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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 Jan 07. 2021

20. 버티는 삶에 관한 고찰

버티는 삶은 우습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삶은 버티는 수밖에 없다고.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삶은 견디는 수밖에 없다고. 나는 묻는다. 어떻게 버티고, 어떻게 견디느냐고. 버티고 견뎠던 순간들을 떠올려 본다.


1. 잠을 버티다.


나는 전형적인 올빼미형 인간이다. 밤에는 잠이 안 오고, 낮에는 잠이 솔솔 온다. 중학교 때 밤새 영화를 보고 교실에서는 잠을 잤다. 잠을 버틸 생각 따위 없었다. 고등학교 때 잠을 버티기 위해 교실 뒤로 가서 수업을 듣는 친구들을 보며 잠시 생각을 바꿨었다. 잠을 버티기로 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은 1년 내내 문학을 배운다. 시와 소설만 엄청 많이 배운다. 국어 선생님은 그 긴 소설을 직접 읽어 주셨다. 목소리가 감미롭진 않았지만, 졸음은 몰려왔다. 졸음이 몰려오면 나는 버티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눈이 서서히 감겼다. 그리고 눈을 떠보면 글씨가 코앞에 있었다. 나는 그래도 버텨 보겠다고 고개를 들어 올리고 글자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다 초점이 서서히 엇나가고 다시 눈을 뜨면 글자가 코앞에 있었다. 그러길 몇 번을 반복했다. 그때 국어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내 이름을 레드라고 한다면(왜냐하면 나는 지금 레드니까), 내 이름을 부르며 온 교실에 선언했다. "레드는 왜 자꾸 인사를 하니?"


그렇다. 내 입장에서 나는 잠과의 치열한 투쟁을 벌이는 투사였지만, 멀리서 보면 나는 '인사 잘하시네'였던 것이다. 잠의 중력을 이기지 못한 머리의 자유낙하와 그 중력을 이겨보겠다는 나의 자유의지 투쟁은 아마 우스워보였을 것이다. 온 교실이 환하게 웃었다. 지겨운 국어 시간에 오아시스라도 본듯이, 환했다. 잠을 버틴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 하강을 버티다.


나는 계단이나 내리막길을 무서워 한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즐겨타던 어린시절과 관련있다. (1)친구네 집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였다. 나는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가던 중이었다. 순간 발을 삐끗했는데 그게 스케이트 바퀴를 돌렸던 것 같다. 나는 아주 빠른 속도로 계단을 미끄러지듯이 내려갔다. 계단이 10개가 넘었던 것 같은데, 살기 위해 몸의 균형을 잡았다. 눈 앞에 벽을 잡고서야 가까스로 멈췄다. 살아남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2)초등학교 2학년 때 친하게 지내던 남자애가 있었다. 반에서도 말썽을 피우는 걸로 유명했다. 성질이 고약했다. 같이 인라인을 타고 놀다가, 나에게 재밌는 곳이 있다며 따라오라고 했다. 스키장 고급 코스로 사용해도 될 가파른 경사지 꼭대기였다. 나는 무서웠지만, 무섭지 않은 척 했다. (당시 나는 9살의 쿨함을 추구하고 있었기에) 남자애가 무섭냐고 놀리듯이 말하자 나는 발끈하고 곧바로 내려갔다. 속도가 바로 붙었고, 바로 후회했다. 그래도 당장은 살아야 하기에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 끝이 보이는 순간 안심했는지, 속도가 너무 빨라 브레이크가 안 먹었는지, 나는 마지막에 가서 넘어졌다. 엉덩이로 주저 앉았다. 그날 샤워하면서 아프길래 확인해 보니 엉덩이 아래쪽 허벅지가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 일주일은 넘게 고생했다. 이후로 나는 계단도 내리막길도 무서워했다.


나는 항상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왔다. 고등학교 2학년 때도 친구랑 대화하면서 온 신경을 계단 내려가는 일에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뒤에서(그러니까 계단 위쪽에서) 친구가 나를 부르길래 고개를 돌렸다. 순간 발을 잘못 디뎠는지 몸이 기우뚱 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몸의 무게 중심을 뒤로 보냈다. 그런데 그걸로는 부족했나 보다 몸이 다시 앞으로 기울어지려고 했다. 나는 (머리가 좋은 편이기에) 머리가 가장 무겁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고 머리를 뒤로 보냈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그렇게 몇 초 동안 애썼다. 친구들은 아슬아슬한 경기를 바라보듯이 말없이 나를 지켜봤다.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천천히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때도 나는 버티고 있는 상태여서 아주 천. 천. 히. 정말. 느. 리. 게. 넘어졌다. 나는 밑에서 3번째 계단에 있었기에 넘어질 때 아프진 않았다. 그런데 내가 넘어진 순간 1초간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친구들이 비웃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장면이었다. 계단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버틴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3. 주저앉음을 버티다.


나는 균형을 잡는 일만큼은 자신있는 편이다. 나는 유연한 편은 아니지만, 숨겨진 키를 찾기 위해 요가를 등록한 적이 있다. 모두가 다리를 벌리고 허리를 숙여 땅과 마주할 때, 나 혼자 꼿꼿이 앉아있을 때의 서운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서운함을 참고 다닐 수 있던 건 내가 균형을 잘 잡기 때문이다. 손과 다리를 꼬고 한 다리로 서있는 자세를 할 때,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나가 떨어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막대기처럼 꼿꼿이 서서 즐거움을 만끽했다. 나는 균형잡기에 있어서 만큼은 자만적(?)인 사람이었다.


지하철을 타서 서있을 때도 손잡을 잡지 않았다. (아무도 관심 없었지만) 두 다리로 바닥을 당당하게 짚고 손은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지하철이 출발하거나 정차할 때도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두 다리로만 버틴다는 것, 그것은 나의 자긍심이었다. 그러다 겨울이었나? 나는 집으로 가는 길에 지하철 열차 안에서 두 다리로 서 있었다. 서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나는 가운데 통로에 당당하게 지하철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엄마와 통화하고 있었다. 나는 평소보다 여유를 부려 다리를 교차시키고 있었다. (가만히 서있지 못하는 내 습관 중 하나다.) 그러니까 왼발은 오른쪽에 있고, 오른발은 왼쪽에 있었다. 그렇게 가고 있는데 갑자기 열차가 덜컹했다. 나는 순간 균형을 잃었다. 나는 균형잡기에는 자신 있었기에 중심이 흔들렸지만 여유로운 마음으로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잘못 잡았는지 몸이 오른쪽으로 갸우뚱했다. 나는 다시 여유로운 마음으로 왼쪽에 무게를 실었다. 그런데 너무 많이 실었는지 이번에는 왼쪽으로 갸우뚱했다. 그러길 몇 번이고 반복하다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아. 주. 천. 천. 히. 


나는 사람들이 나를 공 위에서 균형을 잡는 서커스의 곰을 보듯이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갑자기 너무 창피해졌다. 나는 엄마에게 급한 일이 생겼다며 전화를 끊었다. 너무 부끄러워서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갔다. 그래서 다시 아. 주. 천. 처. 히. 일어섰다. 나를 밑으로 끌어당기는 중력을 버티며 어떻게든 힘을 줘서 일어났다. 나는 차마 고개를 돌리진 못하고 눈알로 사람들을 훑었다. 모두 나를 보고 입술에 힘을 주고 있었다. 웃음을 참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현기증을 느꼈다. 그래서 급히 옆 칸으로 자리를 옮겼다. 바닥에 주저앉지 않기 위해 버틴다는 것은 우스운 장면이었다.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 이런데도 버티고 견디는 삶은 진정 의미 있는 삶입니까? 


창피했던 버티는 순간들을 떠올리면서 원래 나는 버티는 삶을 비웃으려고 했다. 그런데 생각이 달라졌다. 버티는 삶은 힘들다. 그래서 나는 물었었다. 어떻게 버티느냐고. 답은 내가 버티던 경험들에 들어있었다. 우리는 버티면서 우스꽝스러운 순간들 마주한다. 너무 우스꽝스러워서 입꼬리가 올라가고, 웃음이 새어나오고, 가끔은 차마 웃음을 참지 못하고 폐에서부터 공기를 끌어올려 큰 소리로 웃는다. 버티는 게 의미 있는 까닭은 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 우울했던 날이 있다. 너무 슬퍼서 눈물도 흘렸다. 그러다 유튜브 알림이 떴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습관처럼 눌렀다. 나는 눈에 눈물이 잔뜩 고인 채로 영상을 보면서 웃었다. 엄청 크게 웃었다. 방금 전까지 운 게 민망할 정도로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그때 생각했다. 이렇게 웃을 수만 있다면, 별로인 세상도 살 만할지 모르겠다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버틴다. 버티다 우스워지는 순간에 나오는 웃음 때문에 그냥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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