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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통과 대관람차

글쓰기 과제 1

by 손화신





다람쥐통과 대관람차





1989년 부산 어린이대공원. 남자는 5살 딸아이를 품에 안고 다람쥐통에 올라탔다. 남자의 몸집보다 겨우 몇 배 큰 빨간색 다람쥐통이 구르기 시작했다. 안전벨트는 헐거웠고 남자는 이날도 술에 취해 있었다. 녹슨 다람쥐통이 점점 빨라졌다. 남자와 아이는 세상이 뒤집어졌다가 돌아왔다가 하는 것을 바라봤다. 다람쥐통 크기가 작았기 때문에 세상이 위아래를 바꾸는 속도는 통돌이 세탁기처럼 빨랐다. 다람쥐통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만화 주인공이 블랙홀에 빠질 때 바라보는 우주의 요상한 소용돌이 같았다.


남자는 왼팔로 머리 위의 손잡이를 꽉 잡았고 오른팔로는 그것보다 더 꽉 딸의 허리를 붙들었다. 안전벨트가 헐겁든 말든 그것은 알 바 아니었다. 행복의 요람처럼 보이는 이 동그란 전쟁터에서 남자는 딸을 지키는 용사였다. 술에 취한 것도 문제없었다. 남자는 이 블랙홀 속에서도 자신이 딸의 안전엔 티끌만큼의 위협이 없게 할 거란 걸 ‘알고’ 있었다. 그건 무엇을 해낼 것이라고 ‘결심하고’, ‘믿고’, ‘노력하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였다. 2시 30분 다음에 2시 31분이 올 것이란 걸 아는 것처럼 확실한 무엇이었다.


30년 후에도 남자와 딸은 그 다람쥐통에 앉아있었다. 30년간 구른 다람쥐통은 빨간색 페인트가 여기저기 벗겨지고 더 많이 녹슬어 있었다. 이제 맞은편으로 옮겨 앉은 딸아이는 몸에 딱 맞는 벨트를 하고 있었고 남자의 벨트는 더 헐거워져 있었다. 다람쥐통이 구르는 속도는 똑같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남자의 손에 힘이 풀려 자신의 몸뚱이를 다람쥐통 벽에 마구 부딪고 있단 것이었다.


멀리선 대관람차의 느린 움직임이 보였다. 그 안의 사람들은 30년 전처럼 가만히 앉아있었다. 머리가 땅으로 갔다가 다시 하늘로 갔다가 다시 땅으로 갔다가 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동그란 대관람차는 천천히 움직이며 허공에 큰 원을 그렸다. 사람들은 하늘과 땅을 고요히 유람했다. 딸은 이번엔 어깨를 찧고서 인상을 찌푸린 남자에게 말했다. 우리 이 다람쥐통에서 내리면 다음엔 저 대관람차를 타요. 제가 이 다람쥐통을 세울 방법을 찾고 있어요. 남자가 이번엔 머리를 찧은 채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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