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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Sep 19. 2015

말본새 다듬기

말투는 그 자체로 인격





"사람들은 당신이 한 말과 행동을 잊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느끼게 만든 감정은 잊지 않을 것이다.”   

 

                                                                                                         - 마야 안젤루







#3. 말본새 다듬기
: 말투는 그 자체로 인격




전화벨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법원인가 검찰인가 하는 곳이라는데 누군가 내 이름을 도용해 은행계좌를 개설했단다. 나는 그래도 상관없다고 했다. 상대는 아무 대꾸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단번에 보이스피싱을 알아챌 만큼 내가 똑똑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누가 들어도 수화기 너머 남자의 말투는 법원 같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사포처럼 거칠었고 그냥 딱 사기꾼 목소리였다. 이토록이나 말투가 언어소통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구나, 새삼 가슴에 새기게 하는 경험이었다. 그 남자가 말투에 조금 더 신경을 써서 제대로 감정 이입된 연기를 펼쳤다면 아마 난 위험했을지도 모른다.


말하는 태도나 모양새를 말본새라고 한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오래된 말처럼 말이란 게 미세한 한끝 차이로 큰 느낌의 차이를 낸다. ‘가방 치워주세요’와 ‘가방 좀 치워주시겠어요?’는 내용은 같지만 기분이 확 상할 수도,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같은 말을 해도 꼭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은 원래 성격이 못된 사람이거나 말본새가 거친 사람이거나 둘 중 하나다. 원래 못된 사람이면 차라리 그러려니 하고 말지만, 마음은 참 착한 사람인데 말투가 다듬어지지 않아서 오해를 받는 경우라면 더 안타깝다. 말을 섬세하게 세공하지 못하는 서툰 보석공 같은 사람은 ‘싸가지’ 없는 사람으로 괜한 오해를 받기도 한다. 아무리 정신이 고상한 사람일지라도 히피 스타일의 옷을 입으면 사람들로부터 편견을 살 수 있듯이 아무리 마음이 따뜻하고 많이 배운 사람이라도 말본새가 섬세하지 못하면 차갑고 교양 없는 사람으로 비칠 수 있는 것이다.


 말투를 부드럽고 듣기 좋게 하는 일은 상대를 배려하는 일이다. 말의 생산자는 본인이지만 소비자는 상대방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타인을 대하는 예의의 문제다. 말본새를 다듬는 일을 단지 자신이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고 괜한 오해받는 일 없이 살기 위한 것으로 생각해선 부족하다. 말본새를 다듬는 일은 타인에게 상처 주지 않고 더불어 따뜻하게 살아가기 위해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도리이며, 따라서 마땅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말의 내용은 지식으로 채울 수 있지만 말투는 그 사람의 인격 그 자체다. 인격이 훌륭한 사람이 거칠고 날카롭게 말하는 걸 상상할 수 없다.  

  

배려있는 말하기는 포물선 모양으로 던져지는 공과 같다. 야구공을 던질 때 직구로 내리 꽂으면 상대가 다칠 수 있지만 공을 살짝 위로 던져 포물선을 만들면 상대가 안전하게 공을 받을 수 있다. 직선으로 내리 꽂는 말투여서는 상대방과 따뜻하게 소통하기 힘들다. 특히 말의 끝을 잘 맺는 게 중요하다. 말끝이 툭툭 던져지지 않도록 부드럽게 마무리하고 때에 따라서 감사나 애정을 표할 때는 말끝을 길게 늘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말투를 바꾸는 데 효과적인 방법을 하나 소개하자면 '모방'이다. 드라마 속 등장인물의 말을 녹음해서 반복해 듣고 따라 하면 원하는 말투로 쉽게 바꿀 수 있다. 영어 듣기 훈련을 할 때 반복해서 듣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방법은 내가 사투리를 고  가장 효과를 봤던 방법이다. 나는 사투리의 매력을 사랑해서 굳이 사투리를 고칠 필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때 난 방송 진행을 꿈꾸던 학생이었 절실했다. 결국 좋아하는 연기자의 말을 반복해 듣고 따라 한 건 신의 한 수였 언어 있어서  모방만큼 확실한 건 없었다. 당시 하루에 한 시간씩 한강을 걸으며 노래 대신 드라마 녹음 파일을 들었더니 금세 '서울 여자' 소리를 들었더랬다.


말투를 부드럽게 다듬는 것이 기본이라면 다음 단계는 말에 감정을 싣는 일이다. 어떤 말을 해도 형식적으로 들리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건 말본새가 상냥하고 그렇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다. 부드럽게 말을 하는데도 꼭 진심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평소에 감정 표현이 크지 않고 애교가 없다는 공통점을 다. 나 역시 그런 쪽에 속하는 사람 같다. 어떤 말을 진심으로 해놓고도 '방금 내 말 꼭 진심이 아닌 것처럼 들렸을 거야' 생각한 경 종종 있다. 나 같은 사람들은 연극 대본을 읽으면 도움이 된다. 그냥 읽는 게 아니라 당연히 감정을 실어 연기를 해보라는 말인데, 실제로 연기자 지망생이 아닌데도 감정 표현력을 기르기 위해 연기학원에 다니는 사람도 꽤 있다. 말도 하나의 음성예술이라면 감정이 풍부하게 담긴 말이 더 훌륭하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겠다. 감정이 실린 말은 색감 좋은 그림처럼 삶을 컬러풀하게 만드는 활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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