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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Jul 08. 2024

퇴사 1주년, 나는 어디로 가고 있나



올봄에 들여온 식물친구





오늘 2024년 7월 8일. 퇴사한 지 1년 되는 날이다. 그러니까, 백수생활 1주년이란 의미다. 짝짝짝. 지난 1년을 한 번쯤 되돌아보고 정리하고 싶었다. 오랜만에 긴 글을 써볼까. 긴 글에 겁먹고 읽기를 포기해 주시길 바라며, 나를 위한 반공개 기록을 남긴다.


당시 난 이직을 위해 퇴사한 게 아니라 단 한 번의 퇴직을 한 거였다. 직장생활은 이걸로 내 인생에 끝이라고 생각, 아니 결심했다. 나는 직장생활이 안 맞는 상위 1%의 독고다이 캐릭터다. 10년 조직생활 했으니 이제부터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하며 나를 돌보는 삶을 살리라, 퇴직금 까먹으며 1년을 버티면서 찾아보면 무슨 일이든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계획도, 전문 기술도 없이 퇴사한 나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직 내 일을 찾지 못했다. 여전히 길 위는 뿌옇고 눈앞에 윤곽이 드러나는 형체는 없다. 대신 1년간 패시브인컴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최근 몇 달은 게을러져서 전력이라는 단어를 쓰기 민망하지만, 퇴사하고 처음 넉 달 정도는 잠도 줄이고 밤샘을 해가며 매일 컴퓨터 앞에서 작업을 했던 것 같다.


패시브인컴(passive income)은 수동적 소득을 말한다. 이를 테면 저작권료 같은 것. 혹자는 자동화 수익이라고 말하고 그 또한 맞는 말이지만, 나의 막노동의 날들을 떠올리면 도저히 난 그 단어를 쓸 수 없다. 아무튼 패시브인컴을 구축하는 것이 당장 수익은 안 돼도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더 현명한 일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초기엔 노동력이 투여되지만 나중엔 자동화수익이 맞긴 맞다).


그렇게 수익형 블로그를 시작했다. 컴퓨터라곤 한글이랑 PDF정도밖에 모르던 내가 외국사이트에서 서버를 사고, 도메인을 사고, 간단한 코딩을 찾아 넣고 혼자 머리 굴려 코드수정도 해가며 블로그형 홈페이지를 제작했다. 물론 유튜브를 보고 따라한 거다. 세팅이 끝난 후 나는 주제를 하나 정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12개월째 글을 쓰고 있다. 지금까지 200개의 글을 썼다. 다른 블로거들과 비교하면 정말 적은 개수다. 반성한다.


그래도 시작하기 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결과가 좋다. 1년 열심히 하면 한 달에 10만 원 자동화수익은 되겠지 했는데 그 이상의 결과다. 기자일 10년 노하우가 아낌없이 빛을 발했다. 자료수집부터 팩트체크까지, 기사작성과 똑같이, 오히려 기사 쓸 때보다 더 공들여서 쓰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유튜브 댓글을 보면 놀라운 성과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많았다. 참, 유튜브도 한다. 수익형 블로그 이야기를 하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는데 영상 하나 올리는 데 엄청난 시간이 들어서 요즘은 자주 못 올린다. 2천6백 명의 구독자가 생겼다. 참고로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그 유튜브는 페이크다.


많은 이들이 로또 얘기하듯 이런 얘기를 한다. 나도 매달 꼬박꼬박 월세가 들어오면 좋겠다고. 하지만 최소 매매가 2억짜리 집을 보유하고 있어야만 유의미한 월세를 받을 수 있다. 내게는 2억이 없다. 고로 손가락 노동으로 때울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200개의 정보성 글을 고퀄리티로 썼다. 물론, 매달 월세가 들어오는 이 자동화 시스템이 계속 지속되리란 보장은 없다. 포털 검색 로직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에게 맞는 패시브인컴 수단(글쓰기)을 찾았다는 것과, 앞으로 사이트가 잘못돼서 다 날아간다 해도 언제든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을 내 머릿속에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성취감을 느낀다. 아, 물론 실패한 것도 많다. 수익형 블로그 외에도 아마존 KDP에서 글로벌 독자를 상대로 영어로 전자책을 써서 판매했는데(딥엘 덕분이다) 아직 한 권도 팔리지 않았다. 세계 인구가 그렇게 많은데!


지난 4월부터는 구직활동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건 내 진심이 아니란 걸 내가 알고 있잖나. 하지만 생계는 "진심? 그게 뭔데?"라고 내게 말한다. 나는 다시 기로에 서 있는 것만 같다.


퇴사하고 인간관계가 싹 정리됐다. 연락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랜 친구마저도 그런 느낌이다. 지금 나는 단순한 생활을 하고 있고 고독 안에서 더 편안함을 느낀다. 결혼과 가정이라는 꿈, 그런 고뇌는 한바탕 폭풍처럼 나를 할퀴고 지나가버리고 나니 오히려 무념무상 평온의 시대가 왔다.


지난 1년 동안 나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의미 있는 시간은 다시없을 것이다. 나는 인격적으로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란 걸 1년 동안 뼈저리게 느끼고 반성했다. 스스로 감지할 순 없지만 그로 인해 성장했길 바란다. 이것만으로도 나의 퇴사는 신의 한 수였고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인생 역전이었다.


할 수 있다면 앞으로도 이런 생활을 이어가고 싶다. 고독이 달콤 쌉싸름 기분 좋은 단순한 일상의 만끽. 그러나 빡센 회사로 가서 스트레스와 고통 속으로 다시 나를 처넣고 싶기도 하다. 쇼펜하우어의 말마따나 인간은 고통과 무료함 그 사이에서 핑퐁게임을 죽을 때까지 하기에. 나도 별 수 없는 인간인가 보다. 사람 속으로 들어가면 나는 또 지치겠지만, 그러나 사람 속에 들어가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아, 금세 또 취소하고 싶다. 나는 고통은 이제 그만 충분한 것 같다. 무료함이여, 더 크게 다가오라!


글쓰기 이야기로 마무리해야겠다. 1년 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블로그에 정보성 글만 쓰고 수필 같은 종류의 글은 아예 안 썼다. 그럴 필요가 있었다. 9년간 쏟아내듯 쉬지 않고 책과 브런치를 써왔던 시간들을 돌아보면, 뒤에 가선 했던 말을 반복하고 쓸데없는 말을 했으며 영혼이 살짝 결여된 글을 썼던 것 같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인풋 없이 아웃풋만 계속 뽑다 보면. 1년의 글쓰기 공백기는 나를 새로운 글의 영역으로 옮겨다주고 있는 것 같다. 책읽기가 그 수레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 무엇을 쓸지 혼란스럽고 막막하지만 내 안에서 충전의 불빛이 깜박이는 건 느껴진다. 방향은 아직 찾고 있지만 나의 정체성은 여전히 벡수보다는 글 쓰는 사람이다.


오늘도 게으른 고뇌의 하루를 보냈다. 재지마인드라는 유튜브를 봤는데 그 부부가 이런 말을 하더라. 나를 찾는 걸 자기네들은 10년이 걸려도 하겠다고. 지금 30대인데, 40대 중반에 그걸 찾아내고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하게 일할 수만 있다면 그것도 절대 늦은 게 아니라 생각한다고. 퇴사 후 나를 찾는 1년의 시간을 꽉 채워 보낸 나는 요즘 사실 많이 조급하고, 그래서 초심을 스스로 무너뜨리고서 여기저기 기웃거렸던 것이다. 그러다 이 동반 퇴사자 부부의 한마디 한마디를 들으며 나에게도 10년의 여유를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10년 동안 뭐라도 해야겠지만. 나를 알아가는 건 애초에 1년 프로젝트가 될 수 없는 일이었다.


디지털노마드라는 말이 한때 핫했다가 이제는 식상해졌지만, 내가 가고자 하는 큰 방향은 어쩌면 이것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처럼 온라인으로 작업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서 자유롭게 다니고 싶다. 내가 원하는 게 내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삶이니까. 그리스 아테네가 디지털노마드가 일하기에 물가도 괜찮고 숙소도 많고 좋다고 하더라. 아테네 한달살이, 언젠가 이룰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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