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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 Jan 09. 2021

23. 개똥을 밟았다, 살아야겠다

개똥을 밟으면, 털어내는 수밖에 없다

"개똥이 무서워 피하나 더러워 피하지."


나쁜 사람을 상대하지 않고 피하는 것은 그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상대할 가치가 없기 때문이라는 의미의 속담이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피하지 못하고 이미 개똥을 밟은 상태일 때가 있다. 개똥을 밟고 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말해주는 속담은 없다. 속담은 조상들이 직접 겪고 느끼면서 발견한 인생의 지혜를 담고 있다. 안타깝게도 조상들은 똥을 밟은 뒤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그 조상이 되어 보기로 한다. 포스트 코로나(AC) 인류는 듣거라.


"개똥을 밟으면, 털어내는 수밖에 없다."


나는 개똥과 인연이 깊다. 이제부터 'AC 개똥 민화'다.




8-9살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집에서 학교까지 멀어서 엄마가 차로 데려다줬다. 그날 나는 엄마에게 다녀오겠다고 인사하고 학교 앞에서 내렸다. 그리고 정확히 세 발자국을 걸었다. 하나, 둘, 셋, 뿌직!


개똥을 밟았다. 학교 주변을 맴도는 똥개 한 마리가 있었다. 그 개가 싼 똥인 것 같았다. 나는 당연히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당혹스러운 감정을 살필 새도 없이 주변을 살폈다. 세상은 이전과 같이 평화로웠다. 아이들은 교문을 들어가고 있었다. 아무도 못 본 것이다. 나는 신발을 조심스럽게 떼고, 옆에 깨끗한 바닥에 문질렀다.


문제는 현관 앞에서 발생했다. 나는 차마 개똥이 묻은 신발을 신발주머니에 넣을 수 없었다. 개똥을 털어내야 했다. 누구에게도 내가 개똥 밟았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개똥 밟은 건 창피한 일이니까. 그래서 눈치를 슬슬 보며 현관 앞의 화단으로 갔다. 보도블록 모서리에 신발 바닥을 비볐다. 보도블록에 똥이 묻어 나왔다. 슬쩍 신발 바닥을 봤다. 올록볼록한 밑창 사이에 개똥이 껴있었다. 주변을 살폈다. 반 친구가 나를 보고 인사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신발을 신내화로 갈아 신고, 신발을 신발주머니에 넣어야 했다.


그날 집에 가서 마당 앞 호수를 바닥에 틀었다. 물에다 신발 바닥을 문질렀다. 엄마한테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개똥 밟은 건 비참한 일이고, 엄마에겐 즐거운 얘기만 해주고 싶으니까. 신발주머니에서 개똥 냄새가 나는 거 같았지만 참았다. 엄마한테 개똥 묻은 신발주머니를 빨아달라고 말할 수 없었으니까. 나는 괜찮은 척하려고 애썼던 것 같다.


다음날도 나는 엄마에게 밝게 인사하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정확하게 세 발자국을 걸었다. 하나, 둘, 셋, 뿌직!


망할 개 XX가 같은 곳에 똥을 싸놨다. 엄마는 평소와 같은 곳에서 나를 내려줬고, 나는 평소와 같은 스텝으로 내렸다. 이 삼 박자가 맞아떨어져서 또 똥을 밟았다.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비참해서 현기증이 났다. 8-9살한텐 그랬다.


그다음엔, 조금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서 처음 발견한 우연이었다. 나는 당시에 내가 다 컸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담담히 개똥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학교 정문에서 현관까지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8시 40분까지 등교였는데, 8시 37분까지 현관에서 꾸물거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등교했다고 판단하고 생각했던 작전을 개시했다. 전날처럼, 하지만 더 전날보다 더 과감하게, 보도블록 모서리에 신발을 비볐다. 보도블록 모서리에 똥이 묻어 나왔다. 신발 바닥을 확인해 보니 역시나 살짝 들어간 틈새에 똥이 껴있었다. 아무리 문질러도 그렇자, 나는 결연한 마음으로 화단의 풀을 뜯었다. 헛구역질이 나왔지만 참고 손가락을 풀로 무장하고 밑창 틈을 쓱 쓸었다. 개똥이 밀려 나왔다. 그러길 몇 번 반복했다. 완전히 제거하진 못했지만, 그걸로 만족하고 실내화로 갈아신었다. 그날 지각을 해서 끝나고 청소를 했다.


그날 체육 시간에 운동장을 나가는데 내 신발주머니에서 개똥 냄새가 났다. 친구들이 알아챌까 봐 눈치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집에 가서 엄마에게 개똥을 밟았다고 이야기했다. 엄마는 별말 없이 내 신발주머니를 빨아 주고, 신발 바닥도 깨끗하게 씻어줬다.


다음날 상쾌한 기분으로 학교를 갔다. 나는 엄마에게 밝게 인사하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정확하게 세 발자국 걸었다. 하나, 둘, 셋, 뿌직!


아, 젠장. 당시 욕을 알았다면 쌍욕을 했을 것이다. 서러웠다. 담담한 척 생각하려고 해도 그럴 수 없었다. 또 똥을 털 생각을 하며 교문을 들어서는데 눈물이 나왔다. 엄마가 깨끗이 빨아준 신발주머니가 내 손에 들려있었다. 내 발 밑에는 또 개똥이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하늘이 원망스러워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서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큰 소리로 울었다.


어린애가 교문 앞에서 울고 있으니 사람들이 모였다. 고학년 언니, 오빠들이 내 주변을 빙 둘러쌌다. 나는 난감해서 더 울었다. 그때 누군가 나를 불렀다. "레드야! 여기서 뭐해?" 평소에 집안끼리 친하게 지내던 아는 언니였다. 나보다 4살이 많았다. 언니는 내 옆에 와서 다정하게 왜 우냐고 물었다. 나는 언니에게 똥 냄새가 전달될까 봐 움찔했다. 그러나 울음은 멈출 생각을 못했다.


그렇게 몇 분이 흐르고, 빙 둘러싼 사람들 한가운데 똥 밟은 내가 서있었다. 세상의 중심에서 똥을 밟은 발로 울면서 서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상황을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계속 질문하는 언니에게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귓속말로 말했다. "언니, 다 가라고 해." 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모두 가세요!"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언니와 나만 남았다. 나는 자꾸 옆에 있으려는 언니도 보냈다. 혼자 있고 싶다고 말했던 것 같다. 사람들이 사라진 걸 확인하고 운동장과 학교를 쳐다봤다. 8시 40분이 넘었고, 학교 앞 운동장은 텅 비어있었다. 그제야 나는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다. 창피하고 화가 났다.


현관 앞에서 나는 전날 했던 일을 반복했다. 여전히 마무리가 아쉬웠다. 그리고 화나 있었다. 그래서 핑크색으로 새로 단장한 유구한 학교 기둥이 미웠다. 나는 실내화로 갈아 신고, 똥이 묻은 신발을 높이 들어 올렸다. 똥 묻은 신발 바닥으로 아름다운 기둥을 세게 쳤다. "텅! 텅! 텅!" 똥의 흔적이 사라질 때까지 학교 기둥에 화풀이를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깟 똥 털면 되지.'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이후로 나는 똥을 밟지 않았다. 똥개가 화장실을 바꿨는지, 엄마가 조금 뒤에서 내려준 건지, 내가 스텝을 바꾼 건지, 이유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똥을 밟을 수 있고, 똥을 밟으면 그 자리에서 털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울어봤자 망신이다. 무엇보다 털어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AC 인류에게 말한다.


"개똥을 밟으면 털어내야 한다. 털어내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몇 백 년이 흘러, 이렇게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인류는 축약을 좋아하고, 거기서 나오는 웅장함을 좋아하니까.


"개똥을 밟았다,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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