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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Sep 16. 2015

내 이름이 좋아진 날

가을날의 대화




#12. 내 이름이 좋아진 날
: 가을날의 대화




내 이름은 손화신. 한자로는 孫和伸이라 쓰고 뜻을 풀면 손자 손, 화할 화, 펼 신이다. 그러니까 화목한 기운을 세상에 널리 펼치고 살라는 뜻인 것 같다. 내 이름을 지어주셨다는 어머니의 외삼촌을 직접 만나뵌 적은 없어서 내가 생각하는 의미 외에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건지 '작자의 의도'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점점 나이가 들어가며 나의 이름과 내가 운명이란 생각을 하곤 했다. 내가 바라 온 삶의 그림 속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말과 글이란 도구를 이용해 좋은 것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내 이름의 뜻도 그러하다는 걸 발견했던 거다. 그때부터였다. 이름대로 사는 게 내 꿈이 됐던 게.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들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름이 참 강렬하시네요." 그럴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이름의 내면은 온통 화목으로 가득한데, 외면은 그 반대인 걸까?' 나도 모르게 100%가 아닌 95% 언저리의 만족으로 내 이름을 대해 온 나 자신을 사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러다 작년 가을쯤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그 경험은 손화신이라는 이름을 대하는 내 무의식 속 5%의 불만족을 말끔하게 해소해주었고, 말이란 게 도대체가 얼마나 큰 힘을 가질 수 있는 건지 새삼 몸서리치는 경험이었다. 가을, 붉게 떨어지던 단풍잎이 몸을 부딪히던 창문. 그 창문 옆 테이블에서 그분이 문득 내게 물었다. "화신기자 이름은 누가 지어줬어?" 나는 어머니의 외삼촌으로 시작해 내 꿈으로 번져간 대답을 내놓았다. 가만히 듣더니 그분이 말했다. "이름 참 좋다. 손기자 이름이 '손해피'가 아니라 '손화신'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손화신'의 글은 왠지 무게 있고 깊을 것 같은데 '손해피'의 글은 안 그럴 것 같거든." 


순간 아주 오래 붙들고 있었던 마음속의 무언가가 수우웅-하고 멀리 떠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난 내 이름이 갑자기 너무 좋아져서는 육체라도 있다면 으스러질 듯이 안아주고 싶었다. 언젠가 좋은 글을 쓰고 싶었고 또 언젠가 내 글 속에 담긴 화목함과 위로가 사람들의 마음에 가 닿는 날을 꿈꿔왔던 내게, 무심한 듯 진지하게 '글과 이름'을 엮어서 건넨 그분의 한 마디가 마음속 매듭을 풀어준 것이다.  


하긴 때때로 그런 말을 툭툭 던지던 분이셨다. 바람이 불던 어느 날에는 길을 걷다 '지옥에는 바람이 없을 것 같아'라고 툭 한 마디를 길 위에다 흘려놓으셨고, 그러면 난 이상하게도 바람이 없는 날 길을 걸을 때면 지옥을 떠올리곤 했다. 또 다시 찾아온 가을.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이름 석자 더욱 아름다운 것으로 만드는, 바람 부는 모든 날들을 천국으로 만드는, 그런 힘 있는 말 한마디 무심히 던지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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