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기가 진심이다. 요즘 많이 드는 생각이다. 둘은 왠지 섞이지 않을 관계 같지만 기본기가 곧 진심일 수밖에 없는 건 '진짜'라는 공통점 때문이다. 기본기를 닦지 않고서 조급하고 자만스러운 마음에 화려한 기술로 얼른 들어가고 싶어 한다면, 그 사람은 자신이 임하고자 하는 그 배움에 진심이 결여된 거다. 그는 가짜다.
그 맘이 진심이라면, 기본을 닦는 과정이 지루하고 어렵더라도 참고 하나씩 밟아나가게 돼 있다. 그것이 꼭 필요한 공사라는 걸, 더 견고한 건축을 위해 뛰어넘어선 안 되는 절차란 걸 마음이 먼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쿵푸팬더>에서 주인공 포는 쿵푸 마스터가 되기 위해 반복적이고 따분하며 시시하기만 한 기본 쿵푸 동작들을 익혀나간다. 겉으로는 하기 싫어하는 척하면서도 은근히 열심이다.
기본기라는 건 참 소름 돋게 아이러니하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지금 당장 거쳐야만 하는 발판이어서, 그래서 중요한 것 같지만 꼭 그렇기만 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기본기란 녀석이 자신의 진짜 얼굴을 드러내는 건 그것을 닦고 나서 한참이나 뒤의 일이다. 그 분야의 고수가 되고 나서, 즉 마스터가 된 후에 고수 중의 고수로 한 발 나아가야 하는 단계에서, '잘하는' 사람에서 아예 '어나더레벨'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슬며시 본모습을 드러내는 게 바로 기본기다.
어릴 때 고르게 영양을 섭취한 아이는 당장 한 살 한 살 커가며 그 덕을 보는 것 같지만 나이가 들어서 가장 결정적인 덕을 본다. 건강의 기본기가 약하면 늙어서 병이 들 가능성이 커진다. 뭐든 '진짜'가 드러나는 건 아주 나중의 일이다.
춤을 수준급 이상으로 잘 추는 아이돌의 댄스를 분석하는 유튜브 채널을 즐겨 보는데, 고수 중의 고수일수록 기본 동작에 충실하다는 공통점이 보였다. 일단 동작을 크게 한다. 필요한 신체를 정확하게 쓰고 필요하지 않은 신체는 움직이지 않게 잘 잡아서 보여주고자 하는 동작이 선명하게 표현되게끔 한다. 물론 곡의 분위기에 맞게 퍼포먼스의 느낌 또한 개성 있게 잘 살린다. 고급 기술이나 느낌을 잘 표현해내는 걸 보고서 짜릿한 전율을 느낀다면, 기본기가 단단하단 걸 눈치채게끔 하는 동작들에선 진심을 느낀다. 난 후자에 더 소름 돋는다. 저 사람은 진짜구나 싶어서. 그가 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게 하는 건 기술이 아니라 기본기였던 것이다.
진짜 사랑한다면 견뎌낸다. 사람 사이 관계도 그렇다. 이해와 배려라는 기본을, 그 사람과 오래 사랑하기 위해 힘들어도 지켜낸다. 사랑에도 기본기적 마음이 없다면 달콤한 기술은 소용없다, 결국에는.
댄서가 최고의 경지에 오르고 싶어 하고, 피아니스트가 정말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나도 글쓰기에서 어나더레벨이 되고 싶다. 오만한 태도처럼 보여 숨겨왔지만 사실 나는 '겁나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되고 싶어서, 문장을 유려하게 쓰고 사유를 독창적이고 깊이 있게 풀기 전에 맞춤법부터 챙기고 주술 관계에 집착한다. 단어를 정확하게 사용하기 위해 아는 단어라도 사전을 찾아보고 한자 뜻을 유심히 확인하며 같은 단어가 하나의 글 안에서 너무 자주 반복되지 않는지 점검한다. 애매모호한 의미 전달을 피하기 위해 쉼표를 적절하게 넣고 글의 리듬을 해치는 불필요한 접속사는 뺀다. 기본이 안 된 글을 쓰면서 어나더레벨로 갈 수는 없지 않나.
찐찐찐찐 찐이야! 찐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저 사람은 찐이야, 진짜야, 라고 말할 때 무엇을 보고 그렇게 말하는지 이젠 확실히 알 것 같다. 진심의 여부. 거기서 비롯된 인내, 섬세함, 노력.
자기 분야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 재능에만 기대지 않는 성실한 노력파인 건 노력이 꼭 최고를 만들어서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건 겉으로 보이는 표면일 뿐인지도 모른다. 노력을 한다는 것 그 자체가 진지한 마음, 진심이 없으면 안 되는 일이어서, 두 단어가 곧 동의어이기 때문에 결국은 재능을 갖춘 노력파가 최고가 되는 것이다. 재능이 찐이 아니라 노력이 찐인 이유는, 그러니까 결국 '사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