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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Jun 23. 2019

하얀 밤, 소리마다 번진 클랭블루

노래 리뷰




태연-폴킴의 '색깔 품은 노래',
듣고 곱씹을수록 좋은 이유




[노래 리뷰] 폴킴의 '초록빛', 태연의 'Blue'


이브 클랭(이브 클라인), 1961년, 파리 아틀리에에서 'Blue Globe'와 함께  ⓒ BAZAAR


얼마 전 이사를 하면서 인테리어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봤다. 그중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모노크롬(monochrome) 인테리어'라는 것이었다. 단색화로 번역되는 모노크롬의 대표적 사례로는 흑백사진이나 흑백영화를 들 수 있겠다. 미술용어로는, 한 가지 색이나 같은 계통의 색조를 사용하여 그린 그림을 말하는데, 색채를 통해 배어나오는 인간의 감수성을 극단적으로 절제하고 배제하는 특징을 지닌다. 좋게 말하면 신비롭고 명상적인 거고, 나쁘게 말하면 결벽증적이고 삭막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노래 리뷰 기사에 웬 뜬금없이 모노크롬 이야기? 사실 푸른색에 대해, 푸른색을 소재로 한 노래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한 서론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모노크롬 인테리어를 시도하는 중 이건 진짜 너무 명상적인 나머지 조금은 무섭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래서 포인트가 되는 색을 더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내가 고른 색은 푸른색이었는데, 청록색에 가까운 다크블루 색상의 1인 소파를 장만한 것이다. 이후에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은, 모노크롬과 푸른색이 묘하게 연관이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왜 하필이면 푸른색을 골랐는지 알 수 있게 한 글은 다음과 같다. 


"1946년 최초의 단색 실험을 시도한 클랭은 1957년 일명 '인터내셔널 클랭 블루(IKB, International Klein Blue)'라고 불리는 그의 고유한 청색 모노크롬을 고안하였다. 그는 청색이 가장 비물질적이고 절대와 무한을 표상하는 색이라고 생각했으며 이를 통해 비물질적인 실체를 추구하고자 했다." (세계미술용어사전, 1999, 월간미술)


코발트 블루를 사용한 단색화를 선보인 프랑스 현대미술가 이브 클랭(이브 클라인)은 이 색깔로 특허까지 받았고, 그의 활약은 모노크롬이 주요한 추상화 양식으로 자리잡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폴킴의 '초록빛'... 무념무상과 감정의 승화


폴킴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게재한 '초록빛'에 관한 사진  ⓒ 폴킴 인스타그램


* 청록색(Blue Green): 초록과 파랑의 중간색. 심미, 깊은 삼림 등의 이미지를 주고자 할 때 사용된다. 심리적으로는 정신적 긴장과 피곤, 패배감을 해소하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색채용어사전 참조)


우연인지 필연인지 요즘 내가 즐겨 듣는 노래 중 두 곡이 푸른색과 연관이 있었다. 폴킴의 '초록빛'과 태연의 'Blue'다. 초록색도 푸른색 계통으로 간주하고 '초록빛'부터 이야기하자면, 가사도 멜로디도 차분하고 평온한 곡이다. 


폴킴은 일전에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오래전 겨울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느꼈던 마음을 기록하고 싶어 집으로 달려갔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타이틀이라 하기에 상대적으로 잔잔한 감정의 곡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안의 의미를 끝까지 믿고 힘써준 뉴런뮤직 감사합니다"라며 '초록빛'에 얽힌 비하인드를 적은 적 있다. 그날 영감을 얻은 장면을 찍은 사진도 게재했다. 폴킴은 왜 빨간 신호등이 아니라 초록 신호등에서 노래의 영감을 얻었을까. 청록색에 대한 사전적 정의와 '초록빛' 가사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버려진 담배꽁초/ 흔들리는 처량함/ 휘청거리는 휜 맥주 뚜껑에/ 난 또 감상에 젖어/ 오늘 밤은 뭔가가 왠지 달라서/ 혼자 있어도 외롭지가 않아서/ 보고 싶던 친구를 만나"


"초록빛의 신호등이 밝기만 하다/ 서있는 저 사람도 깜빡이고 서있지만/ 부딪히는 바람도 평화롭구나/ 내 마음이 변해서 더 그런가 해/ 흔들리는 바람에 휘날리는 나무도/ 내 마음을 간질여/ 예전의 나를 돋는다" - 폴킴, '초록빛' 가사 중


가사에서 가장 크게 느껴지는 건 감정의 승화다. 특히 '부딪히는 바람도 평화롭구나/ 내 마음이 변해서 더 그런가 해'라는 구절에서 복잡한 심정이 가라앉고 평온하고 무념무상의 상태로 들어선 마음이 전해지는 듯하다.


'흔들리는 처량함'과 같은 가사에선 쓸쓸하고 외로운 정서도 풍기지만, 전체적인 분위기와 가사는 외로운데 외롭지 않고, 결국은 자신의 내면과 화해하여 편안해진 분위기를 낸다. 초록빛이 정신과 긴장의 피로를 해소하는 색인 것처럼, 가끔씩 깊은 밤에 무한반복으로 듣곤 하는 '초록빛'이란 노래도 내게 그런 작용을 해주었다. 


태연의 'Blue'... 외로움, 불안과 고독의 아름다움


태연 'blue'  ⓒ SM


태연의 '사계'와 함께 발표된 수록곡 'Blue'는, 사실 처음엔 크게 와 닿지 않던 곡이었다. '사계' 만큼의 임팩트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시간이 지나면서 더 자주 듣게 됐다. 여러 번 들어도 질리지 않고 오히려 여러 번 들을수록 좋아지는 곡이었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블루라는 색깔이 마음에 퍼지며 물드는 기분이다. 물론 우울한 색인만큼 유쾌한 기분을 주진 않지만 어딘지 모르게 듣고 있으면 편안해진다. 점점 고독해지면서도 그 고독함이 포근하게 느껴져서 더 머물고 싶어진달까.


"하얀 밤 아름답지만/ 더 차가운 밤 오늘/ 한 번만 다시 눈 맞춰줘 나를 좀 더/ 푸르게 번져가던 맘이 어느새/ 시들어버린 향기가 된 채/ 불러도 대답 없는 네 이름이/ 메아리처럼 울려" 


"넌 나의 Blue/ 늘 그랬듯이/ 넌 나의 Blue/ 그리움만 가득 채워/ 번져도 아름다워/ 사랑이라는 말/ 너를 닮은 그 말"


"여전해 나의 하루는/ 너로 가득한 미로/ 한 걸음씩 멀어지면 더/ 유난히 깊어지는 한숨/ 느리게 흘러가는 숨 사이로/ 네가 있을 것 같아" - 태연, 'Blue' 가사 중


어떻게 들으면 차갑고 외롭고 우울한 노래지만, 깊은 물속의 고요함처럼 아늑하기도 하다. 태풍의 눈처럼 조용해서 신비롭기도 한 묘한 감성이 전해진다. 


폴킴의 '초록빛'도, 태연의 'Blue'도, 이렇게 색깔을 품은 노래들을 듣고 나면 눈앞에 그 색깔의 풍경이 선명하게 그려지는 것만 같다. 특히나 신비하고 명상적이며, 절대와 무한을 표상하는 푸른색을 소재로 다룬 노래들은 더욱 내 마음을 심란하게 하면서 또한 동시에 아름다운 고독의 빛으로 채워준다. 그 느낌이 나쁘지 않다. 푸른색은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색인 듯하다.


화가 칸딘스키와 작가 괴테는 푸른색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푸른색은 깊어질수록 우리를 무한한 것으로 이끌며, 순수 그리고 궁극적으로 초감각적인 것에 대한 그리움을 일깨운다." - 바실리 칸딘스키


"달아나는 호감의 대상을 기꺼이 쫓아가듯이, 우리는 청색을 그렇게 바라본다. 그것은 청색이 우리 쪽으로 밀려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 괴테, '색채론' 중


클랭블루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 손화신 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입력 19.06.23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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