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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 Jan 19. 2021

35. 거짓말의 발명

똥은 쌌지만 똥 때문에 싸우진 않았습니다

내 눈앞에 윗집 남자애가 서있었다. 점심시간에 복도를 지나가던 중이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데, 우리는 3학년 1반 교실 앞에서 만났다. 주위가 조용해졌다. 10살짜리가 심각할 일이 뭐가 있겠냐 싶지만 우리는 심각했다. 가만히 선 채로 서로를 노려보다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달려들었다. 나는 검도 학원을 다녔지만 발차기가 주무기였다. 남자애 배를 들입다 발로 찼다. 내 발차기 위력에 뒤로 밀려난 남자애가 배를 움켜잡더니 나를 노려봤다. 눈에 눈물이 살짝 고여 있었다. 남자애는 눈물을 슥 닦더니 악에 받쳐 나에게 달려들어 내 양 볼을 꼬집었다. 손톱이 내 살을 파고들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어서 똑같이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남자애 배를 계속 발로 찼다. 그러니까 남자애는 내 볼을 계속 꼬집고, 나는 남자애 배를 계속 발로 차고 있는 형국이 됐다. 그러고 몇 분을 있었는데 담임선생님의 불호령이 들려왔다.     


우리는 상담실로 끌려갔다. 나는 안 울었는데, 남자애는 계속 질질 짰다. 찌질한 똥쟁이 같으니라고.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담임선생님은 우리 둘을 세워놓고는 말했다. “둘이 왜 싸운 건지 설명해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건 남자애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말 못할 더러운 이유로 싸웠기 때문이다. 이유를 말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났다. 10살에게도 지켜야할 자존심이 있다. 둘 다 대답하지 않자 반성문을 쓰라고 했다. 상담실에 앉아 빈 종이를 바라보고 있자니 눈물이 핑 돌았다. 내 인생 최대 위기였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나는 2층에 살았고, 남자애는 같은 아파트 3층에 살았다. 어느 날부터 우리 집 화장실 천장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앉아 있으면 머리 위로 물이 한 방울씩 떨어졌다. 엄마 말로는 위층 배수관에서 물이 새는 거라고 했다. 엄마는 수리하는 아저씨를 불러야겠다고 했다. 수리공 아저씨는 배수관을 교체해야 한다면서 다음날 부품을 가져오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위층에 2시부터 3시까지는 화장실을 쓰지 말라고 말하라고 했다.     


그날 나는 집 앞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구름사다리에 발만 걸치고 거꾸로 매달려 있는데, 멀리서 윗집 남자애가 오는 게 보였다. 같은 반이지만 친하지는 않은 그런 애들 중에 한 명이었다. 남자애가 점점 가까워졌다. 남자애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잠시 후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비명소리에 가까웠다. 나는 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처참한 광경을 목격했다. 아저씨가 똥물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우리 집 화장실은 똥물바다였다. 내가 화장실 갈 때마다 보려고 변기 옆에 꽂아놓은 ‘메이플스토리 13권’도 똥물에 젖어있었다.      


다음날 학교에 가서 어제 있었던 일을 친구들에게 말해줬다. 똥물에 젖은 내 메이플스토리 13권과 함께 말이다. 남자애는 멀리서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교실 전체가 들을 수 있게 말했다. “백민석이 싼 똥이 우리 집 화장실에 그대로 떨어졌다니까. 똥은 어찌나 많이 쌌던지.” 나는 남자애를 보며 말했다. “야, 이 똥쟁아, 뭘 봐!” 그 후로 남자애 별명은 똥쟁이가 됐다. 우리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고, 똥 얘기만 들어도 즐거웠다. 남자애는 매일같이 놀림을 당했다.     


그런데 2주 후에 문제가 터졌다. 우리 아빠는 대장이 예민하다. 길을 가다가도 배에 신호가 오면 바로 화장실에 달려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번에는 시립도서관에 차를 몰고 가다가 배에서 신호가 왔다고 한다. 아빠는 아슬아슬하게 화장실에 겨우 도착했지만, 볼일을 다 보고난 뒤에 보니 변기 뚜껑이 닫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밑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 바지를 빨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남자애가 들어왔다. 남자애는 아빠를 보더니 도망치듯 나갔다. 아빠는 재밌어하며 이 얘기를 들려줬는데, 나는 정말 창피했다. 아무도 모르길 바랄 뿐이었다. 아빠는 남자애 얼굴이 익숙하다고 하더니, 개그콘서트를 볼 때쯤 기억해 냈다. 윗집 남자애였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집을 나서는데 남자애와 마주쳤다. 그 애는 나를 보더니 슬그머니 웃었다. 나는 애써 침착한 척 했지만, 교실에서 남자애를 계속 힐끗 쳐다보게 됐다. 남자애는 애들과 떠들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러다 도서관에서 마주친 아저씨 얘기가 들려왔다. 그리고 듣고 말았다. “근데 그 똥 싼 아저씨가 알고 보니까, 김슬기네 아빠더라고!” 그 말을 듣고 옆에서 듣고 있던 애가 말했다. “완전 똥아저씨네! 김슬기는 똥아저씨 딸이니까 똥딸이겠다.” 주변에 있던 애들이 큰소리로 웃었다. 또 다른 애가 덧붙여 말했다. “야, 그런데 너네 아파트는 똥아파트냐? 다들 똥만 싸!” 그렇게 우리는 똥아파트에 사는 똥쟁이랑 똥딸이 됐다. 비극이었다.    


그래서 오늘 점심시간에 싸웠던 거였다. 하지만 반성문에 사실대로 쓸 수 없었다. 똥 때문에 싸웠다고 쓸 수 없었다. 똥은 치욕의 글자였다. ‘백민석은 똥을 싸면 안 되는 순간에 똥을 쌌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 집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저는 단지 백민석이 똥을 쌌기 때문에 똥을 쌌다고 말했을 뿐인데, 백민석은 마치 자기가 똥을 안 싼 것처럼 굴었습니다.’라고는 쓸 수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옆에 있는 백민석한테 말을 걸었다. 백민석도 고민하고 있었다. 우리는 오랜 토의 끝에 결론을 내렸다.     



<반성문>

3학년 3반 47번 김슬기     

백민석이 500원을 주웠는데, 사실은 그게 제 500원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는 백민석에게 돈을 돌려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백민석이 500원으로 아이스크림을 사먹은 뒤였습니다. 저는 계속 500원을 달라고 했고, 백민석은 그 500원이 네 500원인지 어떻게 아냐며, 그게 네 거였다고 해도 주운 사람이 임자라고 우겼습니다.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백민석이 아끼는 딱지를 훔쳐다가 버렸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백민석은 화를 냈고 저와 싸우게 됐습니다. 백민석한테 정말 미안하고, 500원은 안 받아도 됩니다. 앞으로 다시는 싸우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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