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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Sep 08. 2015

Reset

김연아의 마음경영법




“4년 전 밴쿠버 때의 김연아는 잊은 지 오래됐다. 지금 여기, 현재에만 집중하고 있다.” 


                                                                                  - 2014. 2. 18 소치 올림픽을 앞두고, 김연아 인터뷰 중


 




#7. Reset
: 김연아의 마음경영법



세계를 제패한 피겨선수 김연아. 그녀가 강심장이라는 사실은 온 국민이 다 안다. 올림픽과 같은 세계무대에서 육중한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목표한 바를 이루는 모습은 피겨 실력 만큼이나 감탄스럽다. 김연아의 강심장의 비결이 궁금했다. 태생적으로 쿨한 성격도 있겠지만 평생에 걸쳐 부담감과 싸워온 사람만이 터득할 수 있는 마음경영법이 분명 있을 것 같았다. 2014년 소치 올림픽을 앞둔 김연아의 인터뷰들을 보며 그 비결을 찾을 수 있었다. 인터뷰의 공통된 키워드에 답이 숨어있었다.    


‘Reset’

 

“이제 프리 스케이팅만 남겨뒀습니다. 경기에 임하는 각오 한 마디 해주시죠.” 지겨우리만큼 들었을 기자의 이 질문에 그녀 또한 지겨우리만큼 매번 비슷한 답변을 내놓았다.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이전의 경기를 잘 했든 못 했든 상관없이 경기에 임하겠습니다.” 한마디로 리셋시키겠단 말이다. 마음에 집착 덩어리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경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오랜 훈련과 경기 경험을 통해 몸소 깨달았을 것이다. 김연아는 눈앞에 주어진 경기가 처음인 것처럼 매번 비움의 의식을 치렀다.


불교의 관점을 빌리자면 무언가를 바라거나 혹은 바라지 않는 모든 마음의 판단들이 집착을 낳는데 이 집착이 마음의 흐름을 막는 장애물이다. 김연아의 인터뷰를 보면 그녀가 마음에 집착덩어리를 만들지 않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 것 같다. '쇼트 프로그램을 잘 했으니까 프리 스케이팅도 실수 없이 하고 싶다'든지 '쇼트 프로그램에서 실수를 했으니까 프리 스케이팅에서는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식의 말은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아무리 좋은 각오일지라도 그것이 마음 안에서 틀을 만들면 자유를 빼앗기고 그걸로 끝이라는 것을. '이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으니까 이번에도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언뜻 보면 스스로를 격려하는 긍정적인 생각 같지만 그 마저도 하나의 집착이다. 빈 방보다 좋은 건 없다. 


스피치도 마찬가지다. 지난번 프레젠테이션을 망쳐서 점수가 깎였으니 이번에는 잘 해야 한다는 생각, 이번에 잘 해야지 진급을 할 수 있다는 생각, 생각, 생각...... 우리는 이어져오고 이어져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철커덩하고 이 순간만을 떼어낼 줄 알아야 한다. 백지상태로 마음이 리셋되면 이전의 시간도 이후도 시간도 없이 오직 이 순간만이 남는다. 덩그러니 떼어진 이 순간, 바로 몰입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묘비명에 이런 글을 남겼다. “I hope for nothing, I fear nothing, I am free."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집착이 없는 상태, 즉 자유로운 마음 상태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에서 출발한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nothing의 상태가 곧 reset의 상태다. 김연아는 경기를 치르는 그 순간에 우승을 원했을까? 나의 추리가 틀리지 않았다면 김연아는 분명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승을 원하는 시간은 경기 전과 경기 후의 시간들이지 그 순간은 아니었을 테다. 경기가 시작되고 음악이 흐르는 순간, 그땐 올림픽도 없고 금메달도 없고 관중의 시선도 없고 오직 노래와 동작만이 남은 텅 빈 우주, 그 속에서 김연아는 홀로 서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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