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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Nov 20. 2016

1악장: 무엇을 쓸 것인가

쉼표글




글 쓰는 사람.


스스로 이런 정체성을 가진 건 1년이 되지 않았다. 글과 상관없는 직업도 몇 번 가져봤다. 잠시 지나온 한 회사에서 그런 적이 있었다. 일을 하다 문득 기사 하나를 읽었는데 석 줄 이상의 무언가를 읽고 있는 나 자신이 말도 안 되게 만족스러웠다. 멈췄던 아가미가 벌렁거리는 느낌! "아, 심지어 난 석 줄 이상의 글을 '쓰기도' 했었지" 하고 멀지 않은 과거를 상기했을 땐 확신이 찾아왔다. "그만 헤매고 글 쓰는 일로 돌아가자."


휴가 마지막 날이다.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물론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다만 올해 초부터 끌고 다니던 글쓰기에 대한 고민들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았고 오늘 브런치 위에 쉼표 하나를 또렷이 남기고 싶어 노트북을 열었다. 나눌 필요가 전혀 없는 이런 사적인 고민도, 글을 위한 이 공간에선 나눔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2016. 11. 19.



리허설: 어떻게 쓸 것인가


요즘 난 내가 리허설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서 있단 기분이 든다. 국문학을 배우고 몇몇 직업을 전전하다 지금의 일에 정착해 영화와 음악에 관한 기사를 몇 년 간 써왔다. 올해는 오랜 꿈이었던 에세이도 출간했다. 이 모든 리허설을 돌아보니 그간의 과정은 '어떻게' 쓸 것인가를 탐구하는 시간이었다. '무엇을' 쓸 것인가는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무엇에 관해 쓰든 나만의 문체로 쓰길 원했고 그 문체가 세련된 스타일을 갖추길 바랐다. 때문에 나름의 시도들을 해왔는데, 돌아보니 다음과 같다.


리듬

언제나 중요하게 생각한 건 '리듬'이었다. 내 글이 음악 같길. 읽는 사람이 단 한 번도 중간에 멈추어 딴짓을 하거나 딴생각을 하지 않는, 물 흐르듯 몰입되는 글을 쓰고 싶었다. 4분음표, 8분음표, 16분음표. 각기 다른 박자의 음표들이 각기 다른 시간을 가지며 리듬을 만들어내듯 내가 쓰는 문장들도 출렁이는 리듬을 갖길 바랐다. 한 문장과 다음 문장이 개별적으로 제 역할을 하면서도, 두 문장이 만드는 '관계'가 또 다른 화학작용을 일으킬 때 글 전체가 하나의 분위기를 띤다는 것도 깨달았다. '유기성'과는 또 다른 문제인 듯싶다. 단어들을 모아 최고의 조합으로 배열하는 시(詩)처럼 그런 방식으로 모든 글을 쓰고 싶었고, 이를 위한 연습은 결국 나만의 '색깔'을 찾는 작업이었다.


표현

나는 '표현'에 유독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같은 글도 '설명'보다는 '표현'으로 써서 읽는 사람이 무언가를 '느끼도록' 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머리로 기억하는 건 금방 사라지지만 마음으로 느낀 건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으니까.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단지 아름다움을 향한 본능이 계속 나를 잡아당기는 듯하다. 구제불능의 탐미주의자처럼. 은유부터 상징까지 내 멋대로 표현법을 실험해가며 탐구 중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영롱하게 빛나는 별'이라고 처음에 썼다가 '빛나는'을 지운다. '영롱하다'와 '빛나다'는 으레 붙어 다니는 실과 바늘 같은 단어라 이 자체로 식상하기 때문이다. '영롱한 별'로 간추리는 게 그나마 나은데 이것도 식상하다. 원래 별은 영롱하니까. 이렇게 시도할 때도 있다. '영롱한'은 사물 앞에 주로 쓰이니까 '영롱한 오드리헵번'처럼 사람 앞에 써서 최대한 낯설게 한다. 표현의 핵심은 참신함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참신함은 생략 혹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조합으로 달성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예를 들면 사람의 마음이나 음악 같은 것들을 글로 표현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를 쓴 미셸 슈나이더처럼 음악 혹은 음악가의 내면을 글로 표현해보는 일도 언젠가 해보고 싶다. 요즘 나는 음악에 빠져 있다.



1악장: 무엇을 쓸 것인가


지금까지는 '어떻게' 쓸 것인가에 몰두했다면 이제부터는 '무엇을' 쓸 것인가에 집중하려 한다. 본격적으로 1악장을 시작하는 내가 해야 할 건 '무엇'을 쓸지 찾는 일이다. 그런데 이게 너무 어렵다. <나를 지키는 말 88>을 쓴 후 1년 동안 찾고 있는데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내 안에서 그걸 끌어내는 게 두려워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난 그걸 찾을 것이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확실한 글쓰기를 하고 싶다. 그렇다고 교훈이나 의도가 확실한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는 강박은 없다. 메시지보단 '주제'가 있는 글을 쓰고 싶다. 그 주제는 '사랑'이나 '의지', '신'처럼 보편적이고 인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면 좋겠다.


형식도 고민이다. 에세이는 주로 '나'에 대해 쓰는 글인데 솔직하게 나를 보여주는 글을 내가 쓸 수 있을까 두렵다. 나의 못난 부분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일을 내가 할 수 있을까. 마음을 움직이는 에세이는 그런 '맨 얼굴의 글'인데 그렇게 하기엔 나는 겁도 많고 자기검열이 심한 편이다.


내 오랜 꿈은 '문학'이다. '나'에 대해 쓰는 게 아니라 '인간'에 대해 쓰고 싶다. 나에 관해 쓰는 게 인간에 관해 쓰는 것이긴 하지만, 좀 더 보편적이고 깊은 범위로 나아가 상상력 있는 글을 써보고 싶다. 하지만 이야기(서사)의 힘이 강한 글은 쓰지 않을 것 같다(못 쓸 것 같다). 나는 <데미안> <안네의 일기> <노인과 바다> <죄와 벌> 같은 소설이 좋다. 시도 갈망한다. 그림이든 음악이든 건축이든 모든 예술은 시라는 형태를 이상향 삼아 나아가고 있다고 본다.



2악장: 어떻게 영혼을 울릴 것인가


'어떻게 쓸 것인가'를 지나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고 난다면 그다음은 '어떻게 영혼이 담긴 글을 쓸 것인가'를 고민할 것 같다. 그게 내 인생의 글쓰기 '2악장' 시작점일 것이다. 읽는 이로 하여금 술술 읽히게 하는 것도 좋고, 무엇에 대해 느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도 좋지만 결국 나아갈 목적지는 사람의 영혼을 건드는 명상 혹은 기도 같은 글을 쓰는 것이다. 요즘 <데미안>을 다시 읽으면서 내 감성이나 이성이 아닌 영혼이 반응함을 느낀다.


내면의 성장, 희망 등의 주제를 그리 밝지 않은 톤으로 그려보고 싶다. 인간의 어두운 면도 있는 그대로 조명하고 싶다. 모순덩어리 삶, 모순덩어리 인간에 대해 도스토예프스키나 체호프처럼 있는 그대로 쓸 수만 있다면 거기엔 희망도 담을 수 있을 것이다. 인생엔 절망이 있지만 인간으로서 이것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관해서도 써보고 싶다. 내 인생은 늘 문제가 있다만, 내가 관심 있는 건 그 문제가 아니라 그걸 대하는 나(인간)의 태도다.  


다음 3악장은 무엇이 될지 아직 나도 모르겠다.





일개 저자인 나는 대작가라도 되는 듯 이런 고민을 하며 산다. 우스울지도 모르겠지만 이게 나를 움직이는 힘이다. 기자든 작가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나는 단지 글을 정말 잘 쓰고 싶은 한 사람일 뿐이다. 글쓰기에서 만큼은 마에스트로처럼 탁월하고 싶다. 글로써 사람들의 영혼을 어루만지고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이번 생의 내 미션이라 믿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한 게 사실 10년은 된 것 같은데 이토록 오래도록 유지되는 꿈, '탁월함'에 대한 갈망 탓에 나는 계속하여 혼자 치열하게 고민하고 끊임없이 써볼 작정이다. 쉼표를 찍었으니 이제 다시 나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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