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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당 Sep 08. 2023

나는 아직 배고프지 않은가

 경비원의 관문인 면접까지 마쳤는데도 불러주지 않았다. 면접 당시엔 며칠 안 있어 연락을 준다 했거늘 깜깜무소식이다. 하도 답답해 다른 일자리가 있을까 하여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참에 청주대학교에 마련된 일자리 박람회에 참석했다.  

 즉석 면접을 보고 일자리를 구하는 박람회장에는 젊은이부터 중년의 나이를 넘어선 나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일자리 대부분 젊은이들자리가 많았다. 나이 든 사람들이 취업하고 싶으면 생산직 현장 밖에 없었다. 

 나는 그곳에서 참치액젓 만드는 회사에서 면접을 봤다. 다행히 면접을 통과해 취업을 확정하고 면접 부스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그곳에서 며칠 전 경비원 신임 교육을 받던 사람과 만났다. 그분도 내가 지원한 공장에서 막 면접을 보고 나온 터라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왕 일자리를 찾았으니 같은 현장에서 일해보자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내게 일자리가 생겼다는 설렘과 기쁨도 잠시, 내가 그런 분야의 일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일이야 배워야 되지만 의사들이나 간호사들이 코로나19 현장을 누빌 때 입는 것과 유사한,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는 하얀 제복을 입고 하루 종일 근무해야 하는 답답함, 참치 액젓 제조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그 특유한 냄새를 견딜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그렇게 고민하는 시간 속에 있었으나 출근을 하루 앞둔 날 이미 내 몸은 현지 공장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회사 여직원에게 작업 부서와 출근 버스를 어디에서 몇 시에 타야 하는지 전화를 걸고 있었다.  

 새로운 일터 현장을 돌아보고 나온 시간은 오후 4시경이었다. 그런데 아뿔싸! 아내가 전한 말을 들었는지 아이들이 극구 말렸다. 식품 관련 회사에서 근무하는 딸은 더더욱 반대 의사를 보였다.

 아빠는 그런 곳에서 며칠 견디지 못할 거. 평시에도 냄새 자극에 민감한 사람이 그 뜨거운 열기와 김, 그리고 독특한 냄새까지 혼합된 현장에서 일하겠어? 하루 이틀 일하다 적응하지 못하고 나오느니 차라리 다른 일자리를 찾아봐.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쳐야 했다. 보수가 넉넉해도 근무환경을 고려해야 하고, 건강과 노후 행복도 고려해야 한다며 아이들이 반대하니 덩달아 아내까지 말렸다. 머리가 지근지근 아파왔다. 내일 아침 첫 통근차를 탄다 해놓고 갈등이 일었다.

 회사 여직원이 퇴근하기 전까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가 일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이 서면 그 사실을 사전에 알려야 한다. 일 한다 해놓고 아무 연락도 하지 않고 출근하지 않는 어리석은 짓은 저지를 수 없다.

 그런 갈등 속에,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이 없다는 듯 다음 날 아침 새벽에 통근 버스를 타고 출근할까. 아니면 가족들의 말을 들을까.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초조한 시간, 나 또한, 바둑이나 장기 시합에 임하는 프로기사들이 초읽기에 들어갔을 때의 심정과 다를 바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굴욕적인 것은 먹고 사느냐 하는 경제적 여유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경우다. 특히 나이 들어서는. 돈이 많아야 좋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돈은 있어야 한다. 생활 유지에 필요한 기본 소득 외에 남에게 밥 한 번 더 사고 놀고 싶으면 언제든지 여행 가방 꾸려 나갈 수 있는 여유 돈은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더 나이 먹기 전에 새로운 분야의 직업을 선택하는 귀로에서 갈등하던 날, 나는 회사 여직원에게 전화를 하고 말았다. 일 하지 않겠다고. 일하고자 하는 의지와 달리 나는 가족의 의견에 반기를 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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