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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Sep 21. 2015

다름을 이해한다는 것

당신의 언어를 배웁니다




#6. 다름을 이해한다는 것
: 당신의 언어를 배웁니다




개와 고양이는 만나기만 하면 싸운다는 이야기는, 이 가을에 듣기엔 어쩐지 너무 쓸쓸한 이야기다. 하나의 마음, 다른 표현방식. 개는 고양이를 보면 앞발을 들고 반갑다고 인사하고, 그런 개를 본 고양이는 놀라서 앞발을 치켜들고 싸울 태세를 한다. 개는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는 고양이가 그만 너무 따뜻해져서는 멍멍 행복한 웃음을 웃으며 다가간다. 그러다 느닷없는 고양이의 공격에 개는 어리고 놀란 가슴을 안아야만 하는 것이다. 새파란 초생달처럼 시린 가슴으로 돌아서며 개는 '바다와 나비'의 흰나비가 그랬듯이 서글프고 젖은 마음으로 주저앉는다.


개와 고양이는 알지 못했다. 개에게 앞발을 드는 건 반갑다는 표현이지만 고양이에게는 앞발을 드는 것이 공격의 표현이란 사실을. 서로의 마음이 다른 게 아니라 서로의 표현이 달랐을 뿐이라는 것도, 개와 고양이는 끝내 알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들도 개와 고양이처럼 고독하게 소통하고 고독하게 상처받으며 사는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잘못된 건지도 모른 채 개와 고양이처럼 서로의 등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선 너와 나. 개는 생각한다. 왜 나의 호의에 고양이는 저토록 날카로운지. 고양이는 생각한다. 왜 가만히 있는 내게 개는 갑자기 앞발을 들어 공격하려 했는지. 왜 내 마음을 이토록 오해하는지...


서로의 다름을 아는 것. 알게 된 다름을 이해하려는 것. 이 가을이 이토록 쓸쓸한 것은 담요를 끌어안는 몸짓만큼도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려 하지 않아서일 테다. 서로를 오해하고, 상처 주는 말을 하고, 돌아서서 자신은 더 깊은 상처를 받고, 서로의 따뜻한 감정이 차가운 감정으로 변할 때까지 등을 돌리고 서 있는 우리. 너와 내가 모여 우리가 됐지만 너와 내가 서로 다르다는 당연한 사실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 그런 우리는 진정한 우리일까. 그런 우리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인 걸까...


쓸쓸한 이 계절에 라떼처럼 따뜻한 이야기 하나 들었더니만, 마음 저쪽이 저녁 내내 뜨끈거린다. 20대 후반의 청년이 '말'이라는 주제로 오늘 낮에 발표를 했다. "제가 파주에 있는 공장에서 일을 한 적이 있는데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았어요. 그들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말이 안 통해서 소통이 안 된다는 것이었어요. '나는 너가 좋다. 우리 힘들지만 열심히 해보자' 그런 제 감정을 이야기하고 싶었거든요. 의사소통을 떠나 감정을 주고받는 것이 안 되니까 우리는 가까워질 수 없었어요. 그래서 태국어책이랑 베트남어책을 사서 제가 공부를 좀 해봤어요. 잘은 못하지만 태국어로, 베트남어로 조금씩 말을 하니까 그들이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한국에 온 사람은 나인데 너가 나의 언어를 배워서 말을 걸어주어서 너무 좋다고요. 오늘 주제가 말에 대한 에피소드와 그로부터 느낀 점을 말하는 건데요. 음... 저는 말은 감정의 공유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


못난 내 마음에 낙엽 하나가 조용히 내려앉았다. 나는 이 청년처럼 노력이란 걸 한 적이 있던가. 나와 다른 타인의 '말'을 배우고 이해하고 소통하고 감정을 나누려는 노력을 한 적이 있었던가. 이 밤, 나 때문에 이 가을이 쓸쓸해져버린 건 아닌지 괜히 서글퍼져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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