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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Sep 29. 2015

결정적 질문의 가치

질문이 화두가 될 때




#9. 결정적 질문의 가치
: 질문이 화두가 될 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랬다. 하루 세 끼를 먹는 사람이라도 한 끼만 먹어야 한다면 한 끼로 최대 효율을 내는 법을 찾아내고야 만다. 내게는 기자일을 시작했을 무렵의 인터뷰가 그랬다. 주어진 시간은 1시간. 짧은 시간이지만 인터뷰이와 진정한 소통에 도달하여 그의 마음 깊이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 전까지 내가 해온 소통이란 여러 번의 만남 속에서 시간의 층을 쌓으며 이루어진 보통의 것들이었다. 시간에 기대지 않은 단 한 번의 만남, 그것도 1시간 남짓 안에 소통에 이르는 일에 어서 적응하고 싶었다. 그래서 찾아낸 열쇠가 바로 '질문'이었다. 


한 번, 두 번 인터뷰 경험이 쌓이며 느낀 점이 있다. 좋은 질문을 하면 좋은 대답이 돌아온다는 것. 당연하고 단순하지만 중요한 포인트였다. 내가 준비해간 질문들 중 어떤 질문에는 인터뷰이의 형식적인 대답이 돌아왔지만 어떤 질문에는 내면의 깊은 이야기가 딸려 올라왔다. "이 영화 찍을 때 어떤 점이 힘들었나요?" 이렇게 물으면 상대는 힘들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라고 질문하면 힘들었던 일과 함께 그것을 극복하며 느꼈던 개인적인 감정과 앞으로 바라는 꿈 등 좀 더 깊숙한 대답을 꺼내놨다. 후자처럼 인터뷰이가 '일'보다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 더 깊은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래서 좋은 질문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은 점점 늘어났다.   


중요한 건 '결정적 질문'이었다. 짧은 시간 안에 인터뷰이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선 결정적 대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름의 고민이 담긴 결정적 질문들을 준비했다. 그중 하나는 "당신이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이라 생각하나요?"라는 물음이었다. 언제나 질문은 같았지만 대답은 제각각이었다. 어떤 배우는 데뷔한 일을 꼽았고, 어떤 배우는 결혼한 것을 살면서 가장 잘 한 일로 꼽았다. 이런 대답들로 나는 인터뷰이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어떤 가치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지, 가슴속에 어떤 꿈을 품고 사는지 그 속을 조금 알 것도 같았다. 


예를 들면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답은 배우 박보검의 대답이었다. "보검 씨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일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다른 인터뷰이들과 다르게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태어나서 우리 가족을 만난 것이요." 이 짧은 답변 안에 한 사람의 꿈과 인생, 그토록 많은 것이 담겨 있어 어쩐지 짠해졌다. 소통에는 많은 질문이 필요하지 않았다. 결정적 질문 하나로도 1시간의 대화를 한 마디의 대답 안에 담아낼 수 있단 걸 다시 한번 확인했다. 만약 주어진 인터뷰 시간이 단 10분이라면 나는 상대에게 어떤 질문을 할까. 그런 생각을 해보는 건 재미있는 일이었다.    


좋은 질문은 답변과 상관없이 질문 자체로 가치를 지닌다. 선원에서 스님들은 제자에게 화두(話頭)를 던져 몇 날 며칠 혹은 몇 년 동안 생각하게 하는데, 화두는 참선 수행을 위한 실마리가 된다. 물음표 형태의 문장이든 짧은 단어든 스님이 그것을 질문 던지듯 던지면 그 화두 자체가 상대를 생각하게 하고 성장하게 한다. 답을 찾지 못해도 상관없이 말이다. 내 친구 중에는 질문을 화두처럼 던지는 친구가 한 명 있다. 어떤 날은 지금 내 마음을 괴롭히는 것에 대해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그 친구가 가만히 듣고서는 질문 하나를 던졌다. 


"근데 그게 중요해?" 


할 말이 없었다. 대답을 가만히 생각해봤다. 지금 내가 하는 고민이 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일인지 아닌지. 허무하게도 내가 찾은 대답은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대답이었다. 그날 그 친구의 질문 덕에 평소에 내가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마음의 에너지를 너무 낭비하고 살았음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그 후로 사소한 일에 집착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곤 했다. "지금 이게 중요해? 정말 중요한 거 맞니?" 그러면 나의 사소한 고민은 결정적 질문 앞에서 꼬리를 내리고는 스르르 사라졌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화두 같은 질문 하나 툭 던지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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