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메이킹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화신 Jun 08. 2019

자스민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아

노래 리뷰




"절대 침묵하지 않아"
알라딘보다 자스민이 멋져 보일 때




[노래 리뷰] 영화 <알라딘> OST 'Speechless'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시작부터 TMI 하나를 하자면, 나의 이상형은 알라딘이다. 예전부터 누가 이상형이 어떻게 되느냐고 물으면 늘 애니메이션 속의 그 알라딘이라고 답해왔다(영원히 만날 수 없는 이상형이다). <알라딘>이 실사 영화로 개봉한다는 소식에 내 발걸음이 영화관으로 달려간 건 그러니까 자연현상에 가까운 반응이었다.


지난달 23일 개봉해 지금도 상영 중인 2019년 버전 실사 영화 <알라딘>은 그러나, 반전이었다. 개인적인 의미에서 그러했는데 알라딘(메나 마수드 분)을 보러 간 내가 자스민(나오미 스콧 분)에 반해버린 것이다. 자스민 캐릭터가 원래 저랬던가? 원래 저렇게 멋짐이란 게 폭발하는 인물이었던가? 저렇게 주체적이고 당당하고 용기 있고 단단한 인물이었던가? 아니라면 내 기억력이 나빠진 탓인가... 아무튼, 기분 좋은 반전이었다.


반전은 또 있었다. 나의 '최애곡'인 'A Whole New World'가 나오는 그 장면 말이다. 마법 양탄자를 타고 알라딘과 자스민이 밤하늘을 나는 신에서 내가 가장 소름 돋을 거라 예상하고 마음껏 소름 돋을 준비를 하고 갔는데, 오히려 다른 장면에서 더 감동을 받은 것이다. 바로, 곤궁에 몰린 자스민이 독백처럼 'Speechless'를 부르며 감정을 터뜨리는 신이었다. 살짝 닭살이 돋았다. 처음엔 'A Whole New World' 신에 딱 맞춰 키스하는 사랑이 넘치는 옆자리 커플 때문에 내가 집중을 못한 탓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극장을 나와서도 'Speechless'의 여운은 계속됐고, 그 노래 자체가 힘을 지니고 있단 걸 알게 됐다.


나만 닭살 돋은 건 아닌가 보다. 음원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꽤 상위권에 'Speechless'가 올라 있었다. 천천히 가사를 음미하며 다시 들었다. 함부로 나를 억압하려는 것들을 모조리 끊어버리고 자유롭게 날아갈 듯한 벅참이 다시 한 번 느껴졌다. <겨울왕국>에서 엘사가 'Let It Go'를 부를 때 돋았던 닭살의 유형과 흡사한 것이었다. 나를 둘러싼 꽉 막힌 세계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다가 후렴구에서 시원하게 빵 산산조각나버리는 그런 통쾌함이 있었다. 분노가 섞여있어서 더 강렬하고 사이다 같았다.  



"Here comes a wave/ Meant to wash me away/ A tide that is taking me under/ Swallowed in sand/ Left with nothing to say/ My voice drowned out/ in the thunder"

(날 쓸어버릴 파도가 오고 있어/ 날 아래로 끌어당기는 물결/ 날 삼키는 모래바람은/ 내가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만들어/ 내 목소리는 천둥 속으로 잠겨버렸어)


"But I won't cry/ And I won't start to crumble/ Whenever they try/ To shut me or cut me down/ I won't be silenced/ You can't keep me quiet/ Won't tremble when you try it/ All I know/ is I won't go speechless"

(하지만 난 울지 않을 거야/ 그리고 무너지지 않을 거야/ 그들이 입을 막고 쓰러뜨리려 할 때마다/ 난 침묵하지 않을 거야/ 넌 날 조용하게 하지 못해/ 네가 그러려고 해도 난 떨지 않을 거야/ 내가 확신하는 건 난 침묵하지 않을 거라는 거야)


자스민은 마법사 자파(마르완 켄자리 분)가, 자신과 아버지가 지키고자 하는 아그라바 왕국을 파멸시키려고 하자 침묵하는 대신 화산처럼 분노를 폭발한다. 그리고 이 노래로써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당당히 전달한다. 'Speechless'의 가사를 조금만 더 살펴보자. 



"Written in stone/ Every rule every word/ Centuries old and unbending/ Stay in your place/ Better seen and not heard/ But now that story is ending/ Cause I/ I cannot start to crumble/ So come on and try/ Try to shut me and cut me down"

(변하지 않는 모든 규칙과 말들/ 아주 오래되고 굽히지 않는 것들/ '네 자리에 있어라'/ '보고도 못 들은 척해라'/ 이제 그 이야기는 끝나/ 왜냐하면 난 무너질 수 없거든/ 그러니 와서 노력해봐/ 입 막고 쓰러뜨려 봐)


노래뿐 아니라, 자스민을 연기한 배우 나오미 스콧(Naomi Scott)의 열연도 꽤 인상적이었다. 강단 있지만 어쩐지 온실 속 난초 같았던 유약한 자스민은 옛날의 자스민이었다. 나오미 스콧이 연기한 2019년형 자스민은 시대상을 반영하는 듯했다. 여성이고 공주이기 전에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지켜야 할 것이 있으면 그것을 끝까지 지켜내는, 아그라바 왕국의 리더였다. 아름다운 외모를 넘어 눈빛과 말투, 표정,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내면의 심지가 느껴지는 강함이 있었다. 침묵하지 않는 용기. 어떤 권력 앞에서도 쭈그러들지 않는 그런 용기였다.


개인적으로 나오미 스콧은 처음 보는 배우였다. 그는 1993년생으로, 잉글랜드 런던에서 태어난 배우이자 가수다. 영화 <파워레인져스: 더 비기닝>(2017)과 <테라 노바>(2011) 등에 출연했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 잉글랜드로 이민 온 우간다 출생의 구자라트계 인도인이고, 아버지는 잉글랜드인이다. 부모 모두 교회의 목사다. 스콧은 작품 활동을 많이 한 배우는 아니어서 나처럼 낯선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녀는 막 떠오르는 스타다. 스콧은 올해 11월에 개봉하는 <미녀 삼총사> 리부트 신작 영화에서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엘라 발린스카와 함께 삼총사로 캐스팅됐다. 'Speechless'를 들으면 알 수 있듯이 가창력도 뛰어난 가수다.



"I will take these broken wings/ And watch me burn across the sky/ And it echoes saying I/ Won't be silenced"

(부러진 날개를 달고/ 하늘을 가로지르며 불타는 내 모습을 지켜봐)


가장 울림이 있었던 구절이다. 지금까지 나는 자스민을 떠올리면 알라딘에 의지해 양탄자를 타고 황홀해하는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올랐지만, 이제는 'Speechless'를 부르면서 침묵을 깨부수는 여전사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를 것 같다. 마법 양탄자 위의 한 송이 꽃이 아니라, 저 노랫말처럼 부러진 날개를 달고 하늘을 가로지르며 불타는 한 마리 새. 2019년의 자스민 공주는 알라딘만큼이나, 아니 알라딘보다 더 돋보이는 인물이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 손화신 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입력 19.06.07 19:15



https://youtu.be/mw5VIEIvuMI



매거진의 이전글 하얀 밤, 소리마다 번진 클랭블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