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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 Jan 07. 2021

우연과 운명 사이

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

나는 드라마를 별로 안 좋아했다. 호흡이 짧은 영화나 시트콤을 좋아했다. 무엇보다 한국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운명 같은 사랑 이야기가 나랑 안 맞았다. 운명 따위 없다고 생각하니까. 내가 봤을 땐 모든 게 우연이다. 그래도 우연이 운명이 되는 역학에는 관심이 많았다. 자꾸 운명 같다고 생각하려는 마음을 거부하기가 힘들어지는 순간들이 때때로 찾아왔기 때문일 거다.




2018년도에 방영한 드라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드라마는 SBS <키스 먼저 할까요?>다. 연기 베테랑인 감우성, 김선아가 주연을 맡았다. 두 사람의 연기를 보고 있자면 대체불가능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멜로를 거부하는 인물들의 멜로는 어렵기 때문이다. 설레지만 설레지 않는 척,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척,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으면서도 담담히 길을 걷는 척. 대사가 없는데도 그들의 감정이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연애시대>의 감우성과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선아를 다시 볼 수 있어 좋았다. 내가 오래된 드라마의 추억을 끄집어내는 이유는 세 작품을 관통하는 테마 때문이다. 바로 ‘리얼 어른 멜로’다.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들이 던지는 질문은 하나다. 알래 드 보통의 소설 제목이기도 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이 질문은 모든 연애 소설들이 다루는 진부한 주제다. 그래서 답은 어렵지 않다. “반복”이다.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영화 <500일의 썸머>에 남긴 코멘트가 생각난다. “사랑은 꼭 그 사람일 필요가 없는 우연을 반드시 그 사람이어야만 하는 운명으로 바꾸는 것.” 현대인은 더 이상 운명을 믿지 않는다. 하나의 사건을 우연으로 치부할 줄 아는 시니컬함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인이 시니컬하기만 했다면 사랑은 종말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이유는 우연의 반복이 이성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한 예로 왕가위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 속 주인공들은 단순히 옆집에 살게 됐다는 이유만으로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영화가 골목에서 잠깐 마주친 남녀의 순간을 시간이 멈춘 듯 보여주는 이유는 우연이 운명으로 바뀌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그러니까 사랑은 반복이다.     


<키스 먼저 할까요?>에 대한 시청자 반응 중에 손무한과 안순진의 인연이 억지스럽게 느껴진다는 주장이 있다. 무한과 순진은 과거에 3번이나 만난 것을 지적한다. 첫째, 11년 전 순진의 딸이 죽고 난 뒤 공동묘지에서 울고 있는 것을 무한이 우연히 봤다. 둘째, 8년 전 순진이 증인을 확보하기 위해 무한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셋째, 6년 전 아내가 바람피운다는 사실을 알고 허무하게 한국으로 돌아오던 비행기에서 무한이 승무원인 순진은 만났다. 세 번째 만남에서 주목할 점은 한국에 도착한 뒤 무한이 순진의 뒤를 쫓다가 동물원에서 자살 시도를 한 순진을 구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현재에 무한과 순진은 선을 보면서 재회하게 됐고, 알고 보니 두 사람은 윗집 아랫집에 살고 있었다. 비판하는 쪽은 우연한 사건들이 지나치게 겹치고 겹치면서 두 사람을 억지로 엮으려 했다는 인상을 줬다고 한다.     


두 사람의 인연이 억지스럽다는 인상에 대한 반박으로 드라마 플롯에 대해 말하고 싶다. 드라마는 무한과 순진의 과거 만남을 처음부터 말하지 않는다. 드라마가 끝날 때쯤에 화면이 블랙아웃 되고, 두 사람의 과거 인연을 조금씩 흘린다. 1화부터 6화까지 무한과 순진은 서로에게 서서히 빠져 들어간다. 물론 드라마 주인공이니까 당연히 그래야겠지만,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너무 드라마 같다.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6화부터 과거가 드러나면서 두 사람이 왜 서로를 사랑하게 됐는지 이해하게 된다. 다른 멜로드라마가 숙명적 사랑을 강조했다 치면, <키스 먼저 할까요?>는 숙명적 사랑의 이유를 설명하는 데 방점을 둔다. <키스 먼저 할까요?>가 ‘리얼 어른 멜로’인 이유다. 숙명적 사랑을 우연으로 설명했으니까.     


사랑은 어차피 운명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연을 운명으로 여겨야 이뤄지는 게 사랑이기 때문이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속 주인공인 토마시가 그 증거다. 토마시는 사랑을 믿지 않는 남자다. 사랑을 믿지 않기 때문에 여자들과의 관능적인 관계만 즐긴다. 그는 정착하지 않는다. 원래라면 그래야 한다. 그러나 소설에서 토마시는 테레자라는 여자를 만나 죽음까지 함께 맞이하게 된다. 토마시는 테레자와 헤어질 기회를 여러 번 맞이했지만 결국에는 테레자에게 간다. 이들의 사랑을 운명이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토마시는 테레자가 운명이라고 여기는 6번의 우연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테레자가 기차를 타고 토마시에 집에 와서 잤을 때도 테레자를 수많은 여자 가운데 하나로 치부했다. 그러나 테레자가 감기몸살에 걸려 토마시의 집에서 일곱 밤을 자면서부터 토마시는 테레자의 존재를 운명이라 생각하게 된다. 함께 수면을 취한 일곱 밤의 우연한 반복이 운명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그렇게 토마시의 사랑이 시작됐다. <키스 먼저 할까요?>도 비슷한 사랑의 함정을 마련해 둔다. 무한이 자살하려 한 순진의 목숨을 구하는 에피소드는 아픈 테레사를 돌보면서 사랑에 빠진 토마시를 떠오르게 하고, 무한과 순진의 반복되는 수면은 일곱 밤의 우연을 떠오르게 한다.    

  

무한과 순진은 서로에게 서서히 스며든다. 서서히 사랑에 빠진다. 그래서 스스로를 사랑을 아는 어른이라 치부하며 적극적으로 사랑을 거부하는 장면은 흥미롭다. <키스 먼저 할까요?>의 사랑은 멜로(?)스럽지 못해서 시선을 끈다. 무한과 순진의 멜로는 무한의 이 한마디에서 시작한다. “자고 갈래요?” 기존 드라마의 순진무구한 사랑들을 비웃는 것만 같은 대사다. 이후 샤워하고 나온 무한을 보고 당황한 순진은 속으로 생각한다. ‘뭐야? 개설레. 눈물도 아니고 머리 물에. 빗물을 맞은 것도 아닌데, 왜 마음이 싱숭생숭. 안 돼, 손숙주. 너는 숙주고 난 기생충이야.’ 드라마 속에서 순진은 핸드폰에 무한을 손숙주로 저장해 놓는다. 오직 돈 때문에 무한에게 접근했다는 것을 다짐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위의 대사를 통해 우리는 순진이 사랑에 빠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승우 작가의 <사랑의 생애>의 첫 문장을 생각나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이다. 사랑은 누군가에게 홀려서 사랑하기로 작정한 사람의 내부에서 생을 시작한다.’ 드라마 속의 ‘손숙주’는 두 사람이 결국 사랑에 빠질 거라는 암시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키스 먼저 할까요?>의 매력은 멜로를 거부하는 멜로라는 점이다. 순진이 설레지 않기 위해 마음속으로 “난 니 욕실에서 쉬하고 응아하고 방구 뿡 뀌고 설사할거야. 뽱~”이라고 되새길 때 우리는 슬며시 웃는다. 거부하려고 할수록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사람들은 현실에서 오글거리는 사랑을 거부하며 똥을 떠올리려는 노력을 하지만, 결국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경험들을 한다. ‘리얼 어른 멜로’ <키스 먼저 할까요?>가 매력적인 드라마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랑(이) 꼭 그 사람일 필요가 없는 우연을 반드시 그 사람이어야만 하는 운명으로 바꾸는 것”을 너무도 생생하게 잘 보여준다. 우연과 운명이 연결되는 순간을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키스 먼저 할까요?>를 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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