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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Apr 12. 2016

다시 봄이 왔다, 부끄러운, 봄이


 [현장] 
세월호 추모콘서트
'다시, 봄'




장구 소리가 한풀이처럼 뜨거웠다. 일요일인 10일, 충무로 남산골 한옥마을 안 국악당에선 폭풍처럼 몰아치는 장구 소리가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 세월호 2주기 콘서트 '다시, 봄'의 첫 무대였다. 소나기 프로젝트의 미친 듯이 휘몰아치는 장구 5대 연주가 끝나자 공연장은 더욱 조용해졌다. 노란 상의를 입은 한 남자가 무대 위로 올라와 마이크를 잡았다.


"첫 공연으로 장구 소리를 들었는데, 들으면서 내내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니 또 생각이 났습니다. 신나게 심장 뛰어가며 열심히 살고 싶었던 아이가... 저는 세월호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2학년 3반 예은이 아빠 유경근입니다.


726일째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오늘입니다.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예은이가 보고 싶어, 눈을 감는 것도 싫고 눈을 뜨는 것도 싫습니다. 매우 어려운 4월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특히 이런 공연을 보면서 느끼는 건 세월호를 잊지 않는 길이 정말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남산골 한옥마을과 국악단, 68명의 공연자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특히, 잊지 않겠다는 그 마음에 감사합니다. 안전한 대한민국, 모두의 생명과 인권이 존중받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마음으로 이 공연을 끝까지 지켜봐주실 관객 여러분에게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런 자리가 많이 만들어지고, 많은 시민이 참여하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 번 힘을 내고 위로를 받고, 부끄럽지 않은 아빠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유경근 집행위원장이 무대에서 내려온 이후 공연은 5시간 동안 이어졌다. 국악부터 재즈까지 다양한 장르가 무대에 올랐다. 국악팀 고래야, 잠비나이, 음악인 노동조합 유니언 밴드, 싱어송라이터 김목인, 사이, 조동희, 권나무, 강승원,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 등 뮤지션 68명이 릴레이로 무대를 꾸몄다. 오후 2시부터 7시까지 국악당 안에서 뮤지션과 관객들이 예은이와 그의 친구들을 기억하는 동안, 국악당을 둘러싼 천지사방엔 벚꽃과 진달래, 개나리가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밤이 선생이다>는 책으로 잘 알려진 황현산 교수는 노래가 아닌 산문시로 추모의 마음을 전했다. '잘 가라, 아니 잘 가지 말라'는 제목의 이 시는 <다시, 봄> 앨범에 그의 담담한 목소리로 담겨있다. 이날 콘서트에서 낭송된 비통하고 절절한 구절구절을 아래에 옮긴다.


"벌건 대낮에 푸른 댓잎 같은 생명들이 우리의 눈앞에서 물속에 잠겨들었다. 물속에서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아이들은 어른들을 믿었다. 이 비통함이 잊힐 것이 두렵고, 또다시 번들거리는 얼굴로 웃게 될 것이 두렵다. 죄악의 구렁텅이에 더 깊이 잠겨들어 죄악이 죄악인 줄도 모르고 마음이 무디어질 것이 두렵다.


우리는 또다시 시대의 악을 세상의 풍속으로 여길 것이고, 거기서 오는 불행을 운 없는 사람들의 횡액으로만 치부할 것이며, 참화는 또다시 일어날 것이다. 무슨 말이 이 무서운 망각에서 우리를 지켜줄까. '그동안 가난했으나 행복한 가정이었는데, 널 보내니 가난만 남았구나.' 단원고의 한 학부모가 이런 말을 써서 팽목항에 내걸었다. 이 짧은 말의 밑바닥에 깔려있을 절망의 무한함까지 시간의 홍진 속에 가려지고 말 것이 두렵다.


우리는 전란을 만난 것도 아니고 자연재해에 휩쓸린 것도 아니다. 싸워야 할 적도, 원망해야 할 존재도 오직 우리 안에 있다. 적은 호두 껍데기보다 더 단단해진 우리의 마음속에 있으며, 제 비겁함에 낯을 붉히고도 돌아서서 웃는 우리의 나쁜 기억력 속에 있다. 이 처참한 죽음을 어떻게 다른 죽음과 구분할 것인가. 가슴에 묻자니 가슴이 좁고 하늘에 묻자니 하늘이 공허하다. 잘 가라, 아니 잘 가지 말라. 이렇게 쓰는 만사가 참으로 무능하다."


이번 추모 공연의 하이라이트인 '다시, 봄 프로젝트' 무대가 이어졌다. 이들이 2015년 2월 발매한 <다시, 봄>은 '세월호를 기억하는 노래 음반'과 '세월호를 기억하는 시 음반' 두 장으로 구성돼 있다. 이날 콘서트에 참여한 프로젝트 멤버 사이는 "이 프로젝트를 마련한 건 위로와 추모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진실이 밝혀지길 원하는 마음 때문이었다"며 "며칠 후, 진실을 밝혀줄 사람들에게 투표하자"고 말했다.


하이미스터메모리는 세월호 참사 얼마 후에 만들어 놓은 '별의별'이란 곡을 처음 선보였다. 노래 중간에 독백처럼 읊조리는 내레이션이 인상 깊었다. "너를 생각하면 거리가 바다로 변해. 아무 일 없는 듯 환하게 웃으며 내게로 올 것 같아."


최근 많은 사랑을 받은 tvN 드라마 <시그널>의 OST를 부른 조동희가 다음 무대를 꾸몄다. 그녀는 세월호 희생자를 위해서 노래를 만들어오고 있었다. 지난해 1주기에 발표한 '작은 리본'을 이날 불렀고, 2주기에 만든 '너의 가방'이란 곡도 소개했다. 무대에서 내려오기 전, 조동희는 "이 노래들을 만든 것은, 노래가 많이 퍼져 공감되길 바라는 마음 하나에서였다"고 말했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작사 작곡한 강승원은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자장가'를 불렀다. 그의 담담한 목소리가 공연장을 따뜻하게 감쌌다. 이날 마지막은 재즈계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는 말로의 무대였다. 그녀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해 자신이 작곡한 노래 '잊지 말아요'를 불렀다. 가사의 마지막 구절이 관객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영원히 만날 거예요. 우린 따뜻한 이별 안에서."


참가팀 모두가 관객 앞에 섰다. 이들은 마지막으로 사이가 직접 만든 '다시, 봄'이란 곡을 다 같이 불렀다. 이 곡은 지난 2015년 봄, 몇몇 뮤지션들과 문화예술인이 모여 세월호를 기억하는 음반을 만들기로 하고서 만든 노래다. 가사 마지막 구절이 메아리처럼 되풀이되며 콘서트는 막을 내렸다.


"오오 부끄러운 봄

오오 기억하는 봄

오오 기울어진 봄

오오 변한 게 없는 봄

오오 질문하는 봄

오오 대답이 없는 봄

오오 부끄러운 봄

오오 기억하는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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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업데이트 16.04.12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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