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re you doing?이나 Can I help you? 거기에다 Tv프로 <윤식당>에서 이서진 배우가 외국인이 주문한 음식을 손님 상에 내며 Here you go 하길래, 그 말이 무슨 말인가 하여 그들의 대화를 찾아 익힌 수준의 영어만 입에서 나올 정도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우리 한잔 할까, 또는 요새 재미있는 일 있어하며 편하게 영어로 말을 건넬 정도도 못된다.
일상에서 영어회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 별 관심 없이 지내왔다. 마음먹고 외국 여행을 가거나 계획을 잡아도 으레 Guied가 딸린 나라 여행을 했기에 영어 회화는 내 인생 가는 길에 저만치 밀어 두고 있었다.
Bucket list에 영어회화를 넣거나, 그것도 상위 계획에 올리는 이도 있으나, 나는 젊은 날부터 여태 삶의 바구니에 영어 관련 목표를 넣은 적이 없다.
지금부터 5년 전인 2018년 10월, 나는 공직에서 퇴직을 몇 년 앞에 두고 동료들과 베네룩스 3국 여행을 했다. 튤립의 나라 네덜란드에서 배를 타고 유람할 때였다.
선상에서 같이 여행 간 일행들과 경치 좋은 곳을 지나가던 중이었다. 외국인들도 그 풍경을 놓칠세라 마치 그 자리를 세 얻은 것처럼 남 사정 봐주지 않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근사한 풍경을 놓칠 것 같은 다급한 마음에 "please! side go." 정도는 말하며 정중하게 부탁해야 하건만, 실례를 무릅쓰고 무작정 Side, Side라고 소리치고 말았다. 그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도 모르고. 다행히 그들은 내 말을 알아듣고는 Sorry, Sorry 하며 자리를 비켜주길래 사진 몇 방 건지긴 건졌지만, 그 이후에도 나는 더 이상의 영어화화 습득 계단을 밟고 올라서지 않았다.
또 여행하면서 식당마다 종업원이 손님들이 본 메뉴를 다 먹고 후식을 챙겨주기 위해 물을 때면 Finish, Finish! 하기에, 그 정도는 알아듣고 장단을 맞추기는 했어도 "The side dish is on the house." 수준의 학습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래 왔으니, 오늘 같은 일이 벌어진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현장에서 외국인과 막상 부딪치고 보니 어떤 말조차 건넬 수 없었다. 영어 몇 마디 안다고 그걸 꺼내 말 붙이는 것 또한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The water is on the house.라고 누가 말 붙이면 태풍과 장마가 몰아치는 요즘 같은 한 여름, "물이 집을 덮쳤다."라고 말했을 수준의 어긋난 영어 지식을 갖고 있었으니 말이다.
초등학교에서 대학 과정까지 16년 간 배움의 터전에서 이리저리 영어를 접한 기간은 최소 10여 년은 된다. 그럼에도 외국인과 몇 마디 대화조차 나누지 못하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물론, 한국에서의 영어 교육이 말하기보다 문법 위주의 교육인 건 부인할 수 없다. to 부정사 다음에 동사의 원형이 와야 해, should have 다음엔 반드시 과거분사 PP를 써야 하는 거 알지 등 입시 위주의 교육이 되다 보니 외국에 나가거나 길에서 외국인이 말을 걸어오면 말 벙어리가 되고 만다.
그런 대화는 꿈에서나 가능하다고 할까. 길에서 외국인을 만날까 두렵고 말 걸어올까 봐 피해 가는 신세니 답답한 노릇 아닌가.
어쨌거나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교육 현실을 탓하지 말고 실생활에 필요한 기본 영어회화 정도는 진즉 배웠어야 하거늘. 그러지 않고 60이 넘은 나이에 이제야 영어 단어를 끼적이고 있으니 이를 어쩐담.
지금까지 어떤 일을 하거나 즐기거나 먹거나 생각에 잠기거나 내 삶을 사는 동안 영어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아 영어에 담을 쌓고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나는 차를 몰고 온 외국인 앞에서 쩔쩔매며 귀먹은 벙어리처럼 마냥 서 있어야 했다.
외국인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10~20초 정도의 그 짧은 시간조차 내게는 고역이었다. 외국인이 메모지에 한글로 방문지와 방문 목적을 적었기에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무작정 Gate앞에서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을 뻔했다.
목적이 있어 방문했고, 누구를 만나러 가느냐고 물을 필요는 없어도 방문 차량에 대해서는 자체 차량 등록시스템에 관련 내용을 담게 해야 하는데, 그런 조치조차 하지 않고 무사 통과시키고 말았다. 마치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이 일이 있기 전 얼마 전부터 영어회화 공부를 새로 시작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유아가 한글을 배울 때 엄마 아빠를 부르고 배가 고플 때 징징 거리는 몸짓 정도의 영어 회화 수준밖에 되지 않아 외국인 앞에서 입을 뗄 수 없었다. 뭘 말하고 싶은데 용기 내지 못해 입안에서만 중얼거릴 뿐 밖으로 속 시원하게 내뱉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 또 한두 달이 지났다. 이번에는 한 여성이 어둠이 내려앉는 저녁 무렵 다급하게 창을 두드리더니 도움을 청한다. 그녀 또한 내가 영어회화는 아예 못할 거라 짐작이라도 한 듯 종이와 연필을 가리키더니 달라고 한다. 그것들을 건네니 그녀는 강아지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다급한 목소리로.
순간 나는 어디서 강아지를 잃어버렸느냐고 Where did you lost your dog?이라고 하자, 그녀가 깜짝 놀란다. 그 순간 나도 나 자신에 놀란다. 영어에 새롭게 눈 뜨고자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 몇 달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외국인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는 나를 보고 있었다. 당황해 하기보다 한두 마디의 말이라도 더 붙여 보고픈 태도를 보이는 내가 외국인 앞에 있었다.
Can I help you? 단계에서 What can I do for you? 나 How did you get here? 수준까지 올라와 있으니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노력하는 자 못 당한다 라는 말이 떠올랐다. 아무튼 그녀 앞에서 나는 당황하지 않고 웃고 있었다. 얼마 전 2Gate에서 외국인과 만났을 때 진즉 영어회화에 관심을 두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그날의 어줍은 태도를 보인 나를 되돌아보고 있었다.
조금만 일찍 영어회화에 관심을 가졌더라면 그날 Is it a visiting car? 정도는 말할 수 있었는데. 한 발 더 나가 The visiting car has to go to No1 Gate.라는 말까지 이어갔었을 텐데 아쉽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