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선택은 래그타임
#8. 말과 리듬
: 나의 선택은 래그타임
예술에 옳고 그름이 있다면, 옳은 예술에는 언제나 리듬이 있다. 나에게 옳았던 예술은 모두 그만의 고유한 리듬이 있었고 그 리듬이 날 등에 태우고선 무아지경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어떤 영화가 좋았다면 그 영화는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한 리듬으로 나를 들썩거리게 한 작품이었다. 어떤 영화가 별로였다면 그 영화는 어떠한 리듬도, 호흡도, 장단도 느껴지지 않는 모범생 같은 박자를 타고 있었다.
좋은 글에도 리듬이 있다. 그런 글을 읽을 땐 나도 모르게 고개가 흔들거린다. 그런 글에 올라타면 마치 야생마에 올라 탄 기분이다. 진리의 초원 위를 두그덕두그덕 신나게 달리는 건 말과 하나되는 짜릿함이며 말로 표현 안 되는 짜릿함이다. 어떤 글 속에 리듬이 있다면 설령 글의 내용이 어렵다고 해도 술술 잘 읽힌다.
언제부터인가 글을 쓸 때 피아노 연주를 듣기 시작했다. 피아노의 리듬을 빌리기 위해서다. 같은 곡이라도 연주자의 해석에 따라 그만의 감정과 리듬이 만들어지는데, 그 감정과 리듬 위로 내가 올라타면 나의 생각과 손 끝도 따라서 리듬을 타기 시작한다. 노트북 타자를 치는 모습이 마치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연주자의 모습처럼 될 때, 그때가 무아지경에 이른 상태이며 글에 리듬이 실리는 순간이다. 한 문장은 길게 썼다가 바로 다음 문장은 짧게, 다음 문장은 다시 길게 쓰는 일. 긴 문장과 긴 문장을 연이어 잇다가 긴장감이 고조됐을 때 극도로 짧은 문장 하나를 찍는 일. 또는 랩(rap)이나 시(詩)처럼 한 문장 안에서 라임을 만들어 운율을 살리는 일. 또는 글의 내부로부터 스토리 자체의 변화와 흐름을 만드는 일. 이 모든 것이 '글의 리듬'을 만드는 과정들이다.
좋은 말(言)에도 리듬에 있다. 좋은 글의 리듬과 크게 다르지 않다. 머릿속에서 생각들이 빠르게 몰아치면 빠른 리듬의 록처럼 말하고, 반대의 경우에는 잔잔한 클래식처럼 말하게 된다. 하지만 말을 할 때 일어나는 리듬은 어찌 설명할 도리가 없는 것이어서, 마치 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없는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일처럼 막막하다. 영화나 그림이나 문학작품을 볼 때 자신의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선율과, 그 선율을 따라 흐르는 무아지경 상태를 떠올려보라는 말 밖엔 달리 설명할 길이 없겠다.
말도 예술이 될 수 있다면, 그러기 위해서는 리듬이 필요하다. 하지만 말의 리듬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리듬 있는 말을 하기 위해 무엇을 하라고 콕 집어 제안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리듬을 타는 일은 자신의 느낌이 하는 일이고, 느낌은 단순히 연습만으로 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피아노 연주자가 연주곡에 자신의 혼을 담아 몰입함으로써 무아지경에 도달하는 것. 이런 시간 속에서 자신만의 리듬이 만들어지는 것일 테다. 우리는 다만 피아니스트가 치열하게 곡을 해석하고 부단히 연습하여 연주회 당일 혼을 실어 연주하듯, 그렇게 말을 해야 한다. 리듬을 만드는 획일된 방법론은 없으며, 어떠한 리듬을 탈 것인가도 순전히 당신의 선택이다.
피아니스트의 연주 스타일 중에 '래그타임'이란 게 있다. 당김음을 많이 사용해 밀고 당기는 재미를 만들어내는 기법이다. 누군가 내게 당신의 고유한 리듬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래그타임을 선택하고 싶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과 생명력으로 듣는 사람을 들썩이게 하는 그런 래그타임 리듬을 품은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