 부각한 셈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단지 외적인 섹시미로 남자를 반하게 하는 여자들만 TV에서 봐온 것이 아닐까?


<태양의 후예>는 지상파 드라마의 심기일전이라고 볼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응답하라> 시리즈로 대표되는 케이블채널 tvN의 드라마가 시장을 압도하는 분위기에서, 사전제작으로 완성된 영화 같은 느낌의 <태양의 후예>는 지상파 드라마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 의지를 불태우는 듯하다. 뒤늦은 느낌도 있지만, 그래도 지상파 드라마의 '탈 통속' 움직임이 반갑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손화신 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종 업데이트 16.03.07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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