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화신 Sep 09. 2015

결심의 재발견

결심은 억제, 폭력, 갈등이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좋은 결심으로 덮여 있다”  


                                                                                                  - 안젤름 그륀






#9. 결심의 재발견
: 결심은 억제, 폭력, 갈등이다 



인도의 위대한 사상가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는 말했다. “결심이라는 것은 안 하기로 결심한 그것을 강화시키기 때문에 좋지 않습니다. 결심은 억제, 폭력, 갈등입니다.” 보통 결심이란, 실행에 앞서 추진력을 불어넣는 유익한 과정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는 크리슈나무르티의 생각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결심은 내면에 작용-반작용을 일으키는 모순 덩어리다. 하지 않으려고 하면 더 하게 된다. 


차동엽 신부는 <무지개 원리>를 통해 심리학적 논리에 근거, 이 모순에 대한 대비책을 내놓았다. 나쁜 습관을 바꾸기 위해서는 '하지 않겠다'란 부정문이 아닌 긍정문으로 결심의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3P' 공식인데, 긍정적(positive)-현재형(present)-개인적(personal)인 문장으로 결심의 문구를 만들어야 한다. “더 이상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는 말 대신 “나는 금연가다”고 말해야 좋은 결심이고 금연에 성공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하지만 가장 좋은 건 결심을 아예 안 하는 것이다. 무언가를 '하지 않겠다' 혹은 '하겠다'는 양쪽 모두가 부정적 결과의 씨앗을 품고 있다. 세계적 영성가 독일의 안젤름 그륀 신부는 그의 책 <머물지 말고 흘러라>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좋은 결심으로 덮여 있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몇 번씩이나 무언가를 계획하지만 실행하지 못한다면, 그건 바로 지옥을 준비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결심을 해도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그러자 분노가 치밀었지요. 스스로를 책망하고, 자신을 거부했습니다. 내면의 분열은 이렇게 커져갔습니다. 결국 나는 이 분열을 극복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이때 나는 신에게 의지했습니다.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었지요. 당신도 내면의 분열을 막으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성취도는 더욱 작아지지 않던가요?”


그의 말이 옳다. 우리가 결심을 하고 그 결심한 바를 100% 실행해낸다면 문제가 없겠다. 허나 인간이란 나약한 존재이고 결심이란 놈은 언제나 나약한 인간들 앞에 덫을 놓는다. 잘 해보자고 한 결심이 내면의 분열을 불러와 마음을 가시밭으로 바꿔놓는다. 바로 실행하는 것. 이것이 최선이다. 계획이란 놈이 결심이란 집에 들어가 죽치고 앉아있지 못하게 하라. 행동이란 목적지로 직행하게끔 등을 떠밀어라. 행동하는 힘이 추진력이지 결심하는 힘이 추진력은 아니다. '하루에 세 장씩 글쓰기' 계획을 세웠다면 '하루에 세 장씩 글을 쓰겠어!'라고 자꾸 말하지 말고 다음 날 해가 떴을 때 조용히 컴퓨터 전원을 켜라. 내적 분열에서 스스로를 구할 유일한 방법이다. 


끝으로, 혼자 하는 결심도 말리고 싶지만 더 말리고 싶은 건 타인에게 공언하는 결심이다. 만약 당신에게 20년 간 못 고친 '지각병'이 있고 오늘도 친구와의 약속시간에 늦었다면 그냥 ‘미안하다’고만 말해야 한다. ‘내일은 진짜 안 늦을게!’ 하고 입 밖으로 공언하는 순간, 그리고 내일 지각을 하는 순간,  당신은 책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만다. 이건 자기 내면만 분열되는 게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까지도 분열된다. 내적 평화를 원한다면 결심 따위 그만하고 '닥치고' 실행할 것을 권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분노의 윤리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