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 마이클 틸슨 토머스
(협연: 피아니스트 임동혁)
가히 '어벤져스 급' 오케스트라였다. 모든 악기가 더없이 신중하면서도 더없이 민첩하게 움직였다. 지휘자 마이클 틸슨 토머스의 손끝을 따라 단원들은 오차 없는 소리를 만들어냈다. 티끌 하나 허용되지 않을 듯 완벽한 소리의 균형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지만, 동시에 숨이 탁 트이는 분명한 통쾌함이 있었다.
세상의 것이 아닌 듯, 이음새 하나 눈치챌 수 없었던 천의무봉의 연주. 지난 10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지휘자 마이클 틸슨 토머스가 이끄는 세계적 오케스트라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공연이 있었다. 첫 내한이었다. 105년 역사를 지닌 어벤져스 군단의 연주를 손꼽아 기다려온 클래식 애호가들로 콘서트홀은 만석이었다. 객석엔 각계 유명인사의 얼굴들도 눈에 띄었다.
오랜 호흡으로 이끌어 낸 '합'
이날 프로그램은 마이클 틸슨 토머스가 작곡한 '아그네그램'과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 바단조 op.21, 말러 교향곡 1번 라장조였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이들의 주특기인 말러였다.
연주회의 막이 오르고 처음 연주된 '아그네그램'은 소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조화'의 극치였다. 장인의 손끝으로 만들어진 손목시계의 톱니바퀴가 생명력 있게 맞물려 약동하는 것 같았다. 이 곡 '아그네그램'은 마이클 틸슨 토머스가 샌프란시스코의 특별한 후원자이자 친구인 아그네스 알버트의 9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곡이다. 22년째 호흡을 맞춰온 지휘자 마이클 틸슨 토머스와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놀라운 합으로 시작부터 객석을 압도한 연주였다.
다음은 쇼팽이었다. 한국인이 사랑해 마지않는 피아니스트 임동혁이 무대 위로 등장했다. 과연 쇼팽 스페셜리스트다웠다. 건반을 '흐르는' 손가락은 쇼팽의 낭만적이고도 시적인 세계의 황홀경을 고스란히 경험하게 했다.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마친 임동혁은 객석의 뜨거운 호응에 쇼팽 마주르카를 앙코르곡으로 선물하고 퇴장했다.
전통의 심포니, 그 정수를 증명하다
2부는 말러였다. 105년 전통의 심포니는 그 정수를 말러로써 여과 없이 증명했다. 이들이 들려준 말러 교향곡 1번은 말러가 가장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매만져온, 자신의 모든 희망과 절망을 투영한 영혼의 고백이다. 미국식이었던 1부와 달리 2부 말러 연주에선 독일식으로 오케스트라 배치를 바꾸며 하모니에 더욱 섬세함을 두었다. '느리게 끌듯이' 시작한 1악장을 지나 '격렬하게' 소용돌이친 4악장까지. 그야말로 장대한 운명의 스펙트럼에 객석은 숨죽여 몰입했다. 특히 4악장의 마지막, 세계의 모든 운명이 일제히 기지개를 켜듯, 무대의 모든 악기가 자신의 소리를 내며 치달은 절정은 압도적이었다.
"말러의 음악은 말합니다. 현실에는 좌절과 실망, 분노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아름다움, 희망, 경이로움에 대한 기대를 놓지 않아야 한다고요. 그것이 말러 교향곡에 흐르는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마이클 틸슨 토머스)
연주회에 앞서 지난 8일 오전 서울 반포 JW 메리어트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마이클 틸슨 토머스가 한 말이다. 그가 소개한 말러의 메시지처럼, 이날 한국을 찾은 심포니의 연주는 우리 현실의 좌절 속에 한 줄기 경이로운 빛을 선사했다. 마에스트로가 전해준 희망은 음악처럼 그렇게 여운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