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할머니의 플루티스트 되기 011.
첫 연주회 때 나는 앙상블에 입단한 지 얼마 안 되었으므로 비교적 연주가 쉬운 4파트에 배정되었다. 단원은 한 파트에 네 명씩 열여섯 명이었다. 배운 지 1년도 채 안 되었지만 연주가 어렵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없는 부분에서는 소리를 내지 않고 이른바 ‘립싱크’를 하고 넘어갔기 때문이다.
앙상블 연주는 다른 단원과의 조화가 중요하다. 혹시 내가 불어야 할 부분을 놓쳤더라도 계속 준비하고 악보에 집중하고 있으면 다음 할 부분이 보이게 마련이다. 많은 아마추어 연주가가 그런 경우를 겪는다고 한다. 나도 또 같은 파트의 다른 단원들에게 가이드가 되어줄 수 있으니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연주하라고 지휘자가 신신당부한다. 진짜 큰 사고는 연주할 부분을 놓쳤다고 임의로 악기를 내려버리는 거다.
나의 경우 뭐를 하든 일단 강한 포스가 느껴진다는 얘기를 들어왔다. 테니스를 배울 때도 골프를 배울 때도 왔다갔다하는 폼은 마치 프로 같다는 얘기다. 플루트 연주도 마찬가지다. 소리를 들어보면 엉망진창이지만 겉만 보면 대단한 실력자 같다는 거다. 이건 자랑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노력해서 이룬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 덕에 겉보기로는 어설프지 않게, 그럴듯하게 연주회를 끝냈다. 립싱크 덕분이라는 나의 고백에 지휘자는 “립싱크 잘하는 것도 실력이에요”라고 위로해주었다.
그런데 첫 연주회 때 나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4파트 맨 앞에 앉은 내게 지휘자가 입장하면 바로 일어서는 ‘임무’가 주어졌다. 내가 일어서는 것을 보고 입구를 등지고 앉은 다른 파트 단원들도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게 쉬운 것 같지만 사실은 굉장한 집중이 필요한 일이다. 무대에 올라가 앉으면 긴장하여 그 단순하고 쉬운 일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연 동안 지휘자는 몇 차례 들락날락하지만 내가 일어서서 단원들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은 처음 시작할 때와 인터미션 후 2부 시작할 때 두 차례이다. 다행히 나는 내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아마추어 공연을 보면 의외로 입장이나 퇴장, 인사할 때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많다.
절도를 중시하는 군인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언젠가 군대 행사에 참여했을 때 일이다. 좀 일찍 행사장에 들어가는 바람에 애국가와 군가를 부르는 현역 성악병이 무대 들어오는 연습을 보게 되었다. 무대 양옆에서 들어오는데 대각선으로 설렁설렁 입장하는 게 군인답지 않다고 여겼는지 지휘관은 양옆에서 들어오다 직각으로 꺾어 앞으로 오게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방향 바꿀 때 각이 잡혀야 하는데 양팔이 덜렁덜렁 제대로 안 되어 20분 가까이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결국 그냥 대각선으로 자연스럽게 입장하는 걸로 돌아갔다. 군대에서 제식 훈련을 제대로 안 한다고 하더니 그게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현장이었다.
내가 어린이합창단에 다닐 때는 무대 위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훈련을 굉장히 많이 했다. 예를 들면 입장하여 단 위에 간격 맞춰 서서 정면을 보고 있다가 지휘자가 신호하면 양쪽 단원은 일제히 반좌향좌나 반우향우를 하여 지휘자를 보는 것이다. 물론 그때 절도있게 움직여야 한다. 악보책을 들 때도 손 모양을 통일했다. 악기 연주의 경우 악기를 드는 것도 내리는 것도 지휘자 신호에 맞춰야 한다.
그런 게 음악하는 사람들에게 뭐 중요하냐고 할 수 있지만 실제 공연 때 질서가 잘 안 지켜지면 굉장히 지저분하고 산만해 보인다. 음악만 좋으면 된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뭔가 마땅찮은 것이 눈에 띄면 그것에 신경 쓰여 그 뒤부터는 음악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첫 번째 연주회를 마치고 내가 자신감을 얻었던 것은 멋진 연주를 했다는 것보다는 무대에서의 격식에 차질없이, 무사히 공연을 마쳤다는 점이었다.
연주회가 끝난 후 조금 시간적 여유가 생기자 우리는 그제야 자기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플루트 앙상블 단원들은 그야말로 ‘혀와 호흡’을 맞춰야 하는 관계이다. 그런데 그때까지 서로의 이름도 모르고 있었던 거다.
단원들 중 플루트 배운 연차는 내가 가장 짧았다. 평균 연령이 낮은 건 아니었지만 65세인 나는 가장 고령자였다. 다른 단원들의 부추김으로 내가 회장이 되었다. 아니, 앙상블에 악장은 필요하지만 회장이 무슨 소용이람.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왕언니 노릇’인데다 회장은 필요없지만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이고 피자와 치킨을 샀다. 무엇보다 실력이 모자라는 나를 받아주고 싫은 내색 없이 함께 연주해준 단원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오케스트라에 자리 나길 기다리며 앙상블에 잠시 머문 단원도 있었다. 아마추어지만 어쩐지 곱고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고 했더니 배운 지 14년이 되었다고 했다. 그의 자기 소개가 끝난 후, 배우기 시작한 지 3년 되었다는 내 옆 단원이 내게 작게 속삭였다.
“우리도 14년 하면 저렇게 잘 불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앗, 그런데 14년 후에 나는 80세인데. 그때까지 연주를 계속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