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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Jun 20. 2020

브런치 오픈 5주년을 기념하며








나는 2015년 9월 2일에 브런치에 첫 글을 올림으로써 작가로서의 행보를 시작했다. 행보라고 쓰고 나니 굴지의 작가라도 된 기분이다. 사실, 작가님이라는 호칭에 심장 벌렁이지 않고 담담히 답할 수 있게 된 건 오래지 않은 일이다. 작가라는 말에 성은이 망극하여 매번 나는 몸을 움츠렸다.


숫자로써의 성과를 살펴볼 때 내가 브런치 계정을 오픈한 지는 5년, 지금까지 총 387개의 글을 업로드했으며, 구독자 수는 1.7만 명이다. 내가 이 플랫폼을 이렇게 오래도록 정성스럽게 꾸려갈 거라곤 처음 작가승인을 받을 땐 상상조차 못 했다. 나 자신이 이렇게 꾸준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새삼 놀라기도 했다. 꾸준함이 참 어려운 나였는데.


또한 조금 공교롭다. '브런치 오픈 5주년을 기념하며'란 제목을 쓰고 보니 이것이 마치 브런치라는 브랜드의 오픈 5주년을 축하하는 말처럼 들린다. 더 공교로운 건, 그렇게 이해하더라도 충분히 말이 된다는 점이다. 내가 알기로 브런치 플랫폼도 2015년 초여름쯤에 문을 열었다ㅡ뜬금없지만 브런치 5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이보다 더 진심일 수 없게 축하한다. 내 마음을 꺼내서 보여주고 싶다(처음 3년은 베타버전인 브런치가 망해서 없어질까봐 걱정하던 나였다)ㅡ플랫폼을 이만큼이나 키워주셔서 많이 감사하다.


각설하고, 내가 이렇게 5주년 기념 글을 쓰는 건 스스로 무언가를 다짐하기 위해서다. 브런치를 더 열심히 하자. 좀 재미없게 들리겠지만 이게 바로 내 다짐이다. 예전에 비해 브런치에 글을 업로드하는 텀이 확연하게 길어졌음을 고백하는 바다. 사실 이에 대한 반성을 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내가 쓰고 싶을 때 쓰는 게 브런치라고 생각했으니까.


근래에, 이 생각이, 바뀌었다. 쓰고 싶을 때 쓸 게 아니라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쓰자고.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나는 브런치를 책을 쓰기 위한 징검다리로 여기는 마음이 컸다. 한글을 열고 글을 쓰면 막막한데 브런치 창을 열고 글을 쓰면 이상하게 잘 써졌고, 그렇게 브런치를 동반자 삼아 원고를 진척시켰다. 이런 방식으로 두 권의 에세이를 출간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오직 출간'만을 중점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 온라인 위에 글을 쓰는 건 휘발성이 강해서 남는 게 없다는 편견, 책이라는 공식적인 결과물을 만드는 것만이 내 커리어에 유의미한 행위라는 믿음, 이 모든 것이 나의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깨침이 든 것이다.


5년의 세월을 거치며 어느새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내 브런치는 나의 '입'이 돼주고 있다는 걸 상기할 필요가 있었다. 이것이 황송할 만큼 감사하고 자다가도 깰 만큼 엄청난 일이란 걸 알아채고 또 알아채야 했다. 내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썼을 때 그걸 독자에게 전해주는 안정적인 창구가 있다는 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곱씹어야 했다. 내 손에 들려 있는 펜이 곧 마이크라는 것을 진작 알아챘어야 했다. 이 마이크를 예사로 생각하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더 가치 있게 사용해야 했다. 브런치를 방치하는 일은 다이아몬드를 손안에 쥐고 그 광채를 등한시하는 일과 같을진대...



내 생각이 구시대적이었구나 하고 뉘우친 포인트는 '매체'를 바라보는 인식에 있다. 도서라는 매체가 으뜸이다, 온라인이라는 매체는 버금이다, 이렇게 생각한 게 착오가 아니었나 싶다. 다른 분야를 생각해봐도 CD보다 디지털 음원이 압도적으로 많이 팔리는 시대고, 종이 신문보다 온라인 신문을 더 열독하는 시대다. 이 비유가 딱 들어맞는 건 아니지만 요지는, 브런치라는 온라인 플랫폼 위에 글 쓰는 것을 책 쓰는 것만큼이나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거다.


책의 경우는 독자가 자신의 지갑을 열고 그것을 사야지만 그 안의 글이 유통될 수 있다. 하지만 브런치의 글은 발행과 동시에 유통된다. 게다가 발행은 내 손으로 한다. 더 많은 사람이 보게 하려면 에디터에 의해 PICK을 당해 메인에 걸려야 하겠지만, 내가 자유롭게 발행한 글이 높은 유통과정의 벽 없이 독자의 손에 닿는다는 건 그 자체가 큰 메리트일 수밖에 없다.


곰곰 따져보니 내가 온라인에서 기사를 쓸 때 보람을 느끼는 포인트도 같은 맥락이다. 책과 달리 기사로는 현재 사람들이 관심 있는 것들을 그날그날 생생하게 전할 수 있기에 독자에게 즉각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댓글 등의 반응으로 일방적이 아닌, 쌍방향적인 소통도 가능하다. 브런치도 온라인 기사와 유사하다. 또한 파급력도 차원이 다르다. 내 책을 구매해 읽은 사람이 가령 1천 명이라면, 내 기사나 브런치 글을 읽은 사람은 1만 명 이상이다(물론 베스트셀러가 된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대략적 비율이 이렇기에 "많은 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위함"이라는 내 글쓰기의 근본이유, 지상목표에 더 잘 부합하는 건 온라인 플랫폼이라는 결론이다.


오해는 말자. 나의 종이책 출간에 대한 욕심은 여전하다. 책의 첫 페이지를 열고 한 장 한 장 넘겨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를 때까지, 독자가 자기 인생의 며칠을 할애해 내 얘기를 들어준다는 건 온라인 상의 조각글을 읽는 행위와 그 농도가 다르니까. 책은 계속 쓸 거지만 다만, 내 다짐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그 경중을 따졌을 때, 브런치가 책보다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걸 기억하자는 것. '손화신의 브런치'라는 5년 간 쌓아온 노다지 위에 멍청하게 서서 "다른 신나는 일 없을까?" 고민하지 말자는 것.


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나의 소중한 브런치를 더 멋진 정원으로 가꿔가겠다는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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