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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당 Sep 08. 2023

경비원의 1차 관문인 면접

 경비원으로서 일하고자 경비원 신임 교육을 받은 게 9월 말이고, 교육 이수 후 얼마 지나지 않은 10월 초순에 경비원 모집 공고문이 올라오는 인터넷 사이트를 알게 됐다.

 워크넷 구인 사이트엔 각 용역 업체에서 경비원을 모집하는 공고문이 무수히 올라와 있다. 1,000여 건이 넘는다. 아파트는 물론 회사, 공장, 건설 현장 등 작업 현장이 참으로 다양하다. 내 주변에 있는 일자리를 검색해 보니 그것도 30여 건이 넘는다. 일자리는 많은데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을까?  

 어느 곳에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볼까 고민했다. 거주지에서 가까운 시내로 할까. 아니면, 시 외곽으로 눈을 돌릴까. 그 당시 나는 공직 생활을 마치고 얼마동안 다른 곳에서 일한 사회 경험이 있어도 경비원으로 발 디디는 건 첫 번째 도전이라 많은 생각이 교차다.

 은퇴 후 나 스스로 3D 업종이나 다름없는 직업의 세계에 뛰어드는 건 적지 않은 결단의 용기가 필요다. 수많은 망설임 있었지만 그보다도 나는 일이 우선이었고, 일자리가 나면 남의 눈에 덜 띄는 곳에 지원했으면 했다. 

 괜한 생각이지만 간부급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퇴직한 사람이 경비원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그런 나를 누가 보기라도 하면 낯이 뜨거워 견디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저절로 시내보다는 외곽으로 눈길이 쏠렸다. 아파트보다 회사의 경비원이 보기가 좋듯이 말이다.



 알다시피 경비원의 일자리는 대우받기보다 천대받는 직업이다. 존경은커녕 멸시받는다. 다른 일자리는 그럭저럭 보아 넘기는데 어째서 경비원의 직업은 하찮게 여기는지 모르겠다. 나는 이 일이 괜찮은데, 누가 뭐래도 떳떳하게 출근해 일할 수 있는데, 사회 사람들은 그리 보지 않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그런 일을 할까? 한 때는 잘 나가던 사람이 저런 일을 할까 하며 무시하는 태도 때문에 면접을 보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세상인심이 그러다 보니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외지가 심적으로 편할 것 같았다. 만에 하나 전 직장에서 같이 근무했던 직원 중에 누구라도 내 모습을 보기라도 한다면…. 그런  나를 보고 손가락질하거나 혀를 끌끌 차기라도 한다면….

 이런저런 고민 끝에 갈 방향을 정했다. 경비원에 대한 직업인의 길을 가는 내 처지가 탐탁하지 않은 자리일지라도 시 외곽에서는 마음의 동요가 덜할 것 같았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증평이나 진천 지역에도 일자리가 물론 있었다. 하지만 차 기름 값이라도 줄일 겸, 출퇴근 거리가 보다 가까운 청주 외곽 소재 구인 광고에 마음이 끌렸다.

 그렇잖아도 경비 교육을 받기 전 8월 중순 경 충북경영자총협회 일자리 구인 부서에서 그 지역 경비원 모집 안내문을 보내온 터라 당해 경비용역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나는 시내보다는 시 외곽을 원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내 생각과는 반대로 시내를 선호하는지 지원자가 예상보다 많지 않았다.


 요즘 경비원 구인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근무 여건과 보수가 괜찮은 시설의 경비원 모집 시 적게는 15대 1에서 많게는 30 내지 40대 1의 경쟁률을 보인다. 회사나 사택과 아파트는 물론 건설 현장 가리지 않고 지원이 치열하다. 일반인들이 생각할 때 경비는 아무나 할 수 있겠지 생각하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세상이 달라졌다. 고 학력자에 사회에서 명성이 자자했던 사람들까지 지원하는 추세다. 경비원의 일자리도 적극적인 관심과 열정 없으면 따내기 어렵다.


 면접을 위해 뭘 준비해야 하나? 공직에 있을 때 면접관으로 일한 어느 날을 떠올린다. 면접자들이 면접 장소에 들어오면서 그들이 어떤 복장을 하고 어떤 표정을 지으며 어떤 말을 했던가 기억을 되새김질한다. 외모, 복장, 표정, 말소리, 인상.....

 준비하고 다듬어야 한다. 나는 지금 면접자의 위치에서 면접관 앞에 서야 한다. 면접관의 자리에서 면접자의 신분으로 바뀌어 있다. 기분이 묘하고 찹찹하다. 어느새 이리도 세월이 흐른 걸까? 이룬 것도 없는데 나이만 먹은 건가?

옷장을 열어 보니 양복들로 가득하다. 공직 생활하는 동안 계절별로 입던 옷이 수두룩하다. 정장대신 가벼운 점퍼를 입기로 한다.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이면 사무직 복장이 필요하나 현장에서 궂은일 해야 하는 경비는 면접 복장으로 양복을 입는 자체가 이미지가 좋지 않을 것 같았다. 며칠 전에 이발하고 염색까지 했으니 이발소에 들를 일은 없다.

단정하게 차려입고 거울 앞에 선다. 새로운 직업의 세계에 들어서려고 하는 내 모습을 보니 얼굴에 알지 못할 미소가 드리운다. 지금 내 표정은 어떤가. 자연스러운가. 온화하고 부드러운가. 아무리 봐도 표정이 굳어 있다. 어둡다. 이런 얼굴로 면접관 앞에 선다면 좋아할 리 만무다. 입꼬리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밝게 웃는 연습을 한다. 억지라도  웃어본다.

이빨을 드러내 보고 턱을 위아래로 내렸다 올리는가 하면 고개를 옆으로 돌려가며 얼굴 근육을 이완시킨다. 면접 시 첫인상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면접자를 보면 적게는 10초에서 많게는 3분이면 이 사람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왔나 보인다 했다. 단정한 외모와 복장, 거기에 밝은 표정을 지으면 면접관의 얼굴도 밝아질 것이다.

 점퍼를 벗어 옷장에 걸어두고 내일 있을 면접 자료를 준비한다. 면접관은 뭐부터 물을까? 지원 동기나 경력, 경비원의 직무, 아니면 엉뚱하게 나이에 관해 돌발 질문을 던질까?

우선 경비원 교육 교재를 펼친다. 면접에 필요한 내용을 재정리한다. 경비원이 하는 일, 화재나 응급환자 발생 시 행동요령도 살핀다. 그러나 그것보다 나이가 문제다. 공장이나 회사 경비원의 경비원 채용 기준은 55세 전후로 알고 있는데, 나이 먹어 이런 일을 할 수 있느냐 물을 때 나는 어떻게 답변을 할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컴퓨터 화면을 열고 파일을 연다. 이력서를 써낸 곳이 많기는 많다. 실패는 성공을 위한 디딤돌이라고 했는데, 어쨌거나 기분은 씁쓸하다. 이력살핀다. 필요에 맞게 그에 맞는 이력 양식을 고른다. 이력서를 작성하면서도 고민이 많다. 있는 이력을 다 적을까? 아니면, 줄여 적을까? 경력증명서는 지참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이력 중에 숨길 것은 숨기기로 했다. 이력을 고스란히 적었다가 면접관이 이런 사람들이 여기는 왜 와, 들어오면 경비나 제대로 하겠어, 며칠 근무하고 나자빠질 게 뻔하다며 태클을 걸 것 같았다.

 예상대로였다. 현장 책임자인 면접관은 내가 제출한 이력을 쭉 훑어보더니 별 말이 없었다.

 줄여 적은 게 다행이었나 싶다. 학력이나 공직 경력에 대해서도 자세히 캐묻지 않고 일하는 자세나 성실성 여부를 가늠하는 질문이 이어졌다. 많이 잡아 봐야 10분 정도의 시간이랄까. 느낌이 괜찮았다.

 면접을 보면 이 사람이 나를 좋게 보는지, 돌려보내야 할 사람인지 가늠되기 마련인데 면접관의 말이나 태도는 나를 저 멀리 두고 싶지 않은 듯 보였다.

 사실 나는 그때 아내와 동행했었다. 크게 볼일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주변 여행지로 구경 나가던 참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 면접 일정이 끼어들다 보니 채용되면 좋고, 안되면 다른 일자리를 알아본다는 생각에 가볍게 나왔었다.

 내가 면접을 보는 중에도 아내는 내가 채용이 확정된 것처럼 차에서 내리더니 내 집 마냥 주변을 살피는 게 아닌가. 어린아이 학교 보내놓고 학교  생활을 잘하는지 염려하는 엄마의 마음처럼 아내는 이것저것 살피고 챙기고 싶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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