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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Sep 17. 2015

신념과 자기확신

인생에 정답은 없다




#17. 신념과 자기확신
: 인생에 정답은 없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은 두 기氣가 충돌하는 일이다. 기가 약한 쪽은 기가 센 쪽으로 흡수된다. 스피치를 잘 하려면 뻔뻔해지라는 말에 그래서 동의한다. 뻔뻔해야 무대에서 '지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다. 지지 않는 게 포인트다. 많은 사람을 앞에 앉혀놓고 연단에 홀로 서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1대 100으로 싸우는 일과도 같다. 쪽수에서 한참은 불리한 게 발표자 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이 100을 이겨야 하는 게 스피치이며, 이것은 발표자가 가진 에너지에 달렸다. 내용만 좋아서는 기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

 

'뻔뻔해지다'나 '기싸움'이란 말보단 지금까지 해왔던 말로 표현하고 싶다. 내면의 힘을 지녀야 한다고. 내면의 힘이야말로 그 사람의 기氣다. 뻔뻔해진다거나 기싸움에서 이긴다는 건 내면의 힘이 크다는 말과 같다. 그리고  있는 이라는 근본 위로 떠 결과가 신념이며 자기확신이다. 내면이 강한 사람들은 신념이 있으며 자기확신이 강하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착한 탓인지 "이건 아닐 수도 있지만요", "이건 제 생각이지만요"와 같은 사족 붙이기를 좋아한다. 수학이나 과학처럼 정답이 정해진 발표가 아니라면 사족을 붙이는 건 자기확신이 부족해서 나오는 자기검열에 지나지 않는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당신이 어떤 말을 해도 당신의 말은 옳다.


일단 우리는 무대 위에 오른 이상 청중의 눈치를 살펴서는 안 된다. 내 말이 옳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 믿음으로 밀어붙여야 한다. 사실 청중들도 당신에게 설득당하길 원하고 있다. 그 자리가 강연을 위해 마련됐고 청중들이 당신에게 무언가를 듣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였다면 분명 당신의 확신 있는 말을 원하고 있다. 당신의 신념을 듣고 당신에게 무언가를 배우고 깨닫고 느끼길 원한다. 이들은 화자의 강한 신념의 말이 불화살처럼 자신의 가슴에 날아와 꽂히길 기다리고 있다. 지나친 겸손은 무대 위에서 만큼은 착한 게 아니라 확신의 부족일 뿐이다. 에너지 있는 말이란 신념에서 비롯된 자기확신으로부터 나오는 기氣다.


자기확신에는 절제와 과감함의 균형이 필요하다. 확신이 안 서는 말은 어설프게 하느니 차라리 절제하고 확신할 수 있는 말은 어떠한 권력자의 눈치도 보지 않고 과감하게 말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역사를 돌아봤을 때 신념을 가진 사람은 얼마나 빛이 났던가. 마틴 루터 킹이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며 연설을 시작했을 때 청중의 가슴은 얼마나 뛰었을까. 자신의 신념을 많은 사람에게 자신 있게 말하는 일은 세상이란 무대 위에서 내가 하나의 존재로서 당당히 고개를 드는 일처럼 아름다운 순간이다.


다만 주의할 것이 있다. 자기확신에 서 자신을 객관화시켜 바라보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객관화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독단과 인식의 왜곡을 경계해야 한다. 이것에 실패한 악인의 자기확신이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기는 것을 우리는 똑똑히 목격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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