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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Sep 10. 2015

칭찬의 자급자족

흔들리지 않는 내면을 위하여



당신이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 로마 철학자 세네카 



나야 말로 내가 의지 할 곳이다. 나를 제쳐놓고 내가 의지할 곳은 없다. 착실한 나의 힘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                         

                                                                                                                             - 법구경






#10. 칭찬의 자급자족
: 흔들리지 않는 내면을 위하여



퀴즈 하나. 인간이 산업화를 거치면서 잃어버린 것은? 퀴즈 둘. 간디가 물레를 돌렸던 이유는? 퀴즈 셋. 당신이 가끔 이유 없이 불안한 이유는? 정답을 한 단어로 공개하자면 바로 '자급자족'이다. 원래 인간은 수렵과 농경으로 자신이 먹을 음식과 입을 옷을 자급자족해왔다. 하지만 산업화가 되면서 그 능력을 상실했고 기계의 부품으로 전락했다. 노동력을 활용해 돈을 벌고 번 돈을 음식으로 다시 바꿔야 배를 채울 수 있게 되면서 일자리를 잃는 것만으로도 삶이 와르르 무너지는 나약한 존재가 됐다. 그럼 간디가 밤낮으로 물레를 돌렸던 이유는? 그건 간디가 실 짜는 게 취미여서가 아니라 자급자족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상징적 행위였다. 자급자족이 곧 인간 존엄의 회복이므로. 끝으로 당신의 이유 없는 불안. 그것은 스스로를 다독이는 칭찬의 자급자족이 부족해서다. 


자급자족한다는 것은 강하다는 뜻이다. 진정한 '어른'이란 스스로를 보살 필 줄 아는 사람, 감정의 영역까지도 자급자족할 줄 아는 사람이다. 우리에겐 아빠가 필요하고 엄마가 필요하고 친구가 필요하고 선생님도 필요하지만 이들이 곁에 있어주지 못할 때도 많다. 그럴 때 스스로에게 아빠, 엄마, 친구, 선생님이 되어 위로와 용기를  자급자족한다면 흔들리지 않는 내면을 가질 수 있다. 랄프 왈도 에머슨은 이것을 '도구상자'라고 표현했다. 자기 내면에 모든 도구가 고루 갖춰진 도구상자가 구비돼 있어야 하며 필요할 때 즉각 도구를 꺼내어 스스로를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도구상자에서 '칭찬'은 필수 항목이다. 칭찬을 내부에서 자체 공급하지 못하고 외부 조달에만 의존하면 마음에 안정감이 생기기 힘들다. 우리는 누군가 물을 주지 않으면 홀로 시들어버리는 온실 속의 꽃이 되어선 안 된다. 외부에서 오는 칭찬은 탄산음료와 같다. 마시면 시원하고 짜릿짜릿하지만 마실수록 또 마시고 싶고 갈증을 일으킨다. 칭찬도 잘 '견뎌내야' 한다. '슬픔을 견디듯 기쁨도 잘 견디게 해주소서'란 기도문처럼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결국 양날의 검이기에 늘 경계할 필요가 있다. 내가 무언가를 잘 했어도 누군가  칭찬해주지 않으면 섭섭하고 심지어 울적해지기도 하는데 이런 감정을 경계해야 한다. 사실 나의 경우는 칭찬을 들어도 무덤덤하려고 많은 연습을 한다. 그래야 언젠가 내게 저평가와 비난의 때가 오면 똑같은 무덤덤함으로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란 말을 좋아한다.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뜻으로 많이 해석되지만, 난 이 말이 자기 스스로를 귀히 여기고 칭찬해주고 다독일 줄 알아야 하늘도 그 사람을 귀히 여겨 대접해준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스스로 돕는 자는 인생의 주도권을 자기 자신이 쥐고 있다. 반면 남으로부터 칭찬받길 기대하는 사람은 인생의 주도권을 그 사람 손에 넘긴 것과 다름없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보다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 그런 사람을 보면 괜히 믿음이 간다. 그런 사람이 하는 말이라면 그냥 믿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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