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로 살 수 없을 때, 미치게 쓰고 싶었다
매거진 < 쓸수록 나는 내가 됐다 >
01. 내가 나로 살 수 없을 때, 미치게 쓰고 싶었다
#1. 비상계단
나의 글쓰기는 비상계단에서 시작됐다.
“저기... 괜찮으세요?”
지나가던 발소리가 가까이서 멈추더니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13층에 있었고 그때 난 12층과 11층 사이 비상계단에 앉아있었다. 무릎 사이에 깊게 파묻은 고개를 들었을 때, 아마 그는 내가 안 괜찮다는 걸 단번에 알았을 것이다. 얼굴로 이미 대답을 끝냈다는 걸 알지 못하고 나는 예의를 갖춰 거짓말했다.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시나리오의 다음 페이지처럼 어느 정도 예상 가능했던 내 대답에 남자 역시 상식적이고 예상 가능한 반응을 돌려주었다. 내 말에 속아주기로 한 그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9시에 출근해서 업무지시를 받으면 그 일이 마치 ‘미션 임파서블’처럼 느껴졌다. 영화에선 결국 미션이 파서블해지지만 현실에선 포에버 임파서블처럼 느껴졌다. 나는 절대 톰크루즈가 되지 않았다. 일단 나는 그 일을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지 몰랐고 무엇보다 너무 하기 싫었다. 온몸으로 하기 싫었다. 영혼을 다해 하기 싫었다. 그 일을 해내면 해낼수록 내가 나 자신이 아닌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당장 이 건물의 비상경보기가 울려서 비상계단으로 사람들이 다 쏟아져 나와 나를 휩쓸고 건물 밖으로 빠져나가줬으면 싶었다. 그러면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뛰쳐나와 내 방으로 들어가 푹 잠을 잘 것이다. 다 잊고, 달콤한 낮잠을.
1년 같았던 한 달의 버팀을 끝내고 사표를 던졌다. 여름의 끝 무렵, 상공회의소 기자실에서 멍한 눈으로 노트북을 보다가 ‘브런치북 프로젝트’라는 걸 발견하고 우물쭈물 매만지고 있던 사표를 비로소 떠나보낼 수 있었다. 대상을 받으면 출간을 해주겠다는 공모전이었다. 내 글을 써서 책을 만들고 싶다는, 막연히 그려왔던 무언가가 비로소 형체를 드러냈고 나는 용기 내어 그것에 몸을 던졌다. 경제지 기자로서의 한 달은 그렇게 끝났고 브런치 작가라는 새로운 날들이 시작됐다.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로, 아니 브런치 작가로 두 달간 ‘내 글’을 썼다. 오아시스에 고개를 박고 게걸스럽게 물을 들이켜는, 살 것 같은 시간이었다.
‘말’을 주제로 쓴 나의 스피치 에세이는 1회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금상을 받았다. 내가 받고 싶었던 건 대상이었지만 내게 주어진 금상은, 알고 보니 대상보다 좋은 것이었다. 금상은 본인이 알아서 출간을 해야 했는데 그 덕에 나는 출간기획서를 쓰는 것부터 원고투고 메일을 보내고 출판사 에디터와 미팅을 하는 것까지 촘촘하게 출간과정을 경험해볼 수 있었다. 책을 낸 것도 낸 것이지만, 그때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이것은 내 삶을 한결 살 만한 것으로 변화시켰다.
그렇게 나는 내가 걷고 싶은 길에서 점점 멀어져갈 때, 나란 사람이 흐려지고 흐려져서 없어질 지경에 이르렀을 때, 미치도록 쓰고 싶었다. 그래서 썼고, 그 후로 쓰기를 멈출 수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