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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 Dec 31. 2022

46. 오징어에 관한 명상

우리가 오징어를 사랑하는 이유

이 글은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못생겼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오징어를 사랑하게 돼 자괴감에 빠진 내 주변 여성들을 생각하며 이 글을 써본다.


대부분의 유명한 소설들은 남자가 주인공이다. 그 이유는 남성 작가가 문학계에서 주류를 이뤘기 때문이다. 소설은 허상이라고 하지만, 진실을 담고 있다. 그리고 작가들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우기지만, 결국에는 그들의 관점이 담겨 있다. 나는 문학소녀로서 소설들을 읽어 나가다가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남성들이 아름다운 여성들에게 위축된 경험을 한 번쯤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밀란 쿤데라는 사랑에 관해 쓰여진 장밋빛 커튼을 젖힌 작가다. 사랑의 구질구질한 부분들을 들춰냈다. 그 중 반복되는 테마의 하나는 젊은 남성들이 아름다운 여성에게 거절당하는 경험이다. 외모에 관한 묘사는 거의 자세히 나와있지 않지만, 가끔 남자 주인공이 자신의 외모에 관한 감상을 묘사하는 부분이 나온다. 남자 주인공은 거울을 보면서 자신이 어떤 점에서 매력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떤 점에서는 너무 애송이처럼 생겼다고 느낀다. 엄청 잘생긴 것은 아니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밀란 쿤데라 소설 속 못생긴 주인공들은 젊은 시절 아픈 (짝)사랑을 경험한다. 그리고 20년 동안 차차 경험을 통해 아름다운 여성을 만날 수 있는 매력을 키워나간다. 여기서 쿤데라가 생각하는 매력이란 여성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는 능력이다. 젊은 시절처럼 아름다움에 위축되지 않고, 그것을 태연하게 대할 수 있는 능력이 여성들에게 어필이 된다고 본다.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이며, 그런 점에서 쿤데라는 사랑의 장밋빛 커튼을 조금 들춰보는 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피츠제랄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는 전형적인 남성의 사랑 서사다. 영화에서는 디카프리오가 캐스팅되면서 주인공의 외모에 관한 의문을 지웠지만, 실제로 소설에서는 개츠비의 외모를 묘사하고 있지 않다. 이제 상상해보자. 만약 개츠비가 내 주변에 있는 그저그런 남자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보자. 잘생기지도 않고 가난한 남자는 젊은 시절 첫사랑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성공한 모습으로 여자 앞에 나타나 그 사랑을 쟁취하고자 한다. 쿤데라 소설 속에 나와 있는 남성들과 다른 점은 사랑하는 대상이 다른 여자로 바뀌지 않는다는 점뿐이다. 나는 이를 '오징어 서사'라 명명하겠다.


여기서 반복되는 것은 남자들이 시간이 흘러 경제력과 사회적 명성을 쌓아 올렸다는 점이다. 정말 대부분의 남자들은 오징어뿐이고, 그들이 여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것은 사회적 지위밖에 없는 걸까? 쿤데라는 그렇다고 말한다. 한 소설에서 남자 주인공은 여자친구의 분노로 곤욕을 치른다. 그 이유는 여자친구가 남자 주인공의 과거의 못생긴 여자친구 사진을 보면서다. 여자친구는 어떻게 이렇게 못생긴 여자를 만났을 수 있느냐며 화를 낸다. 쿤데라는 말한다. 여자에게 남자를 측정하는 지표는 전애인들이라고 말이다. 정말 연애 시장에서 남자의 외모는 부차적일 뿐이며, 외모가 개입된다고 해도 전애인들, 즉 여자들의 외모뿐인 것일까?


오징어 서사는 남성의 서사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서사가 이어지기 위해서는 남성뿐 아니라 여성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여성도 오징어인 남성을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현재 다뤄지고 있는 오징어 서사의 문제는 남성의 관점에서만 이뤄진다는 점이다. 정말 여성은 남성의 사회적 지위만 중요하고, 외모는 중요하지 않은 것일까? 아니다. 질문을 바꿔보자. 여성들은 왜 오징어를 사랑하는가?



오징어들은 자신이 오징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안다. 그래서 남자 오징어들은 사회적 지위를 찾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 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 있을수록 손쉽게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지금까지 다뤄져온 '오징어 서사'의 관점이다.


반대편 오징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는 남성들만 오징어라고 한 적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못생겼으며, 여성도 해당된다. 그러니까 객관적으로 따지고 보면 아름다움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못생김 사이에서 사랑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또 달라진다. 오징어는 어떻게 오징어와 사랑에 빠지는가? 닮아서 사랑하게 되는가?


사랑은 외적인 조건으로 완성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시작은 그럴 수도 있지만, 사랑은 매우 유동적이기에 지속될 때 의미가 있다. 현재까지 우리는 너무 사랑의 외적인 조건에만 신경썼다. 우리는 생각이 통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이해해주고 싶은 사람, 그리고 이해받고 싶은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이는 대화를 통해 가능하며, 결국 사랑이란 대화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위의 짤처럼 못생긴 남자한테 빠지면 약도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빠지면 약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그 대상이 오징어였을 뿐.


나는 살면서 인기가 많은 남성은 외모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분명 잘생긴 남자들은 연애할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그것이 인기의 척도를 결정하진 않는다. 인기의 척도, 즉 사랑이 발생할 수 있는 지점은 대화에서 탄생한다. 


내 주변에는 누가봐도 못생긴 남자가 한 명 있었는데, 그는 여러 여성의 사랑을 받았다. 진짜 말그대로 여러 여성들은 그를 사랑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한데, 대화가 잘 통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여성의 관점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그것을 받아들이려고 했다. 적어도 사랑에 빠진 여성들은 그렇게 봤다. 그러니까 일반적인 오징어 서사에서와 달리 강하고 잘생긴 남성이 인기 있는 것이 아니다.


쿤데라의 소설에서 나이든 능숙한 남성이 아름다운 여성을 만날 수 있는 것은, 그의 사회적 지위 때문이 아니라, 아마도 여자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웠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까지가 이성애적 사랑에 관한 해석이었고, 이제부터는 그냥 사랑에 관해 말해보겠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가? 


내 친구의 친구 영희는 20대 후반 늦은 나이에 사랑에 빠졌다. 이전에도 꾸준히 연애를 해왔지만, 헤어질 때 그렇게 힘든 적은 없었다. 그러나 영희는 이번에 만난 남자는 놓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렇다고 남자가 그렇게 잘생긴 것도 아니었다. 영희는 자신을 오징어 지킴이라고 자조했다. 영희는 자신이 그 남자를 사랑하게 된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말했는데, 나는 조금은 알 것 같다. 아마 그 이유는 그 남자가 영희를 이해해주고 영희가 기댈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일 것이다. 


웃긴 점은 그 남자는 영희가 결혼하고 싶다고 해도 대답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영희는 그렇게 느꼈다는 것인데, 이 부분은 사랑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랑은 상호 간에 하는 것이지만, 결국에는 그 사람의 머릿속에서 이뤄지고 탄생한다. 내가 그 사람을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나에게는 오랜 기간 친구로 지내다가 연인이 된 지인이 주변에 있는데, 그들에게 사랑에게 탄생 지점을 물어보았다. 상대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이 느껴져 자신도 좋아하게 됐다고 말했다. 상대가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나도 좋아하게 됐다고? 이런 별로인 대답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이 지점에 사랑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사람은 이해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을 연다. 그런 점에서 사랑하고 사랑받는다는 것은, 이해하고 이해받는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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