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로 살 수 없을 때, 미치게 쓰고 싶었다
매거진 < 쓸수록 나는 내가 됐다 >
01. 내가 나로 살 수 없을 때, 미치게 쓰고 싶었다
#2. 지안, 편안함에 이르렀나?
지금도 지안이를 생각하면 맘이 저린다. 2018년 봄,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 때문에 나의 봄은 슬펐고 아름다웠다. 이 드라마의 OST 중에 손디아가 부른 ‘어른’이란 곡이 있다.
“나는 내가 되고 별은 영원히 빛나고/ 잠들지 않는 꿈을 꾸고 있어/ 바보 같은 나는 내가 될 수 없단 걸/ 눈을 뜨고야 그걸 알게 됐죠” (<나의 아저씨> OST, '어른' 가사 중)
극중 이지안(이지은 분)의 처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가사가 얼마나 가슴 무너지는 구절구절인지 잘 알 것이다. 고단한 하루 끝에 눈물과 함께 잠든 나는 그 꿈속에서 내가 되지만 그것도 잠시다. 돌아온 현실은 꿈과 다르고, 어두컴컴한 방에 홀로 있는 나는 시궁창 같은 삶 속에 내팽겨쳐진 그대로다. 이런 진창 같은 날들 속에서 나는 나로 서 살아갈 수 없고 앞으로도 절대 내가 될 수 없다는 자각이 무섭게 밀려오는 새벽. 난방도 안 되는 쪽방에 스며든 시퍼런 새벽 어스름처럼, 퍼렇게 멍든 그 마음을 누가 위로해줄 수 있을까. “이제는 너무 멀어진 꿈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가닿은 절망의 밑바닥, 그곳에선 별들도 빛을 잃는다.
글을 쓰려는 사람들은 어쩌면 모두 이지안 같은 이들일지도 모른다. 어딘가 불행한 사람들. 빛을 잃어가는 별을 바라보는 사람들. 대체로,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쓰려하지 않는다. 외로운 사람, 고통 안에 있는 사람, 상처받은 사람만이 시를 짓고 무언가를 글로 토해내려 한다. 내가 비상계단에서 고개를 파묻고 있을 때야말로 글쓰기 가장 좋은 때였다.
오랜만에 일기장을 꺼내 펜을 들던 날, 그날은 어떤 날이었던가. 모든 의욕이 말갛게 샘솟는 1월 1일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아마 무언가에 마음이 흔들려 주체할 수 없을 때였던 것 같다.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아 가시밭을 맨발로 지나고 있을 때, 나 자신이 한없이 추악해보일 때, 오늘 하루 완벽히 엉망이었다고 느꼈을 때. 사실 나는 그럴 때 일기장을 펼치는 사람이다.
내가 첫 번째 책 <나를 지키는 말 88>을 쓸 수 있었던 것도 마음이 괴로웠던 덕분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내게 글쓰기란 지적이고 우아한 활동이라기보다는 삶이라는 벽을 피 흘리며 뚫어보려는 하나의 돌파구에 가깝다. 어느날 읽게 된 비트겐슈타인의 한 마디는 나를 꿰뚫고 지나갔다.
“신념. 희망. 기대. 이 말들은 각기 다르지만 어딘가 닮아 있다. 이 세 가지 말 가운데 하나라도 사용하는 사람은 어떤 장벽에 갇힌 상황에 있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
이 구절을 읽고 내가 쓴 책을 펼쳐봤다. 신념, 희망, 기대. 거기엔 이 세 단어들이 번갈아가며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내가 장벽에 갇힌 상황이었음을 인정하게 만드는 증거, 내가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결핍들이다.
"너희들은 걔 안 불쌍하냐? 경직된 인간들은 다 불쌍해. 살아온 날들을 말해주잖아. 상처받은 아이들은 너무 일찍 커버려. 그게 보여. 그래서 불쌍해. 걔의 지난날을 알기가 겁난다."
<나의 아저씨>에서 동훈(이선균 분)이 지안에 관해 말하는 대목이다. "경직된 인간들은 다 불쌍하다"는 말이 가슴을 쿡 찌른다. 상처 받고, 억압 받고, 고통 받으며 살다보면 그 인간은 경직된다. 그런 불쌍한 인간들은 글이라도 써서 억눌린 것들을 해소하려 한다. 아니, '하려고 한다'는 의지가 아니라 '해야만 한다'는 절박함이다. 글을 쓰면 억눌린 것들이 탈출구를 찾게 된다는 걸 인간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지안, 편안함에 이르렀나?” (<나의 아저씨> 마지막 회, 동훈의 대사)
두 사람의 독백이다. 길고 긴 터널을 지나 동훈을 만난 지안은 동훈의 이 질문에 대답한다.
“네.”
흔들림 없는 긍정. 언젠가 동훈이 지안에게 물었던 적 있다. 지안을 잘 알지 못했을 때, 그녀에게 이름의 한자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고 지안이 대답했다. “이를 지至, 편안할 안安.” 이름과 지독히도 반대로 살아가던 지안에게 동훈은 그녀가 이름대로 살 수 있게끔 이끌어준 ‘어른’이었다.
오늘도 글을 쓰려는 모든 지안에게 인사를 건넨다. 편안함에 이르고 싶지만 아직 그러지 못한, 나 자신이 될 수 없음에 절망하고 있는, 어딘가 조금 불행한 사람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