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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Jul 06. 2017

피처링, 세상에 없는 색을 만들다




다채로워진 대중음악 생태계,
피처링은 '진화'하고 있다





[기획] 가요계 최고의 발명품 '피처링'의 변천사... 세 가지 주요 포인트



피처링은 가요계 최고의 발명품이다. 피처링은 뮤지션을 옭아매는 한계를 부수고, 안 되던 것들을 가능하게 한다. 발라드만 부르던 가수가 힙합 느낌이 나는 곡을 자신의 앨범에 실을 수 있고, 랩만 하던 래퍼가 멜로디와 보컬이 강한 노래를 발표할 수도 있다. 피처링만 있으면 음악적 가능성은 무한해진다. 유닛 그룹, 프로젝트 그룹 등 꼭 팀을 구성할 필요도 없다.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피처링(featuring)'은 '주로 대중음악 분야에서 다른 가수의 앨범 작업에 참여하여 노래나 연주를 도와주는 것을 가리키는 말'(두산백과)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지난 1954년 미국의 남성 그룹 포 에이시즈(The Four Aces)가 알 앨버츠(Al Alberts)라는 가수로 하여금 영화 < Three Coins in the Fountain >의 동명 주제곡을 부르는 데 참여하게 했고, 이때 피처링이란 용어가 처음 사용되었다고 한다.


한국 가요계에선 1997년 지누션이 발표한 '말해줘'에서 엄정화가 피처링을 맡은 게 대표적 초기 피처링 사례다. 그때만 해도 '말해줘' 뒤에 붙은 "(feat. 엄정화)"라는 표기의 괄호 안 'feat'이 낯설었다. 'ft.', 'f.', 'f/' 등으로 줄여서 쓰일 때면 이걸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몰라 난감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피처링은 활발히 이뤄졌고 점점 범위도 확대됐다. 지난 3일 < T-WITH >란 정규앨범을 발표한 김태우는 매드클라운, 손호영, 펀치, 준케이, 택연, 알리, 유성은 등 대규모 피처링 '군단'을 선보이며 타이틀곡을 제외한 전곡에 피처링을 두었다. 하지만 이것이 큰 이슈가 될 만큼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만큼 피처링이 과거보다 활발히 활용된다는 의미다.


피처링이 진화하고 있다. 신인이 인지도가 필요해서, 이미 유명한 가수지만 더 많은 팬의 귀를 사로잡기 위해 피처링을 하는 등 '다양한 변주'를 진화라고 표현하기는 물론 힘들다. 하지만 이런 1차원적인 목표가 아닌 음악 자체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이뤄지는 피처링이 많아지는 건 '진화'라고 표현해도 괜찮을 듯싶다.


요즘 한국 가요계에서 피처링은, 음악적 욕심이 많은 가수가 음악적으로 완성에 다가가게 한다. 다양한 음악적 표현을 시도하게 해주는 '날개'로서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는 음악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지는 순기능을 한다. 가수 혼자만의 고유한 색깔도 유지하는 것도 좋지만, 다른 색깔을 가진 뮤지션과의 협업으로 화학작용을 일으키고 'A+B=C' 형태의 세상에 없는 새로운 색깔을 창조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친분이 아닌 실력으로



피처링이 변화 혹은 진화하는 패턴을 들여다볼 때 가장 눈에 띄는 건 '친분 중심에서 음악 중심으로' 옮겨가는 현상이다. 지금도 여전히 친분이 있는 가수들끼리 상부상조 형태로 피처링을 맡기는 경우가 많지만(이것이 물론 나쁜 건 아니다) 요즘은 친분이 없어도 피처링을 맡기는 경우가 많아지는 듯하다. 피처링이란 게 음악의 완성도를 높이는 카드로 사용되는 추세다 보니, 회사 차원에서 직접 나서서 음악적으로 어울리는 피처링 가수를 섭외하기도 한다.


피처링 가수를 기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앞서 언급했듯이 '음악적 완성도와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피처링은 한 가수가 이룰 수 있는 표현의 범위를 넓힌다. 지난 4월 발매한 아이유의 정규앨범 <팔레트>에서 타이틀곡 '팔레트'에 지드래곤이 피처링으로 참여해 가사적으로 주고받는 구성을 완성했다. 지난 6월 2일 발표한 수란의 앨범 <워킹>에선 타이틀곡 '1+1=0'을 딘(DEAN)이 작사-작곡-피처링했고, 음원차트에서 롱런 중인 '오늘 취하면'은 창모가 피처링했다. 또 다른 수록곡 '해요'는 래퍼 스윙스가 피처링을 맡았다. 덕분에 표현과 느낌, 메시지 전달에 있어 풍성해진 앨범이 만들어졌다. 피처링이 적절히 활용됐을 때 앨범은 단조로움을 피하고 대신 입체성을 얻게 된다.


실력만 있다면, 인지도는 빌려준다



'음악적 보완'이라는 원래의 피처링 목적과 다르게, 인지도 부족한 신인가수가 인지도를 얻기 위해 유명 가수를 피처링으로 내세우는 경우도 많았다. 지금도 여전히 많다. 하지만 요즘은 그 반대의 경우도 눈에 띈다. 이것을 피처링의 또 다른 진화라고 말하고 싶다. 즉, 인기를 '빌리는 것'에서 '빌려주는 것'으로의 진화다.


가령 지난 4일, 6집 정규앨범 <블랙>을 발표한 이효리는 Los, Absint, Killagramz 등 신예 래퍼를 피처링으로 두었다. 이들과 친분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효리 정도의 연차면 인기 많은 유명 래퍼에게 피처링을 부탁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그들의 실력이 워낙 뛰어나서 함께한 것이 첫 번째 이유고, 또 내가 선배로부터 많은 기회를 받았듯 실력 있는 신인에게 기회를 주고 싶기도 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확실히 요즘의 피처링 추세를 보면 '우정 과시용'이 아닌 음악을 위한 전문적인 접근에 기반을 둔 듯하다. 곡의 톤 앤드 매너를 구성하고, 곡이 추구하는 느낌을 배가시킬 수 있는 피처링이라면 친하지 않아도, 인지도가 없어도 기꺼이 함께하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끼리끼리 문화'도 점점 사라지는 모양새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SM 소속 가수끼리 YG 소속끼리 밀고 밀어주는 개념으로 피처링을 했다면 지금은 너나 구분이 없이 경쟁 소속사라도 손을 잡는다. 지난해 1월에 발표한 '수지(JYP) X 백현(SM)'의 컬래버레이션 곡 '드림'은 피처링 사례는 아니지만, 경쟁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협업하는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예다.


'랩(feat.보컬)'에서 '보컬(feat.랩)'으로



마지막으로 주목할 만한 변화 혹은 진화는 다음과 같다. 예전에는 랩 노래에 '보컬 피처링'이 많이 들어갔지만, 요즘은 랩이 아닌 노래에 '랩 피처링'이 많은 추세로 나아가고 있다. 가령 예전에는 조피디의 '친구여'에 인순이가 보컬 피처링을 하는 식의 사례가 많았지만, 요즘은 이효리의 '서울'에 킬라그램이 랩 피처링을 하는 식의 형태가 더 자주 발견된다.


힙합의 장르 특성상 리듬과 비트를 기둥으로 삼기 때문에 멜로디 적인 부분에서 얻을 수 있는 서정성이 약하기 마련이고 이를 보컬이 보강해왔다. 하지만 요즘은 랩(힙합)이 대세 장르로 떠오르며 큰 인기를 누리고 있고, 그런 이유에서인지 역으로 보컬이 이끄는 노래에 '랩 피처링'이 많아지고 있다. 래퍼들의 전성기가 아닐 수 없다. 인기 래퍼들은 피처링으로 참여하는 타 가수의 곡이 본인의 신곡 (랩) 노래보다 더 많을 정도다.


이렇듯 피처링의 범위가 예전에 비해 넓어지고, 의외의 조합이 만드는 경우의 수가 많아지면서 음악을 만들고 부르는 뮤지션뿐 아니라 리스너들도 음악을 더욱 풍성하게 즐길 수 있게 됐다. 피처링이란 날개를 달고 더욱 자유로워진 음악, 완성도 높은 음악이 많아진다는 건 가요계 전체의 '진화'가 아닐까.


기사입력 17.07.06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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