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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Sep 26. 2015

단어의 배치

느낌 있게, 창의적으로




#5. 단어의 배치
: 느낌 있게, 창의적으로





손 안의 재료로 맛있는 말을 만드는 비법은 단어의 '배치'에 있다. 단어들을 '느낌 있게' 배치하는 것이다. 단어와 단어가 빚어내는 관계가 묘하게 마음을 끌면 굳이 고급어휘를 사용하지 않아도 힘 있는 말을 할 수 있다. 이것은 창의성을 요하는 작업인데 랩(rap)이나 시(詩)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설명에 앞서 일단 예를 들자면, 풍부한 어휘력을 발휘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어제 아이스크림을 먹었습니다. 치즈케이크 아이스크림이었는데 마치 입 안에서 미각 축제가 벌어진 것 같았습니다. 정말 일품이었어요. 치즈케이크 조각들이 많이 박혀 있었는데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운 좋게 조각 3, 4개가 한꺼번에 들어왔을 땐 세상 부러울 게 없는 백만장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미각', '축제', '일품', '백만장자' 등 꽤 화려한 어휘들을 사용했다. 표현력도 훌륭 좋은 스피치다. 하지만 더 단순한 단어로도 이야기를 풀 수 있다.


"여러분은 어떨 때 행복하십니까? 저는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행복합니다. 어제 치즈케이크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요. 달콤해서 행복했고, 치즈 조각이 씹힐 때면 깊은 치즈향에 행복했고, 좋아하는 사람과 마주 보고 먹어서 또 행복했습니다. 작은 행복은 큰 행복보다 때론 더 큰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은 '행복'이라는 단어 밖에 아는 게 없다는 듯 '행복'을 여러 번 반복했다. 고급 어휘는 사용하지 않았다. '달콤', '작다', '크다'처럼 가장 기본적인 단어들만 사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있는 스피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단어의 배치 했기 때문다. ‘달콤해서 행복했고, 깊은 치즈향에 행복했고, 좋아하는 사람과 먹어서 행복했다는 문장은 마치 랩의 라임(rhyme)처럼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라임이란 래퍼들이 비슷한 단어들을 써서 운율을 살리는 걸 말하는데, 문학에서 압운(押韻)과 같은 것이다. 압운은 주로 시가에서 시행의 일정한 자리에 같은 운을 규칙적으로 다는 일인데, 일정한 타이밍에 배치된 행복이란 단어가 (비록 비슷한 단어가 아닌 동일어지만) 그런 운율감을 살리고 있다.


또한 마지막 문장에서 '작은 행복은 큰 행복보다 때론 더 큰 것 같습니다'고 표현했는데 '작다'와 '크다'라는 반의어를 사용하여 말의 맛을 살렸다. 사실 '작다'와 '크다'처럼 단순한 단어가 또 있을까? 이런 쉬운 단어들이라도 대립되는 한쌍을 이루게끔 창의적으로 배치하면 재치 있고 정갈한 스피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믿는다. 어휘력을 키우고 싶으면 소설을 많이 읽고, 어휘를 배치하는 창의력을 키우고 싶으면 시를 많이 읽어야 한다고. 나는 화려한 단어들로 말을 하고 글 짓기 보다는, 소박하고 정갈한 단어로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을 내는 말과 글을 담그고 싶다. 그래서 소설도 좋아하지만 시도 많이 읽고 싶다. 별 것 아닌 단어들을 최상의 배열로 위치시켜 또 다른 세계를 열어보이는 시는 꼭 다이아몬드를 닮았다. 다이아몬드와 흑연은   로 이루어졌음에도, 탄소 원자의 배열에 따라 흑연이 되기도 하고 다이아몬드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그러니까 우리 손 안의 재료로 얼마든지 다이아몬드를 만들 수 있는 보석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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