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들/호수

by 손화신







cinnamon #. 사물들


인간이 물건들의 주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나를 둘러싼 물건들은 나를 조종하며 내게 조소를 날린다. 직사각형으로 된 큰 사이즈 마우스패드를 살까, 정사각형의 작은 사이즈를 살까 고민하다가 작은 사이즈를 산다. 써보니 작아서 불편하다. 그렇지만 이틀이면 정사각형 마우스패드에 맞춰 마우스를 굴리고 있는 나란 인간이 탄생한다. 물건들은 제 주인인 나를 자신에게 맞게 조종하고 적응시키는데, 나는 애써 그들의 비웃음 소리가 들리지 않는 척한다.




cinnamon #. 호수


고쳐야 할 습관 따위를 고치기 위해서 그것의 어떤 점이 해가 되는지 왜 고쳐야 하는지 알 필요는 없다. 세상에는 약국도 있고 상담소도 있지만 아름답고 신비로운 호수도 있어서 그걸 보고 있으면 고민이 없어지기도 한다. 언어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이 세계에는 특별한 힘을 가진 언어들이 존재한다. 어떤 날에는 별안간 "그럴 필요가 없었다"란 여덟 글자가 머릿속에 떠올랐는데 이 글자가 오랜 습관의 쇠사슬을 자르고 있었다. 왜 고쳐야 하고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그것에 답을 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우연히 발견한 호수처럼 불쑥 떠오른 어떤 말이 괴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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