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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 Jan 08. 2021

22. 삶은 계란이다

농담에 관한 고찰

나는 사람을 구하는 경찰이다. 오늘은 한강 대교에서 호출이 왔다. 다리에서 뛰어내리려는 사람이 있다는 신고가 들어온 것이다. 아치 위로 사람이 보였다. 초라한 차림의 중년 남성이었다.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위로 올라갔다.
“여기서 뭐하시는 거예요. 가족들 생각해서라도 빨리 제 손 잡고 내려오세요. 밑에 가서 얘기해요.”
“무슨 얘기? 너희가 뭘 안다고 간섭이야! 내버려 둬!”
“에이~ 사실 살고 싶으시잖아요. 저 힘들게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제 손 한 번만 잡아주시지.”
“사람이 죽고 싶다는데 농담이 나와? 어디서 재미도 더럽게 재미없는 농담을 하고 있어. 그래, 너도 내가 우습지!”
남자는 떨어지려는 듯 몸을 앞으로 숙인다. 잡아야 한다. 그래서 이 중요한 순간에 나는 주문을 왼다.
“삶은 계란이다, 삶은 계란이다. 삶은 계란……”




대학을 졸업하고 경찰이 됐다. 특별한 목표의식이 있던 것은 아니다. 목표의식이 없어서 공무원이 돼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도 운동을 좋아하니까 경찰이 되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나는 딱히 세상을 바로 잡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 지금도 그렇고. 여기까지가 친구들에게 하는 말이다. 사실 내가 경찰이 된 데에는 내 초능력과 관련 있다. 초능력이라고 말하니까 거창하게 들리지만, 마블 시리즈에 나오는 영웅처럼 세상을 구할만한 능력은 아니다. 사람을 구하기에 적합한 능력인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우연히 내 능력을 알게 됐고, 우연히 능력을 쓰게 됐으며, 우연히 사람을 구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나는 우연히 하나의 농담처럼 경찰이 된 것이었다.




나는 진지한 사람이었다. 아니, 이건 그냥 있어 보이고 싶어서 남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나는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었다. 콤플렉스가 될 정도로 나는 재미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농담만 하면 몇 초 동안 분위기가 싸해졌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모두 무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농담할 때마다 분위기를 경직시키는 것도 능력이라며 농담하곤 했다. 그런데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인 게 내가 친구들 농담에 맞장구치는 순간에도 분위기가 싸해졌다.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다. 그래도 나름 문제없이 잘 살았다. 농담 따위가 뭐 별거라고. 유진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유진이는 대학에 들어가 알게 된 같은 과 동기였는데, 내 첫사랑이었다. 유진이는 성격도 좋고 예뻤기 때문에 인기가 많았다. 항상 남자애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갓 스무 살 된 남자애들이 좋아하는 여자한테 관심을 표현하는 방법은 참 한결같았다. 시시콜콜한 농담을 던지며 어떻게든 유진이와 친해지려고 했다. 나도 특별한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가벼운 농담을 던지며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농담만 던지면 분위기가 싸해지니 괜히 망신만 당했다. 동기들은 나를 ‘갑분싸’라고 부르며 놀렸다. 하지만 그깟 농담 때문에 유진이를 포기할 순 없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농담은 연습만 하면 잘할 수 있다는 글을 볼 수 있었다. 농담이 어려우면 몇 개를 미리 외워두라고 했다. 나는 몇 가지를 골라 외웠다.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돈은? 할머니. 냉동오리를 다른 말로? 언덕. 삶은? 달걀……” 농담을 중얼거리면서 바닥을 보게 됐다. 나는 암기할 때 허공을 보는 버릇이 있었다. 책상 밑을 보고 깜짝 놀랐다. 떨어지던 휴지가 공중에 떠있었다. 내가 농담을 멈추자 그제야 휴지가 떨어졌다. 그다음에는 일부러 가위를 바닥에 떨어뜨리며 모니터 화면의 농담을 주문처럼 외웠다. 슬쩍 보니 가위는 공중에 떠있었다. 시간을 재보려고 스톱워치를 켜고 해 봤다. 그 결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내가 농담을 한 만큼 시간이 멈췄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그동안의 미스터리가 한꺼번에 풀렸다. 내가 농담하는 순간 시간이 멈췄기 때문에 상대가 반응할 타이밍을 놓쳤던 것이다. 사람들은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과를 보고 원인을 단정 지어 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웃을 타이밍을 놓쳐 웃지 못한 것이었는데, 몸이 반응을 안 하니 내 농담이 재미없다고 단정 지었던 것이다. 나는 재미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게 중요했다.

내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은 나와 유진이가 어떻게 됐는지가 더 궁금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농담을 할 수 없어 진지했던 것이 나를 살렸다. 알고 보니 유진이는 농담을 정말 싫어했다. 유진이는 농담 따위를 왜 하는지 알 수 없다며, 농담하는 사람 다른 남자 애들과 달리 농담하지 않는 내 모습에 반했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사귀게 됐고, 세상에서 제일 진지한 커플이 되었다. 유진이와 사귀면서 농담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처음 몇 달은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오고 좋았는데, 허튼소리는 하나도 안 하니 나중에 가서는 지겨워졌다. 친구들은 이런 나를 보고 복에 겨운 비호감 자식 허튼소리 집어치우라고 했지만, 나는 농담을 그리워하게 됐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다. 유진이와 데이트하기로 한 날이었다. 길 건너편에서 유진이가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초록불로 바뀐 것을 보고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멀리서 흰색 승용차가 멈출 생각을 않고 돌진해 왔다. 유진이는 건너편에서 건너오고 있었다. 흰색 승용차는 유진이 쪽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유진이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유진이 쪽으로 뛰어가며 크게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삶은 계란이다! 삶은 계란이다! 삶은 계란……”
나는 계속 농담을 외며 시간을 멈췄다. 그리고 유진이를 팔을 잡아채서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안심한 순간 농담을 멈췄고, 차가 유진이 뒤로 쌩하니 지나갔다. 시간이 멈춰 있었기 때문에 유진이는 자기가 위험에 빠져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얼굴이 빨개지더니 나한테 소리쳤다.
“야! 너 지금 창피하게 뭐 하는 거야? 왜 갑자기 이상한 농담이나 하는 거냐고!”
주변을 보니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모두 내가 외치는 농담을 들었던 것이다. 유진이는 자기를 놀림거리로 만들었다며 헤어지자고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여러 생각이 들었다. 유진이를 붙잡아야 했나, 나한테 유진이는 과분한 존재인데, 만나도 재미없었는데 차라리 잘 된 건가. 그러다 유진이를 구하던 순간을 떠올리게 됐다. 그때 심장이 뛰었던 것이 생각났다. 너무 깜작 놀라서 뛴 것일 수도 있고, 남들 앞에서 망신을 당한 것이 창피해서 뛴 것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자주 한 적 없는 농담을 해서 뛴 것일 수도 있고, 유진이를 구한 데서 느끼는 벅찬 감정으로 인해 뛴 것일 수도 있었다. 나는 내 심장이 그렇게까지 두근거린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 심장이 뛰게 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을 골라, 한 번 무언가를 해보기로 했다.




발을 허공에 내디딘 남자의 뒷덜미를 잽싸게 낚아챘다. 물론 시간을 멈출 수 있어 가능했다.
“이런 미친 새끼! 왜 갑자기 같지도 않은 농담이야!”
남자는 1m 거리에서 이렇게 순식간에 달려온 나를 보고 놀란 눈치였다. 나는 말없이 남자를 데리고 내려왔다. 남자는 겁을 먹었는지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다. 남자를 경찰차에 태워 경찰서로 가면서 나는 조용히 이야기를 꺼냈다. 농담이었다.
“아저씨, 오늘 내 농담 덕에 산 줄 아세요. 농담 아니었으면 아저씨 죽을 뻔했다고요. 그러니까 죽고 싶을 만큼 힘들 땐, 다리 위에 올라가서 울지 말고, 친구 만나서 농담이나 하세요. 그러면 혹시 알아요? 죽고 싶어 지지 않을지.”
아저씨는 대꾸 없이 창밖의 한강을 쳐다보고 있었고, 내 농담에도 시간은 멈출 생각을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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