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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Jun 27. 2020

편지 쓰는 마음으로 모든 글을 써야지



태어나서 내가 처음으로 산 영화는 '유브 갓 메일(You've Got Mail)'이었다. DVD라는 걸 최초로 산 게 그 영화였고 지금도 갖고 있다. 톰 행크스와 멕 라이언이 주인공으로 나오며 뉴욕의 서점을 배경으로 한 이 로맨틱 코미디에 이유 없이 마음이 끌렸다. 두 주인공이 얼굴을 모르는 상태에서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때론 마음의 문을 열고 때론 오해를 쌓기도 한다. 별다른 감명을 받으면서 본 건 아닌데, 그냥 보고 있으면 편안하고 설레고 따뜻한 기분이 들어서 여러 번 그 DVD를 틀곤 했다.


그래서일까?... 라며 슬쩍 갖다 붙이면 억지일까. 내가 이메일을 좋아하는 이유 말이다. 문자와 카톡과 인스타그램 DM과 페북 등 온갖 SNS가 소통의 매개가 되어주는 지금도, 나는 이메일이 사랑스럽다. 카톡이 카톡거리면 가끔은 귀찮다는 마음이 드는 데 반해, "새 메일이 도착했습니다"라고 컴퓨터 창에 뜨면 그게 그렇게 설렌다. 스팸메일, 광고메일, 카드 명세서 등으로 복작거리는 메일 더미 가운데서도 '누군가의' 편지가 내게 도착해 있고 그걸 열 때면 마음이 빵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이다. 물론 업무와 관련한 메일이 대부분이지만 그것 역시도 똑같이 설레는 건, 아마도, 긴 글이어서 그런 것 같다.


문자나 SNS 메시지에 비해 이메일은 보통 길어서, 그게 어떤 내용이든 진짜 편지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학교 다닐 땐 친구들과 쪽지나 편지, 펜팔을 많이 주고받았지만 크면서 그런 기회가 점점 사라졌고 통신기술마저 발달하면서 더 이상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지도 받지도 않게 됐다. 이메일이 그나마 현존하는 것 중에 손편지 형태에 가장 가까운 수단이어서, 그래서 내겐 너무 소중하다. 게다가 이메일은 메일 주소만 알면 휴대폰 번호를 몰라도, 집주소를 몰라도 편지를 보낼 수 있으니 모르는 사람에게 편지를 쓸 수도 받을 수도 있어 낭만적이고, 또 가장 개방적인 매개체다.   


몇 개월 전에 고등학교 때 동아리 후배였던 아이에게서 메일이 왔다. 이름도 얼굴도 다 기억나는, 너무도 반가운 후배의 글에 뭉클했다. 자신의 근황과 사는 이야기를 적어놓은, 또한 나의 안부를 다정하게 물어오는 그 편지를 읽으면서 이메일이란 게 있어서 참 살 만한 세상이다(?)라는 새삼스럽기 짝이 없는 생각이 들었다.


업무에 관련한 내용일지언정 이메일로 주고받으면 서로가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 든다. 이것 역시 긴 글이라는 속성 때문일까. 단순히 물리적인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누군가에게 긴 글을 쓰거나 받는다는 건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쓰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나는 일이다. 짧은 문자에선 갖은 이모티콘으로 나의 감정을 감출 수 있지만 글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 이메일을 쓰면 감정들을 감추는 게 쉽지 않다. 쓰는 이의 심성과 인격까지도 글에 묻어나버린다.


나는 가끔, 아니 꽤 자주, 편지가 쓰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다. 일기는 별로 쓰고 싶지 않은데 편지는 늘 쓰고 싶고 쓰고 있으면 기분이 무조건 좋아진다. 내 편지를 읽어줄 '누군가가' 나의 쓰기의 동력이다. 마찬가지로 책을 쓰는 것, 원고를 쓰는 것도 내 글을 읽을 누군가가 있기 때문에, 독자가 있다는 걸 내가 알기 때문에 그 사실을 동력 삼아 가능한 일이 아닐까. 사람은 혼자일 수 없나 보다. 나는 글쓰기란 게 철저하게 혼자서 하는 고독한 행위라고 믿어왔는데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결국은 혼자이기 싫어서 하는 행위였다.


글쓰기도 결국 '관계'였다. 모든 글쓰기는 끝내는 편지쓰기다. 일기조차도 나에게 쓰는 편지다. 지금껏 내가 쓴 모든 글은 '누군가에게' 쓴 편지였다.


글에 마음이, 진심이 있으면 그것이 어떤 그릇에 담기더라도 가치 있다고 난 생각한다. 이메일이든 문자 메시지든 그게 무엇이든 그릇이 중요한 건 아니다. 다만 이메일이 좀 더 아날로그적 편지, 긴 글에 가까운 형식이어서 마음을 담기에 보다 적합하다는 의미다. 물론 손편지는 말할 것도 없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손편지가 너무 쓰고 싶다, 언제나. 받고 싶기도 하고, 언제나.


이메일에 대한 이런 단상은 일반적 글쓰기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글을 쓸 때, 책 한 권을 집필할 때에는 '누군가'라는 특정 인물을 상정해 놓고 써야겠다는 게 내가 다다른 생각이다. 손편지 쓰듯이 이메일 쓰듯이 말이다. 영화 시나리오를 봐도 김 아무개, 28세 남성, 직업은 무엇, 트라우마는 무엇... 하고 캐릭터가 정해져 있잖나. 내 글을 읽을 독자에게도 개별적인 캐릭터를 부여한다면 더 '편지스러운'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이 여실히 담길 수밖에 없는 편지스러운 글. 나는 그런 글을 쓰고 싶은 거니까, 끝내.


앞으로 내가 쓰고 내가 받는 모든 글들이 편지가 되기를 빈다. 에세이도 아니고 수필도 아니고 일기도 아니고... 모든 글이 다 편지이기를! 모두 다 진심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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