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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Sep 09. 2015

분노의 윤리학

분노와 평화는 절대 공존할 수 없다




#8. 분노의 윤리학
: 분노와 평화는 절대 공존할 수 없다



몰입, 리셋, 위빠사나 수행. 갖가지 마음운영법을 총 동원해서 강조한 이것. "마음이 평온해야 말도 잘 나온다." 그래서 말인데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서도, 사실 초반에 꺼냈어야 하는 이야기를 꺼내볼까 한다. 아무리 몰입, 리셋, 위빠사나 해도 '그것'이 있는 한 절대 평온은 없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 그것은 이름하여 분.노. 2013년 개봉한 한국영화 <분노의 윤리학>에서 사채업자 명록(조진웅)이 부하와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자. 


“민태야, 우리 인간의 감정 중에는 말이야. 희로애락이라는 게 있잖아. 기쁨, 분노, 슬픔, 쾌락. 넌 이 중에 뭐가 제일 중요할 것 같냐? 뭐가 제일 형님 같아?” 

“아무래도...... 쾌락 아닐까요?” 

“아니에요. No~ 분노가 제일 형님이야. 우리가 화가 나잖냐? 그러면은 기뻐지지도 않고 슬퍼지지도 않고 즐거워지지도 않아요. 그런데 반대는 돼. 네가 돈을 많이 벌었다 쳐. 아이고 좋지~ 그런데 옆에 놈이 더 벌었어. 그럼 화가 나니, 안나니? 자, 기르던 개가 있어. 그런데 차에 치여 죽어버렸어. 아이고 슬프지~ 그런데 그 개 친 놈을 생각해봐. 화가 나니, 안 나니? 자, 또 네가 노래방에 가서 즐겁게 노래를 막 불러. 아이고 신나~ 그런데 서비스를 안 줘. 그러면 화가 나니, 안 나니? 무지하게 난다 너~ 그러니까 말이야. 우리 인간의 감정 중에는 분노가 제일 대빵이다 이거야. 고로 인간은 분노만 잘 다스리면 마음을 다~ 다스리는 거다 이거예요!” 


이런 치열한 사유가 사채업자의 머릿속에서 나왔다니! 놀랄만한 통찰력이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정신적 스승 틱낫한 스님도 저서 <화>를 통해 화가 나면 다른 감정들을 느끼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살다 보면 어디 그런가. 자잘한 짜증까지 모아 보면 화를 끼고 사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대사처럼 돈을 많이 벌어도 화가 나고, 개가 죽어도 화가 나고, 노래방에서 즐겁게 노래를 불러도 화가 나니 참 화가 날 노릇이다. 그렇지만 화 날 정도로 예리한 이 논리를 따라가 보면 가장 유용한 마음운영법이 도출된다. 조진웅의 말마따나 '분노만 다스릴 수 있으면 마음을 다~ 다스릴 수 있다'는 결론. 


분노를 다스린 후에 남들 앞에 설 것. 아니라면 차라리 연단에 서지 말 것. 분노는 불의 성질을 지녔기 때문에 직접 말로 표현되지 않더라도 뜨거운 화기火氣가 공간 안에 쉬이 퍼진다. 청중은 부정적인 기운을 뿜는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지도, 마음을 열지도 않는다. 불기운이 자기 마음속에 들어오는 것을 본능적으로 차단하는 보호본능 때문이다. 말할 내용만 잘 전달하면 된다는 생각은 오산이다. 누군가 앞에서 말을 한다는 것은 언어 더하기 표정, 눈빛, 제스처 등을 아우르는 '태도'를 전달하는 일이다. 배우 김혜수가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누군가 옷을 못 입는 건 충분히 용납 가능해요. 외모가 촌스러운 건 참을 수 있죠. 하지만 태도가 촌스러운 건 참을 수 없어요.” 분노는 성숙한 태도를 거쳐 윤리성을 확보하기도 한다.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문제지만, 화를 다스리는 건 태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 옷은 촌스럽게 입어도 마인드는 촌스럽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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