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위 좁히기
#7. 순발력의 비밀
: 범위 좁히기
스피치 프로그램 중에 즉흥스피치란 게 있다. 바구니에서 쪽지 하나를 뽑아 즉석에서 쪽지에 적힌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순발력 연습의 일종인데 쪽지에는 ‘겨울’, ‘나의 장점’, ‘최근에 본 영화’ 등 다양한 주제가 적혀 있다. 어떤 이는 쪽지를 펼쳐보자마자 준비라도 한 듯 술술 이야기 보따리를 풀고, 어떤 이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며 당황해하기도 한다.
우리는 일상에서도 어떤 주제에 대해 순발력 있게 말해야 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땐 일단 주제의 범위를 좁히는 게 이야기의 물꼬를 트는 빠른 방법이다. 만약 ‘겨울’이라는 주제로 당장 무언가를 말해야 한다면 겨울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려 하지 말고 겨울 스포츠, 겨울 옷, 겨울 군것질거리, 겨울 영화 등으로 주제를 확 좁히면 이야기를 시작하기 한결 쉬워진다. 다음 두 가지 스피치를 비교해보자.
1.
겨울에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과 새해를 시작하는 연초가 함께 있습니다. 연말에는 크리스마스 분위기 덕분에 로맨틱한 기분을 느낄 수 있고 연초에는 신정과 설날 덕분에 새로 시작하는 기분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겨울에는 스키나 보드를 탈 수가 있어서 좋은데요. 저는 올해 겨울에도 친구들과 스키장에 가기로 했습니다. 겨울 스포츠를 즐기지 않는 분이라도 춥다고 실내에만 있지 마시고 햇빛을 받으며 산책하시길 바랍니다. 또 겨울 하면 다음에 다가올 봄이 생각나는데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봄이 오길 바라지만 저는 겨울이 참 좋습니다.
2.
저는 겨울 하면 군고구마가 생각이 납니다. 동네마다 군고구마 리어카가 꼭 한 대 정도는 있잖아요. 그런데 작년 까지만 해도 보이던 군고구마 장사가 올해는 하나도 안 보이더라고요. 경기가 안 좋아서 그런가 하고 지나쳤는데 편의점에 가 보니 왜 그런지 알겠더라고요. 편의점에도 군고구마가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삶은 옥수수, 삶은 계란, 사과, 바나나 등 정말 편의점에는 안 파는 게 없구나 싶었어요. 군고구마 장사가 사라지는 게 꼭 편의점 때문은 아니겠지만 저는 편의점을 보면 가끔 뭔가 잃어버린 것처럼 허전한 기분이 들어요. 올 겨울에는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 한 번쯤 따뜻한 눈길을 주시는 건 어떨까요?
1번 스피치는 겨울의 분위기, 겨울의 스포츠, 겨울과 봄 등 겨울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다양하게 풀어놨다. 반면에 2번 스피치는 겨울에 볼 수 있는 군고구마로 이야기를 풀었다.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생각해내려면 2번처럼 주제의 범위를 좁히는 것이 좋다. 2번 사람은 겨울이란 주제를 봤을 때 갑자기 군고구마가 생각났을 것이고 일단 군고구마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겨울→군고구마→사라진 동네 군고구마 장사→편의점 풍경→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단상'으로 이어졌고 그 흐름에 몸을 맡겼다. 사실 즉흥적으로 무언가를 말해야 하면 생각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이야기의 전체 윤곽을 세우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땐 일단 생각난 것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 된다. 그러면 군고구마가 스스로 입이 달린 것처럼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낼 것이다. 2번 사람이 겨울이란 주제를 보고 처음부터 사라져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생각하진 못했을 것이다.
순발력 있게 말을 하기 위해선 이렇듯 욕심을 버리고 용기를 내야 한다. 욕심을 버린다는 것은 여러 가지를 다 말하려 하지 말고 이야기의 범위를 좁혀 말하는 것이고, 용기를 낸다는 것은 자신이 뱉은 이야기가 어떻게든 흐름을 타고 이어져서 하나의 스토리가 만들어질 것임을 믿고 무슨 이야기든 하는 배짱이다. 순발력은 연습으로 충분히 키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