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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Sep 20. 2015

손짓이 말해주는 것

손의 움직임과 우리의 감정




#5. 손짓이 말해주는 것
: 손의 움직임과 우리의 감정



한 설치미술작가의 책을 읽다 '진실을 말하는 손'이란 구절에서 눈길이 멈췄다. 사람들은 눈이 진실을 말한다고 하지만 글쓴이의 생각에는 손이 눈보다 더 진실하다는 거다. 특히 손으로 작품을 만드는 작가에게 모든 감각을 기억하는 곳은 다른 곳보다 손이며, 보통 사람들도 은연 중에 손으로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렇구나' 끄덕이며 읽고 넘겼는데 며칠 후에 길을 걷다 퍼뜩 이 구절이 강렬하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었다. 


지하철을 갈아타다 문득 내 손을 의식했다. 주먹을 쥐고 있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다른 사람들의 손은 지금 이 순간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궁금해서였다. 굉장히 여유로운 얼굴을 한 중년의 남자는 손도 여유로웠다. 손끝까지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아 그야말로 완전한 이완상태였다. 잔뜩 힘이 들어가 웅크리고 있는 내 손을 보고서야 내가 요즘 긴장하며 살고 있었단 사실을 알아챘다.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고 좀 쉬어야겠다고 그때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그 이후부터 내 심리 상태를 확인하는 지표로서 손을 사용해보기 시작했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아 자기 스스로도 헷갈릴 때가 많지만, 손을 바라보면 마음 상태가 조금은 가늠이 된다. 


무심해서 그렇지 내 손은 언제나 말을 하고 있었다. 카페에서 마주 앉은 상대와 데면데면 어색할 때 내 손은 미친 듯이 빨대 포장지를 만지고 있었다. 쪽지모양으로 접었다가 다시펴서는 동그랗게 말았다가 다시 반토막을 냈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설 땐 멀쩡했던 종이가 행색이 말도 아니었다. 재미있는 취미도 생겼다. 지하철에서 심심할 때면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관찰하곤 했는데 이젠 손을 관찰하게 됐다. 좋아 죽겠는 연인들은 서로의 손을 조물거리고 있었다. 눈빛보다 손에서 사랑이 샘솟는 것처럼 보였다. 손은 그렇게 사람의 감정을 매 순간 담아내고 있었다.  


말을 할 때 손을 사용해야겠단 생각을 그때부터 '진지하게' 하기 시작했다. 1대 1로 수다를 떨든 연단에서 스피치를 하든 우리가 말을 할 때 몸짓을 쓰는 게 좋다는 사실은 전부터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단지 상대방의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한 방법쯤으로만 생각했는데, 그것보단 손이 우리의 감정을 표현해주는 꽤 정확하고 효과 좋은 도구이기 때문에 적극으로 쓸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바꾸게 됐다. 처음에는 어색할지 몰라도 손을 사용하며 말하는 버릇을 들이면 표정이나 목소리만으로 감정을 표현할 때보다 표현이 더 풍부하게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손을 쓰는 방법은 보다 손쉬운 방법이다. 


스피치 동호회에 제스처의 중요성을 매번 강조하는 젊은 연사 한 분이 있다. 그분은 '발짓'도 사용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연설대 위에 손을 얹거나 차렷 자세로 서서 발표하는데, 그분은 아예 연설대를 등지고 앞에 나가서 돌아다니며 발표를 한다. 또한 이 연사는 일단 무대에 나오면 양 팔이 기본으로 들려있다. 그만큼 제스처를 크게, 많이 사용하는데 정말 이 남자의 발표는 고도로 몰입되는 게 사실이다. 무슨 주제로 이야기를 하든 상관없이 일단 손과 발을 움직이니 더 시선이 가고 귀도 기울여지게 된다. 어느 날 이 연사님이 자신의 제스처의 비밀(?)을 털어놨는데, 오른 손목에 늘 차고 다니는 염주처럼 생긴 팔찌는 연단에 섰을 때 제스처를 잊지 않고 하기 위해서 차고 오는 거란다. 대단한 노력이 아닐 수 없다. 


손짓을 비롯한 몸짓은 이렇듯 말하는 이의 감정표현을 도와주며, 그 자체로서 언어이기도 하다. 팔짱을 끼는 '닫힌 자세'보다 팔짱을 풀고 상체를 앞으로 내미는 '열린 자세'가 적극적인 경청, 열린 마음의 표현이라는 것은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일 테다. 또한 어르신 앞에서 꼬고 있는 다리를 푸는 것도 우리가 은연 중에 몸을 언어처럼 사용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니 스피치를 할 때 손짓, 발짓, 몸짓을 잘 체크하고 적극 활용하는 건 말만큼이나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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