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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Sep 25. 2015

무엇에 대해 말할 것인가

사건 VS 생각




#3. 무엇에 대해 말할 것인가
: 사건 VS 생각





스피치 훈련 동호회에서는 근황발표란 걸 할 때가 있다. 최근에 자신에게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인데 가족끼리 주말여행을 다녀온 이야기, 재미있게 읽은 책 이야기, 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목격한 싸움 이야기 등 어떤 것을 말해도 상관없다. 일단 일주일 동안 나를 스쳐간 크고 작은 이야기들 중에 무엇을 말할 것인지를 고르는 게 당신의 '첫 번째 선택'이다. 하지만 '첫 번째 선택'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두 번째 선택'이다.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도 두 번째 선택에 관한 것이다.


사건 VS 생각.

둘 중에 무엇에 대해 말할 것인가? 이것이 바로 '두 번째 선택'이다. 일단 첫 번째 선택으로 '지리산에 등산 간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면, 다음 두 번째 선택으로써 지리산에 등산 간 '사건' 자체를 말할 것인지 아니면 지리산 등산을 통해 얻은 '생각'에 대해 말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보통 발표를 들어보면 사람들은 사건과 생각을 섞어 말하는데 그 비중은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더 크다. 하지만 사건보다 생각에 대해 말하는 것이 고급 스피치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일단 아래 두 사람의 발표를 보고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  


“저는 지난 주말에 처음으로 혼자서 산을 찾았습니다. 지리산에 갔는데요. 주말이라 그런지 아침에 고속도로가 제법 막히더라고요. 산은 해가 빨리 지니까 너무 늦게 도착하면 어떡하나 걱정됐는데 다행히 계획했던 시간에 도착해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지리산은 처음이라 미리 검색을 해서 구룡계곡 코스를 선택했습니다. 오랜만에 하는 산행이라 힘들더라고요. 올라갈 때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결국 구룡폭포에 도착해서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니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내려와서 마신 막걸리 한잔도 정말 끝내줬고요. 요즘처럼 날씨 좋은 때 여러분도 지리산에 한번 다녀오시길 추천합니다.” 첫 번째 발표자는 등산했던 경험을 시간 순서에 따라 '사건 위주'로 이야기했다.  


반면 똑같은 지리산 등산에 관한 이야기지만 다음 사람처럼 외부적 사건보다 내면의 생각을 중심으로 이야기 풀어갈 수도 있다. “저는 스트레스를 푸는 저만의 방법을 얼마 전에야 찾았습니다. 지난 주말에 지리산으로 ‘나 홀로 등산’을 갔는데요. 회사에서 단체로 등산을 간 적은 있지만 제가 자진해서 그것도 혼자서 산에 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이렇게 안 하던 짓을 하게 된 계기는... 사실 제가 근래에 회사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힘들었습니다. 이직에 대한 고민도 컸고요. 자신과의 대화가 간절했기 때문에 안 하던 산행을 결심했던 겁니다. 산을 오르면서 제가 회사에 처음 입사 통보를 받았을 때의 벅찼던 마음, 신입연수 시절에 가졌던 꿈들이 머릿속을 한꺼번에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제가 초심을 잃고 매 순간 불평만 하고 있었단 걸 알게 됐어요. 이런 생각을 하다가 계룡폭포에 딱 도착했는데... 정말이지 폭포수와 함께 못난 제 자신도 훌훌 털어버져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한참을 폭포수 앞에 앉아 있다가 내려왔습니다. 여태 영화를 보거나 잠을 자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는데 이제야 속 끝까지 스트레스를 푸는 제대로 된 방법을 찾은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은 '두 번째 선택'에서 갈렸다. 첫 번째 화자처럼 사건 위주로 이야기를 하면 마치 뉴스를 전하듯 다소 건조한 정보 전달식의 스피치가 된다. 하지만 두 번째 화자처럼 생각 위주로 이야기를 하면 메시지가 있는 스토리텔링이 된다. 두 번째 화자는 지리산 등산을 소재로 삼아 '스트레스 해소법: 나 홀로 등산'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심화시켰다. 그는 지리산에 '왜' 갔는지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육하원칙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왜'이다. '왜' 홀로 산행을 하게 됐는지 말한 덕분에 그는 자신의 고민과 생각을 자연스럽게 풀어갈 수도 있었던 것이다.   


있었던 '일'에 대해서만 말하지 말고, 그 일을 경험한 '나'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이야기 속에 '자신'이 담기도록 생각 위주로 이야기를 편집해야 한다. 사건보다는 생각을 중심축으로 해서 이야기를 풀면 자신의 내면이 담긴 진실한 스피치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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