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니 낀 플루티스트

도전! 할머니의 플루티스트 되기 010.

by 황인희

플루트 배우기 시작한 지 1년반만에 플루티스트로서의 나의 삶에 가장 큰 위기가 닥쳐왔다. 윗니 전체를 뽑고 임플란트를 해야 했다.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6개월. 일단 재생 불가능한 이빨을 모두 뽑고 그 자리에 인공 치조골(잇몸뼈)을 이식하여 거기에 임플란트를 심는다. 마치 콘크리트 양생 후 기둥을 세우고 콘크리트가 굳기를 기다리듯 5개월여를 보내야 한다. 심지어 이를 뽑고 뼈 이식과 임플란트를 식립한 후 상처가 아물고 부기가 빠질 때까지 2주 동안은 윗니 없이 지내야 한다. 2주 후 부기가 빠지면 비로소 본을 떠서 임시 틀니를 장착할 수 있다.


나의 윗니가 본격적으로 망가지기 시작한 것은 30대 중반부터였다. 출근길, 참을 수 없는 치통이 느닷없이 날 공격했다. 도저히 출근할 수 없는 지경이어서 회사에 전화하고 가까운 상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지금의 치과들과는 사뭇 다르게, 치과 내부는 마치 아편굴처럼 좁고 어두침침했다.

나이가 제법 들어 보이는 할아버지 의사가 충치가 심해 다른 방법이 없겠다며 윗니 중 가장 안쪽 어금니를 뽑아야 한다고 했다. 다른 방법이 없다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망설임 없이 동의하여 이를 뽑고 상처가 아물면 다시 와서 뒤처리하자고 했다.


그런데 이후 나는 뒤처리는커녕 내 어금니 하나가 없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뒤 지지대가 없으니 그 앞 어금니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때는 토요일에도 오전 근무를 했고 야간 진료니 하는 것도 없을 때라 직장인은 업무 시간을 할애하지 않으면 치과 다니기도 어려운 시기였다. 그러니 웬만한 신체 이상은 견디거나 개기곤 했다. 특히 나는 참는 데 일가견이 있다. 그래서 일을 키우기도 하지만…


제2어금니가 심하게 흔들려 내 소견으로도 뺄 수밖에 없겠다고 여겨질 무렵에야 또다른 치과를 찾았다. 그런데 맨 안쪽 어금니가 없다는 의사의 말에 나는 “그럴 리가요?”라고 반문했다. 몇 년 전 그 어두컴컴한 치과에서의 발치를 기억해내기까지 수 분이 걸렸다.

30대 중반, 당시 나는 회사에서는 중견 사원으로서, 집에서는 주부로서, 아직은 엄마 손이 필요한 아이의 엄마로서 인생에서 가장 바쁜 때를 보내고 있었다. 이 치과 사건은 치열했던 당시 나의 삶을 고스란히 증언하는 듯하다.


충치는 물론 잇몸병도 나를 괴롭혔다. 치과에 열심히 다녀야겠다고 인식했을 때 이미 모든 윗니가 다 흔들리고 있었고 치조골은 거의 녹아버린 후였다. 그동안 두어 차례 대대적인 치과 진료를 받았지만 이빨들은 도미노와도 같이 순차적으로 허물어졌다. 결국 흔들리는 앞니 여섯 개가 자리만 지키게 되고 조만간 근본적인 해결을 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이르렀다. 치조골이 없어 임플란트 시술하기도 어려우니 결국 윗니 전체 틀니를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 주치의의 복안이었던 듯하다.

그 무렵 코로나19가 창궐했다. 아주 급한 일 아니면 치과를 비롯한 모든 병원에 가기 어려운 시기였다. 어쩔 수 없이 또 견디고 개기는 삶이 지속되었다. 거의 4년 동안 치과 진료를 받지 못했지만 다행히 내 앞니 여섯 개는 잘 버텨주었다. 그동안 나는 플루티스트의 행보를 시작했고 연주회도 한 번 치렀다.


코로나19도 웬만큼 진정되었고 마스크를 벗었을 무렵 이빨은 더 이상 더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큰마음 먹고 치과 진료를 예약했다. 그런데 내가 치과 진료를 못 받은 그 4년 동안 임플란트 시술 기술도 발달하고 대중화가 많이 진행되었는지 프로세스도 비교적 간소해졌고 비용도 저렴해졌다. 두 주는 윗니 없이 지내야 하니 모임 약속이 적은 때를 잡아 시술 날짜를 잡았다. 6월이었다.


첫날 내가 윗니를 몽땅 뽑고 태연하게 돌아오니 남편이 경악해 했다.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한꺼번에 이빨 여섯 개를 뽑고도 눈 하나 깜짝 않다니…. 물론 마취가 풀리며 통증이 몰려왔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그리고 30년 넘게 나를 괴롭히던 고통의 근원을 제거하니 오히려 시원했다. 오죽하면 ‘앓던 이 빠지듯’이라는 말이 있겠는가.


문제는 플루트 연주였다. 윗니가 하나도 없는 2주 동안은 쉬기로 했지만 임시 틀니를 끼는 5개월 동안 연주를 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심지어 그 기간에 앙상블 정기 연주회 일정까지 있었다. 임시 틀니는 기존 내 잇몸에 틀니를 얹는 거라 입 천장 높이가 틀니 없을 때와 다르다. 또 접착제를 바르고 틀니를 끼운다 해도 윗니라 아무래도 불안정하다. 말할 때도 더러 틀니가 빠져나와 부자연스러운데 텅잉이 필요한 연주 때의 불편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나는 굳건하게, 의연하게 버텼다. 임시 틀니를 낀 5개월 동안 비교적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그리고 10월, 연주회도 무사히 마쳤다. 나의 실력이 문제였을 뿐 틀니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틀니, 그것도 텅잉을 받쳐줘야 하는 윗니에 틀니 낀 플루티스트가 나말고 또 있을까? 나이 들어 플루티스트가 되려 하니 별별 일을 다 겪게 된다. 맨 앞에 위기라고 썼지만 이제껏 살며 겪은 풍상에 비하면 사실 이 정도는 위기도 아니다. 감사하고도 그나마 다행인 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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