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화와 자코메티

글쓰기와 '나의 색깔 찾기'

by 손화신




매거진 < 쓸수록 나는 내가 됐다 >




3. 어떻게 쓸 것인가: 나의 색깔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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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간결화와 자코메티


이것은 '간결화 작업'이라는 또 다른 구슬을 찾아 나선 얘기다. 어쩌면 나는 이걸 말하고 싶어서 지금까지 무수한 떡밥들을 뿌려왔던 건지도 모르겠다. 내 짧은 글쓰기 인생에서 간결화는 거의 모든 것이었다. 일단 간결화에 대한 개인적인 정의부터 밝히자면 다음과 같다.


추구할 것을 계속 추구하고, 버릴 것을 계속 버리는 일.


조각가가 된 것처럼. 드러내야 할 것을 드러내기 위해 깎아내야 할 것을 깎고 또 깎는 무수한 반복. 그 무수함이 작품을 만든다. 추구하는 것이 뚜렷하지 않은 상태에서 깎기에만 몰두한다면 그 돌은 쓸데없이 깎여나간 '깎인 돌'일 뿐이고 반대로 추구하는 것이 분명하다 해도 거듭 깎아내는 과정이 없다면 그건 '안 깎인 돌'에 불과하다. 둘 다 작품이라고 할 수 없다.


어떤 작가가 사진 찍듯 장면을 상세히 묘사하는 회화적 글쓰기를 추구한다면 직접적이고 구구절절한 설명들은 모두 버릴 것이다. 버리고 또 버릴 것이다. 그런 후에 이 작가의 글이 완성됐을 때 그의 스타일은 드러난다. 추구하지 않는 것을 지속적으로 버림으로써 자기다운 게 드러나는 그것이 '자기 것'이다.


미술관에 가서 예술가의 초기작품이 점점 변해서 후기작품으로 자리잡는 걸 볼 때 뜬금없이 감동받는다. 간결화를 통해 자기 색깔을 찾아가는 과정이 마치 인생극장을 보는 기분이어서다. 그 예술가가 겪어낸 삶이 간결화로써 작품 안에 또렷이 녹아난 것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짠해진다.


올해 초에 예술의전당에서 조각가 자코메티의 전시를 봤다. 자코메티는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겪으면서 생의 허무함과 인간의 무력감을 느꼈다. 이것이 그의 작품세계를 형성했다.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그는 초현실주의를 표현하는 쪽에 가까웠지만 전쟁의 영향으로 인간 존재의 무의미를 표현하는 쪽으로 작품의 방향이 기울었다. 특히 자코메티는 자신의 주거지의 관리자이자 폴란드 예술가였던 토니오 포토췽의 병듦과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인생의 덧없음을 깊이 느꼈는데, 그의 죽음을 계기로 작품세계의 변화를 맞이한다. 그의 작품은 후기로 갈수록 말하고자 하는 것만 남기고 더 간결해졌다. 허무와 절망, 그 가운데서도 어스름 별처럼 희미하게 빛나는 희망이 그의 후기 작품들에서 또렷하게 드러났다.


"인간이 걸어다닐 때면 자신의 몸무게의 존재를 잃어버리고 가볍게 걷는다."


"거리의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무게가 없다. 어떤 경우든 죽은 사람보다도, 의식이 없는 사람보다도 가볍다. 내가 보여주려는 건 바로 그것, 그 가벼움이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KakaoTalk_20181230_191459837.jpg 자코메티, '걸어가는 사람 2'(1960)


자코메티 전시의 마지막 방에는 '걸어가는 사람2'란 작품이 있었는데 나는 이 조각상의 눈동자를 잊을 수 없다. 1시간 정도 머물며 눈동자를 빤히 바라봤는데, 내게는 이 작품이 눈동자만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고통의 한가운데를 걸어가는 듯한 이 사람의 눈빛은 너무 숭고한 나머지 영원으로 들어선 존재처럼 보였다. 현실을 극복하는 인간의 강인함, 이런 말로는 부족했다. 고통을 '견디는' 존재는 모두 숭고하고 존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을 견디면서 그럼에도 계속 걸어갈 때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영원성과 삶의 의미를 획득한다. 그 영원성은 무엇보다 그 조각의 '시선' 안에 선명하게 들어있었다.


자코메티는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계속 추구하고 버려야 할 것을 계속 버렸기 때문에 '걷는 동작'과 '눈동자'에 본인의 정신과 철학을 담아낼 수 있었다. 만약 자코메티가 팔뚝의 힘줄, 옷자락의 주름, 손가락 마디의 울퉁불퉁함, 입술의 긴장감... 이런 것들을 버리지 않고 다 표현했다면 '걷는다'란 행위의 상징성도, '시선' 속에 담긴 신성함도 묻혀버렸을 것이다. 극도의 간결화로써, 마치 한 발의 총성처럼 강력한 메시지를 내 영혼에 꽂아넣은 이 작품은 '체험의 예술'이었다.


KakaoTalk_20181230_194706446.jpg 사진촬영이 가능한 방이었다. 홀린 듯 360도로 둥글게 돌면서 사진으로나마 눈동자에 깃든 고통과 영원성을 담아보려 했다.


자코메티 전시를 겪고 나서 간결화를 더 자주 생각하게 됐다. 작품의 고유성은 간결화 작업을 거쳐야지만 확보되는 거란 직감이 들었다. 내 삶에 적용하여, 글을 많이 쓰면서 동시에 문체로든 내용으로든 섬세하게 깎인 큰 기둥 하나만 남기려 했다. 그런 글쓰기의 최후엔 내가 드러났다.


많이 쓸수록 간결의 작업을 반복하며 나란 사람의 알맹이가 드러났고 비로소 나는 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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