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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Sep 10. 2015

이미 도착한 미래

 상상의 힘, 이미지 시뮬레이션




마음속 비전이 진실하고 강력하다면 그것은 현실에서도 진실하고 강력할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암흑 속에서 보이지 않는 눈을 가지고도 볼 수 있는 미래다.

                                       

                                                                                                         - 라코타 족 ‘검은 고라니’의 연설






#12. 이미 도착한 미래
: 상상의 힘, 이미지 시뮬레이션


이 책을 쓰기 위해 여러 사람을 만나 인터뷰를 나눴다. 그들 대부분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떨었는지에 대한 무용담으로 이야기의 문을 열었다. 개다리춤 추듯 다리가 흔들려서 벽을 잡고 발표한 회사원부터, 발표 전에 마시려고 넣어둔 동아리방 냉장고 속 소주를 선배가 마셔버리는 바람에 발표를 포기한 대학생까지. 그중 최고봉은 발표하러 나가다가 기절한 사람이다. 미리 알려두지만 이 '역대급' 주인공은 현재 대학 강단에서 많은 학생들에게 심리학을 가르치는 교수다. 떨림 때문에 기절까지 한 사람이 사람들 앞에 서는 직업을 갖기까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눈을 떠보니 양호실 침대였다. 이름이 호명되고 교단을 향해 두 발짝을 걸어간 것 까지는 기억이 난다. 젊은 여선생님은 누워있는 그에게 울듯이 말했다. 다시는 발표 같은 거 시키지 않겠노라고. 선생님이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하겠다고. 기절사건 이후 한동안 그는 부끄러워 친구들을 피했다. 아무도 자신을 볼 수 없는 청소도구함 안에 숨어서 혼자 책을 읽곤 했다. 세월이 흐르고 붙박이 청소도구함에 들어가기엔 몸집이 너무 커버렸을 때, 고등학교 2학년이던 그는 연극부 동아리에 들어갔다. 비록 쑥스러움이 많은 그였지만 연출에 대한 열정이 컸기에 용기를 냈다. 동아리 친구들과 모여 무대를 구상하고 이야기 나누는 과정 속에서 서서히 자신감을 찾아갔다.


그러던 중 인생을 바꾸는 사건이 일어났다. 보통 드라마에서 많이 보던 장면인데, 갑자기 무대에 서야 하는 연기자가 아파서 펑크를 낸 것이다. 기절할 것 같았지만 그는 무대에 올랐다. 막이 오르고, 막이 내렸다. 그런데 이게 웬걸. 정말 잘 해낸 거다. 스스로도 '이게 원래 내 모습이 아닌데' 싶을 정도로 잘했다. 무대에 오르기 전 자신 있게 연기하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시뮬레이션(simulation, 모의실험) 한 게 큰 도움이 됐다. 그 무대 이후 강단에 서는 지금까지도 그는 사람들 앞에 서기 전에 무조건 시뮬레이션 과정을 거친다. 포인트는 아주 상세하게 그린다는 거다. 자신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눈빛, 화이트보드에 부드럽게 내려앉는 글씨들, 그때의 감정까지도 생생히 느껴질 정도로 그렸다. 한 번은 매일 하던 시뮬레이션을 하지 않고 교단에 섰는데 인생의 두 번째 기절을 맞이할 뻔했다고.


시뮬레이션은 가상이지만 가상만은 아니다. 상상을 통해 머릿속 공간에서 그 현실을 미리 살아보는 일이다. 뭐든지 두 번째는 쉬운 법. 현실에서 하는 두 번째 강의는 조금 더 편안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은퇴한 역도선수 장미란도 경기 전에 머릿속으로 자신이 역기를 들어 올리는 모습을 반복해서 시뮬레이션했다고 한다. 중요한 건 '감정'까지도 생생히 느껴야 한다는 점이다. 발표 후의 짜릿한 희열을 실제로도 닭살이 올라올 정도로 생생히 느껴야 그 감정의 에너지 파장이 현실에서도 희열을 느끼게끔, 그런 마인드 컨디션으로 자신을 이끌어준다.


우리 마음속에는 이미 우리의 미래가 들어있다. 이미 도착해준 고마운 미래에 먼저 다가가 살갑게 안면을 터놓으면 그 미래가 예정보다 빨리 현실로 모습을 드러내준다. 우리가 꿈을 이루고 싶다면 꿈을 이룬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야 하는 이유다. 상상은 이미 도착한 미래에 건네는 악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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