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은 거짓말을 못해서
#4. 감정, 열정, 표정
: 표정은 거짓말을 못해서
공연을 볼 때면 좋아하는 멤버에게 시선이 고정된다. 모르는 팀이라면 무대 중앙에 선 사람이나 외모가 눈에 띄는 사람에게 눈길이 간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동네 성당에서 대학생 성가대 콘서트가 열린다기에 발길을 향했다. 노래가 시작됐고 자연스럽게 30명의 단원들 중 마음에 드는 얼굴로 시선이 갔다. 한참을 푹 빠져서 노래를 듣는데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한 여학생에게만 눈길을 고정하고 있었단 걸 알았다. 그 학생은 눈에 띄는 미모를 가진 것도 아니었고 게다가 무대 왼쪽 뒤편에 서 있었는데 어떻게 나의 시선을 빼앗은 걸까.
여학생의 얼굴은 환희에 싸여 있었다. 다른 단원들은 지상에서 노래했지만 그녀 홀로 천국에서 노래했다. 넘실대는 에너지로 관객 하나하나를 환희의 나라로 이끌었다.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열정적이었다. 입은 위아래로 크게 벌어졌다 닫혔고, 눈은 음악의 도입부에서는 과거를 회상하듯 실눈이 됐다가 클라이맥스에 가서는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커다래졌다. 얼굴의 미세한 근육 하나까지도 음악과 하나가 돼 있었다. 만약 음악이 들리지 않고 오직 그녀의 얼굴만 바라봤어도 노래가 전하는 천국의 환희를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표정은 비언어적인 요소로 중요한 부분이다.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를 하며 음악의 무아지경에 빠졌을 때, 그의 얼굴은 그 자체가 음악이 된다. 선율에 따라서 음표처럼 변하는 표정은 연주의 일부다. 음악이 전하는 감성이 연주자의 표정으로 전해지면, 귀로만 들을 때보다 음악이 주는 감성이 더 잘 와 닿기도 한다. 단, 열정은 필수다. 연주자가 선율 안에서 느낀 감정은 연주자의 열정과 만났을 때 살아있는 표정으로 드러난다. 열정은 숨길 수도 꾸며낼 수도 없는 진심이다. 감정, 열정, 표정은 이렇게 하나로 이어진다.
표정은 얼굴 근육의 미세한 변화만으로도 크게 달라진다. 연단에 설 때 얼굴이 굳어 있는 것 만큼 청중을 불편하게 하는 건 없다. 아무리 완벽하게 내용을 이야기해도 말하는 사람의 심리상태가 지나치게 긴장돼 있고 그 순간을 즐기고 있지 못하다면 표정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표정만큼이나 감추기 힘든 것도 없다. 표정 관리를 잘 하는 사람일지라도 찰나의 순간에 마음을 들키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 글에서 표정을 잘 짓는 법이라든지 표정을 잘 숨기는 법에 대해 말할 수도 없는 건, 마음 상태가 바뀌어야 표정이 바뀌지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웃는 표정은 연습하면 되지만 그것도 마음이 즐겁지 않으면 웃어도 웃는 게 아니다. 마음이 웃어야 얼굴도 웃는다. 억지 웃음은 상대가 먼저 안다.
따라서 '마인드 컨디션'을 조절하는 게 중요하다. 발표를 하기 전에, 혹은 면접장에 들어가거나 소개팅에 앞서 자신의 마음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무기력해 있다면 '마인드 업'을 위해 좋은 생각을 하자. 혼자서 잘 안 되면 친구에게 전화라도 걸어 수다를 좀 떨고 나면 마음도 표정도 한결 편안해진다. 나의 경우는 면접을 보러 갔을 때 떨려서 표정이 굳어있다 싶으면 옆에 앉은 면접자에게 말을 걸어 대화를 시도한다. 그러고 나서 들어가면 한결 편안하다. 딱딱한 얼굴로 입에 거미줄 치고 앉아 있다가 시험장에 들어가서 갑자기 연기를 하려고 해도 열정적인 표정이 쉽게 안 나온 적이 많다. 스피치를 할 때에도 무대에 서기 전에 워밍업을 하는 건 그래서 필요하다.
얼굴 근육을 직접 마사지하는 것도 좋다. 가수들이 무대에 오르기 전에 목소리만 풀어주는 게 아니라 입을 크게 벌리거나 얼굴을 찌그렸다가 펴면서 얼굴 근육을 풀어주는 것을 본 적 있을 것이다. 감정은 목소리뿐 아니라 얼굴에도 실린다. 콘서트를 하는 가수가 미적지근해서는 관객을 감동시킬 수 없듯이 연단에서 발표를 해야 하는 스피커 또한 감정이 담긴 열정, 열정이 담긴 표정으로 관객의 마음을 흔들어야 한다. 뜨거운 소통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