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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Sep 15. 2015

백전무패 헌팅맨의 비밀

뻔하지 않아야 마음을 사로잡는다




#9. 백전무패 헌팅맨의 비밀
: 뻔하지 않아야 마음을 사로잡는다




내가 아는 친구 한 명이 있다. 성별은 남자이고, 남녀노소 누구와 말을 섞어도 유쾌하게 분위기를 주도하는 타고난 붙임성을 지녔다. 길 위에서든 클럽에서든 자신이 마음에 든 여성을 놓쳐본 적이 없다는 이른바 백전무패 헌팅능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참고로 이 친구는 키도 작고 얼굴도 잘 생기지 않았다. 어느 날 '어떻게 하면 면접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란 주제로 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뜻하지 않게 ‘헌팅 노하우’를 듣게 됐다. 백전무패 헌팅맨의 강연은 다음과 같다.    


일단 나이트의 일반적인 룰을 설명해줄게. 웨이터가 여자손님들 손을 이끌고 남자손님들 방에 들어가. 두 그룹이 서로 어울릴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는 거지. 서로 이야기가 통하고 마음에 들면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거고, 아니면 나오는 거야. 근데 말이야, 난 나이트에서 이런 놈들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단 말이야. 여성이 들어오자마자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뭐 좋아하세요?’, ‘술 잘하세요?’, ‘어떤 일 하세요?’ 하면서 질문을 퍼붓는 애들이 있어. 자기 딴에는 여성분이 불편할까봐 말을 걸어주고 호감도 표현하는 건데, 한 번 생각해봐. 뻔한 질문에 뻔한 대답. 여자들이 얼마나 지루하겠어. 반복적인 말을 해야 할 때 재미를 느끼겠어? 저 질문에 대한 답은 앞방에서도 했고, 그 앞방에서도 했고, 이 방을 나가면 뒷방에서 또 하지 않겠냐. 


나는 말야. 이렇게 해. 일단 여성분이 들어오잖아? 다짜고짜 스피드 퀴즈를 시작해.  아무것도 안 물어보고 바로 하는 거지. 오자마자 인사도 않았는데 난데없는 게임을 하니까 처음에는 여자가 당황을 해. 근데 금세 게임에 몰입해서는 까르르 웃기도 하고 승부욕을 불태우기도 한다 말이지. ‘오호라, 얘네들은 좀 색다르네’ 하고 신선해하더라고. 고로 나의 헌팅철학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남들과 다르게!’ 이거거든. 퀴즈를 하면서 웃기도 하고 몸도 움직이면 금방 어색함이 사라지고 그러면 마음도 빨리 열려. 그때서야 이런 저런 대화를 시작하지. 일단 마음이 열려야 진솔한 대화가 오가지 않겠니? 


면접도 마찬가지야. 뻔한 질문이 나와도 절대 뻔하게 답하지 않기! 면접관이 ‘허허 저 친구 좀 보게나’ 하게끔 만들려고 노력해야 해. 한 번은 내가 면접을 보는데 말야, 면접관이 내가 다른 분야 경력밖에 없단 점을 찝찝해하더라고. 그래서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하려다가 뻔한 것 같아 이렇게 말했지. ‘저를 신뢰하실 수 없으시다면 공증이라도 받겠습니다. 친한 변호사 형이 있는데 그 형에게 제가 최소 1년을 이 곳에서 일한다는 공증을 받아오면 어떻겠습니까? 저는 이 일을 진지한 마음으로 지원했습니다. 믿어주십시오.’ 그랬더니 면접관이 허허허 웃으면서 좀 당황해하더라고. 그 대답 때문에 붙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뻔한 말로 사람 마음을 움직일 순 없는 것 아니겠니? 


잘 생기지 않은 내 친구가 헌팅의 귀재였던 비밀이 밝혀졌다. 화려한 말발이 비법인 줄 알았는데 반전이 있었다니! 어디 나이트나 면접장에서만 그럴까. 나도 교과서를 덮고 나만의 노트를 꺼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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